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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1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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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우리 세대는 어려서부터 한자를 배워 왔고 이 나이가 되도록 한문자를 접하여 어지간한 단어정도는 해독이 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 신문을 구독하였으므로 남보다 빠르게 한자를 접하였다. 당시의 신문은 한자로 표기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은 모두 한자투성이였고 한글이라고는 얼마 되지 않아 신문을 읽는다면 지식인 축에 들었다.

언제부터인지 신문, 잡지에서 한자가 눈에 띄게 줄고 서로 건네는 명함도 이제는 한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신문에서는 한자를 보기 어렵고 필요한때에는 괄호를 쳐서 그 속에 한자를 표기하는데 그 숫자도 얼마 안 되니 한글 전용시대가 된것 같다.

중학생 시절 수학시간에, 선생님이 일갈(一喝)하신다.

“너희 놈들 낙서를 해도 맨 날 경기도 여주군이야. 아니면 여주중학교 몇 학년 몇 반, 경기도 여주군이 어디로 가냐. 중학생이면 수준 높게 조부모님, 부모님 함자를 한자로 쓰던지. 함자가 뭔지도 모르지 이놈들. 성명, 이름이다. 집안 어른 함자도 못 쓰는 놈들 비싼 돈 들여 공부 시키는 게 아깝다. 아까워” 국어 선생님도 아니고 수학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셔서 의외였고 지금도 웃음기어린 선생님의 표정이 기억된다. 그 때는 그만큼 한문자가 중요했었다.

연애편지도 한문으로 써야 점수를 받는 줄 알았고 취업 할 때 이력서도 한자로 썼다. 거리의 간판도 한자 일색이더니 어느 틈에 한자 간판은 사라지고 한글과 외래어로 덮이고 있다. 쉴 틈도 없이 변해가는 문화, 우리의 눈은 그걸 쫒아 찾아다니느라고 바쁘다.

정작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님은 한글을 얼마나 쓰셨을까. 한글을 쓰시긴 하였을까. 어느 때인지 모르겠으나 한글은 언문(諺文)이라고 하대하고 한문은 진서(珍書)라고 사대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문을 숭상하니 책 한권에 한글은 한 자도 없고 모두 한문이다. 미국 영어책에서 한글 찾기와 같다.

그때의 영향으로 나는 요즘 한문 때문에 엄청난 고생을 하고 있다. 나의 13대 조부께서 ‘풍계유고’ 라는 책을 남기시었는데 번역한 것을 (번역은 여주향교 전교이신 권오열 어른께서 하였다)책으로 엮기 위한 작업을 내가 하고 있다. 한문을 워드로 치고 한글로 토를 달고 번역문을 정리하고 있는데 모르는 한자가 엄청나게 많아 스스로 놀라고 있다. 옛날 학자들이나 선비들은 권위의식과 자존심이 무척 강했다는 걸 알 수 있겠다.

글 중에 애X(?X)라는 단어가 있는데 ‘애’자는 구름 낄 애(또는 구름 낄 의)이다. 문제는 X로 남긴 빈칸의 글자. 구름운(雲)옆에 띠대(帶)자를 합친 글자인데 옥편을 찾아도, 인터넷 한자 찾기를 해도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한문 전문가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어려운 글자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작품을 쓰는데 남보다 유식하게 보이려고 남이 모르는 글을 쓰고자 벽자(僻字 흔히 쓰이지 않는 글자)를 모아 놓았으니 옛날 한문서적을 본다는 것은 전문지식이 없이는 어림도 없다. 그러나 한자가 어렵다고, 실생활에 긴요하지 않다고 멀리해서도 안 된다. 한글전용교육 받은 세대는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시사용어에 약해서 ‘독해불능’ 상태가 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마치 우리 세대가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 앞에서 주눅 들듯이. 그래서인지 요즈음 젊은 어머니들이 어린이들에게 자발적으로 한자교육을 시키고 한자검정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제는 중국과도 가까워져서 한문학이나 한자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자라나는 어린이의 꿈과 그들의 미래가 한자에 매여 있는 건 아니지만 정상적인 교육에 한자는 꼭 필요 할 것 같다.

1971년 민관식 박사께서 문교부장관에 취임하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한글전용을 주장하셨다. 한글전용 추진계획을 보고받으려던 대통령께 장관이 예를 들어 국한문 병용을 주장하였다. 공업고등학교를 시찰하는데 한글로 ‘경도’라고 쓴 단어가 보였다. 한자로 硬度(경도)라고 쓰면 한 번에 주물의 단단하기라는 것을 알아보았을 텐데 한글로 써 놓았으니 누군들 알겠는가. 실생활에 필요하거나 학문을 위해 꼭 필요한 한자는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문교부장관 말씀에 박대통령은 한글전용을 하려던 생각을 접고 즉석에서 국한문 병용으로 정책을 바꾸어 시행하도록 승낙하셨다. 지금의 상용한자 1800자가 그때 그렇게 확정되어 1972년 8월16일부터 국한문 혼용이 시행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엉뚱하게 번지고 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한자를 간략하게 새로 만들어 쓰고 있는데 한자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우리네도 무슨 글자인지 모르는 게 대다수이어서 어린 우리의 학생들이 한자를 배울 때 어느 한 쪽만 배우면 절뚝발이가 될 터이니 걱정이다.

경험으로 보아 한자를 많이 알게 되면 국어의 어휘력, 독해력, 문장력이 늘어나게 되어 전체적인 국어공부가 쉬웠다.

학생들이여, 상용한자 정도는 독학으로라도 공부하자. 한자 몇 자 안다고 아는 체 했지만 역시 나 또한 한자 문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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