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자의 소혜(笑慧)칼럼]대포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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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자의 소혜(笑慧)칼럼]대포소리
  • 중앙신문
  • 승인 2017.09.0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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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자(수필가, 칼럼위원)

쿵!

조금 있다가 또 쿵! 하는 대포 쏘는 소리가 들린다. 산 너머 어딘가에 있는 군부대에서 사격연습을 하고 있다.

높은 산 중턱에다 한옥을 짓고 이사 온지 얼마 안 되어 아주 크게 들리는 쿵! 소리에 처음엔 무척 놀랬다. 우리 집에서 바라보이는 먼 산위에 하얗게 그린 둥그런 과녁을 본 건 한참 후의 일이다. 대포를 쏘아 과녁을 맞히는 훈련을 하는 날이면 나는 소리다. 쿵! 소리에 가슴이 콩닥거리다가도 후방에 있는 우리국군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토방어 태세를 갖추려고 훈련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내가 사는 이곳엔 군부대가 많아 길가에 집총을 하고 서있는 군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가끔은 군인들을 가득 태운 트럭이 빨간 깃발을 달고 수십 대씩 지나 갈 때도 있다. 탱크가 이동하는 장면도 볼 수 있는데 우렁찬 굉음을 내며 육중하게 움직이는 탱크위에서 철모를 쓴 군인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믿음직스럽다. 군 트럭이나 탱크의 이동이 있을 때는 누가 막아서지 않아도 일반 차들이 앞지르거나 경적을 울리는 법 없이 그냥 조용히 기다려준다.

대포소리를 들으면 내가 겪은 6.25 남침전쟁을 잊을 수 없다. 1950년 당시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는 어머니의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보며 큰일이 터졌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때 전쟁 전에 군에 간 친척오빠 한분이 군 트럭을 몰고 김천 우리 집까지 찾아와 트럭에 올라타라고 했다. 엄마는 트럭위에다 이불이며 쌀자루와 키우던 닭을 얹고 우리 가족 모두를 태우고 대구까지 피난을 갔다.

당시 결혼 한 큰오빠는 대구에서 살았던 때라 오빠 둘, 언니 둘, 나와 어머니 모두 여섯 식구가 큰오빠가 사는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염매시장에 가서 팥죽장사를 했고 중학교에 다니던 언니와 나는 대구 초등학교 담 옆에서 사과상자를 엎어놓고 사과를 팔았다.

대구에서 살던 어느 날 멀리서 대포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인민군이 대구 가까운 곳까지 쳐내려 왔다는 소식으로 흉흉했다. 쿵! 쿵! 대포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무서워 겁이 났다. 다시 남쪽으로 피난을 가야한다고 어머니는 근심에 쌓여 말했다. 이제는 가족이 헤어질지도 모르고 죽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 불안과 공포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밥 얻어먹을 바가지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피난을 내려가려고 준비할 때 쯤 다시 아군이 승리하여 서울을 향해 북진 한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

지금도 우리는 분명히 휴전상태의 분단된 나라에서 살고 있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사상과 이념이 다른 체제에서 사는 북한과 남한은 여전히 대립한 채 보이지 않는 총을 겨누고 있다. 북한은 핵을 보유한 게 유일의 자랑거리인양 얼음장을 놓고 거드름을 피며 발악을 한다.

분단의 세월이 67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휴전상태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태평성대가 된 듯 착각하며 먹고 마시고 즐기고 낭비하며 살고 있음이 안타깝다. 대한민국을 쳐다보는 외국인의 눈은 위험하다고 입을 모으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연스럽게 미사일도 핵도 겁을 안낸다. 설마...

얼마 전 이곳 양평에서 발행하는 지방지를 보니 ‘사격장 사용중지 가처분 신청 낼 것’이라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와 있었다. 혐오시설도 아닌 군부대를 조속한 시일 내에 옮기라는 거다. 님비현상(Not in my back yard)이 팽배한 요즘의 세태에서 누구나 내 뒤뜰은 안 된다고 소리 지른다. 마땅히 국방에 도움이 되는 시설이지만 우리 동네는 안 된다니 어디에 설치해야하나. 다른 나라의 땅을 사서 옮겨갈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몇 년 전에 일어난 천안 함 폭침과 연평도사건은 북한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만행이었다. 그때 46명이나 되는 우리의 아까운 아들이 목숨을 잃어 그들의 부모들은 참척의 슬픔을 겪었고, 연평도 주민들은 지금도 불안에 떨며 생활하고 있다. 그 일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고 이북이 밉고 저주스럽다. 정보가 느렸거나 우리의 방어태세가 미흡해서 얕보고 했다는 생각도 들고, 군 장비가 미흡하거나 군의 기강이 해이해 진걸 틈타서 한 짓은 아닌가 하는 염려도 된다. 요즘은 미사일까지 쏘면서 위협을 주고 핵실험까지 하며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시국이 비상사태가 되면 군에서는 진돗개 1호를 발령하고 사실상 전시상태를 갖춘다. 내가 새벽마다 걷는 남한강변에는 군데군데 참호가 있는데 진돗개가 발령된 날은 그 속에서 밤새워 보초를 서고 나오는 철모를 쓴 군인을 볼 수 있다. 최전방에서 경비를 서는 군인이나 후방에서 훈련을 철저히 받는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마음 놓고 잠을 잘 수가 있다. 무기개발이나 우방의 협조도 받아서 우리는 핵의 위협을 이겨내야 한다.

쿵! 하는 대포소리가 나는 날은 어릴 적 겪었던 6.25전쟁이 생각나고, 우리 가족을 무사히 피난시켜준 평환이 오빠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가 슬피 울던 모습도 기억이 난다. 쿵! 쿵! 하는 대포소리가 자주 들려와도 유비무환의 태세를 갖춘 우리 군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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