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파가 지속되는 25일 오전 9시30분께 박두성 선생의 생가를 찾았다. 송암 박두성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인 지난 1926년 한글 점자(點字)를 완성한 교육자로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라 불린다. 1888년 4월 26일(양력) 인천광역시 강화군(옛 경기도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516번지에서 9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1963년 8월 25일 7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본관은 무안(務安), 호는 송암(松庵)이다.
1906년 한성사범학교를 나와 1913년 제생원 맹아부 교사를 시작해, 13년 후인 1926년 한글점자를 완성했으며, 1936년~1939년까지 인천 영화학교 교장을 지냈다.
맹아부 교사시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일어 점자로만 교육을 해야 하는 것에 불만을 가져오다가 1920년부터 한글 점자 연구에 착수, 1923년 1월 비밀리에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7년간의 연구를 거쳐 1926년 이른바 ‘훈맹정음(訓盲正音)’이라 불리는 한글 점자를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일제의 검인정교과서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 한글 점자로 ‘조선어독본(朝鮮語讀本)’을 점자 출판했으며, 이에 따라 맹인들에게도 민족의식이 더욱 고취되었다고 한다. 1935년 5월에 개최된 부면협의원(府面協議員)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한글점자투표가 가능하게 돼 맹인들의 사회참여의 길이 확장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31년부터는 성경의 점자원판(點字原板) 제작에 착수해 1941년에 점자로 된 ‘신약성서(新約聖書)’를 완성시켰다. 1935년 제생원을 정년퇴직하고, 1936년 인천 영화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가 1939년에 사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 6·25전쟁으로 신약 점자 아연판이 소실되자 다시 제작에 착수, 7년 후인 1957년 ‘성경전서’의 점역(點譯)을 완성했다. 그 후에도 많은 성과를 냈다. 매년 11월 4일 있는 ‘점자의 날’은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라고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님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한글 점자를 만들어 반포한 그 날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현재 송암 박두성 선생의 생가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516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송암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미추홀구 한나루로 357번길 105-19에 송암 박두성 기념관도 마련돼 있다. 생가와 기념관의 직선거리는 약 50㎞정도 떨어져 있으며, 그의 묘지는 남동구 수산동 공설묘지에 안장돼 있다.
생가는 추운 겨울 날씨 때문인지 일부시설과 화장실을 폐쇄해 놓은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