[염혜순 칼럼]나무와 나무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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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혜순 칼럼]나무와 나무 사이
  • 중앙신문
  • 승인 2018.04.1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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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혜순(수필가)

나무와 나무 사이로 바람이 분다. 바람은 따스한 입김으로 봄을 만들다가 다시 더워져 숨 막히는 여름이다가 서늘해지며 가을이 된다. 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에 겨울도 실려 온다. 그 계절에 순응하며 나무는 꽃을 피우고 잎을 피우며 열매를 맺고 단풍이 든다. 나무와 나무 사이는 계절이 지나가는 오래된 길목이었나 보다.

울타리를 따라 둥글게 심어 둔 어린 나무들이 1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지를 뻗고 키를 키우더니 급기야 서로 부대끼며 제 모양을 잃어가고 있다. 새잎이 나기 전 가지를 자르거나 간목을 해 줘야 서로 제대로 살아갈 것 같다. 구상나무 아래 단풍나무를 조금 잘라주고 그 옆의 목련을 키워야겠다. 그리고 그 옆 소나무 가지를 쳐줘야 라일락이 꽃을 제대로 피울 것이다. 봄이 오면서 마음이 바빠진 나는 혼자 전지가위를 들고 사다리 위에 올랐다. 그런데 아무래도 단풍나무도 그렇고 소나무도 그렇고 그간 줄기가 굵어져서 톱을 대야겠다. 어깨에 인대가 손상된 나로서는 톱질은 무리다. 결국 조금 손을 대다가 주말에 남자들 손을 빌려야만 일이 마무리 될 모양이라 포기하고 내려왔다.

아직도 마당의 나무는 정리되지 않았는데 그 좁은 사이로 바람이 힘겹게 몸을 비틀며 지나간다. 나무끼리 서로 가지를 부비며 닿지 않으려 팔을 들어 흔든다. ‘스스스스’ 그래도 맞닿은 가지들이 서로 미안한 듯 몸을 움츠리다가 간지러운 듯 숨죽여 웃는다. 이미 목련 봉오리에 닿아버린 소나무 가지는 이젠 미안하다는 말이 통하지 않을 만큼 바람에 세차게 흔들리며 부풀어 오르는 꽃봉오리를 친다. 뽀얗게 피어나는 봉오리가 찢어질까 싶어 다시 사다리에 올라 그 가지를 잘라주었다.

처음 나무를 심을 때 자라서 차지할 공간을 생각 못한 것도 아닌데 세월이 가고 나니 그 공간이 점점 부족해지고 어느새 옮겨심기엔 뿌리가 너무 깊어져 이젠 그것조차 어려워 졌다. 처음에야 그저 적당히 간격을 두고 제 모습대로 멋지게 가지를 뻗으며 작은 숲을 이루어 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세월 탓인지 그간 내가 나무를 자라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둔 탓인지 지금은 서로 엉키듯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이 심란해 보이기도 한다. 분명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적정한 거리가 필요한 모양이다.

사람과 사람사이도 그런 것일까? 너무 가까우면 서로 부대끼고 너무 멀면 쓸쓸하고. 어쩌면 나무나 사람이나 그 ‘사이’의 비밀은 같은 것인 모양이다. 카릴 지브란의 『예언자』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중략~~~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결혼의 관계를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문득 나무를 보며 가장 가까운 이웃이며 한 마당의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나무들이 결혼의 관계는 아니라 할지라도 가까운 관계를 대변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저 나무들 사이에 ‘하늘 바람이 춤추게’할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겠다. 그래서 혼자 서있어도 함께일 수 있는 나무와 나무 사이의 통로를 열어주어야만 되겠다. 그래야만 더 오래 함께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봄날의 정원에선 바람이 불고 바람은 정원 곳곳을 지나고 있다. 나뭇가지들은 서로 몸을 부비며 웃음 같기도 하고 울음 같기도 한 묘한 소리를 낸다. 우리들 마음 사이에서도 그 바람소리가 들린다. 더러는 노래로, 더러는 비명으로. 아무래도 난 나무의 가지를 정리하기 전에 내 마음의 가지 또한 잘라내야 할 것 같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거나 그늘이 되는 가지를 골라 나부터 다듬어야 ‘하늘 바람’이 나와 내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춤을 출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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