丹陽九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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丹陽九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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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2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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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세월, 시간, 그 속의 자연은 사람들이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때가 되었다 싶으면 가라고 떠밀지 않아도, 오히려 더 있어 달라고 통사정을 해도 알아서 간다.

여행은 그 자연과 그 곳의 역사, 문화, 내 곁에 없는 볼거리를 즐기는 작업일 게다. 나 있는 곳을 벗어나면 그게 여행이다.

여름의 문턱에 들어 선 5월 초, 모처럼 가족나들이를 나섰다. 몇 박 며칠 일정으로 거창하게 다녀오자는 처음 계획을 줄이고 추려 거리가 가까운 곳으로 당일 다녀오기로 결정하였다. 일행은 큰 아들네 손녀, 손자, 우리 내외 여섯 식구. 작은 아들네와 외손자는 이번에 시골에 오지 않아 끼지 못했다.

단양8경을 구경하면서 맛있는 점심도 먹고 후배가 대표로 있는 충주호 관광유람선을 타는 것으로 대충 정하고 출발. 식사를 끼워 단양九景을 만끽하려고 길을 나서니 붐비지 않는 고속도로는 날씨만큼이나 우리의 나들이를 반긴다. 꽃들은 흥에 취하고 바람은 푸르싱싱하다. 한 시간 남짓 달리니 벌써 단양8경의 제1경인 도담삼봉이 우리를 반겨준다.

여주로 내려오는 남한강의 상류, 남한강은 여주사람만 쓰고, 쓸 수 있는 이름인줄 알았는데 단양에서도 남한강이라니 내 소중한 귀중품을 빼앗긴 기분이다. 몇 번 와본 곳이지만 손녀 손자와 함께하니 새롭고, 강물에 박혀 움직이지 못하고 남의 눈요깃감이 되는 바위섬이 측은하다. 게다가 아기 못 낳은 본처와 시앗으로 비쳐지니 봉우리 신세는 가련함인가. 이곳은 요즘 한창 이야기 되는 방송극 ‘정도전’의 주인공 삼봉 정도전의 외가 동네이고 그의 호 ‘삼봉’도 널찍하게 확 트인 배경으로 위엄 있게 떠있는 삼봉에서 따 왔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넓은 주차장은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가득하다.

아이들이 간식을 하며 사진을 찍는 사이 주변을 둘러보니 삼봉의 시를 적은 화려하지 않은 시비가 눈에 띈다.

訪 金居士野居 (방 김거사야거) 김거사의 들집을 찾아가며

秋陰漠漠四山空 (추음막막사산공) 가을구름이 넓고 넓어 온 산이 텅 비었네

落葉無聲滿地紅 (낙엽무성만지홍) 잎은 소리없이 떨어져 온 땅을 붉게 물들이네

立馬溪橋問歸路 (입마계교문귀로) 말을 개울 다리위에 세우고 돌아갈 길 물으니

不知身在畵圖中 (부지신재화도중) 이 몸이 그림 속에 있는지 알지 못하네

눈에 보이는 대로 섣부른 결론을 내렸거나 절대 권력에 아부하여 평생을 좌지우지하려 했던가 아직도 정답은 모르지만 제 명을 못 산 그가 안타깝다.

여정을 재촉하여 온달장군과 평강공주가 함께하던 온달관광지로 향한다.

신분을 뛰어넘는 온달과 평강공주, 무예를 가르치고 출세를 시키고 국란을 맞아 몸을 바친 두 연인의 설화가 깃든 마을에 고대와 현대가 어우러져 있다.

금방이라도 도포 입은 양반네가 흰 수염의 위엄을 갖추고 헛기침하며 느릿한 걸음으로 대청마루에 오를듯한 분위기. 짜임새 있게 들어 찬 영화, 연극 셋트장이 골기와 지붕을 이고 초여름 햇볕을 받는다. 어느새 명소가 되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인공자연은 시간이 지나면 또 하나의 명소가 되어 역사를 이어가겠지... 아이들은 온달동굴구경을 가고 쉬엄쉬엄 셋트장 구경을 하며 양반티를 내 보는데, 온달과 공주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달강달강 천생연분” 연극을 무료로 공연하니 꼭 보시라는 주연 배우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못해 아쉽다.

점심시간도 지나고 다음 볼거리를 찾아 가려니 바쁘다. 단양은 산 깊고 물 맑으니 선비의 고장이다. 산골의 물 졸졸 흐르는 언덕에 노송이 의연하게 서 있다. 늦은 봄꽃이 조그만 바람에도 흩어지며 순리에 역행하려는 인간을 비웃는다.

늦은 점심을 하려고 인터넷으로 알아 둔 ‘마늘 정식’ 식당에 가니 줄을 서 기다리는 손님이 장사진이요,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단다. 비슷한 식당을 골라 찾아가니 여기도 마찬가지. 반시간을 기다려 여섯 명이 받은 밥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1인당 2만5천 원짜리 정식의 반찬은 중요한 것 세네가지가 빠졌고 -스마트폰에서 본 식단은 무척 화려하고 먹음직스러웠는데.... 양도 적어 자주 보채야 채워준다. 작은 시골, 단양에 ‘마늘정식’이 자리를 잡고 관광객들을 불러 모아 떼돈을 버는걸 보니 부러움과 함께 ‘여주쌀밥’으로 무장한 여주식당들도 메뉴와 맛을 계발하고 홍보하여 식도락 손님들을 불러 모시는 열정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재미있게 뛰어놀며 이것저것 마음에 담는 손녀 손자가 기특하여 함께 어울리다 보니 구담봉, 옥순봉등 몇 군데를 보고 관광선을 타려던 당초 예정은 시간이모자라 취소하고 귀가 길에 오르려니 크게 아쉽다. 여러 가지를 보여주고 많은 경험을 하게 하려던 계획이 마음과 같지 않으니 나는 아직 준비가 덜된 할아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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