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에세이]고학력 아웃사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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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에세이]고학력 아웃사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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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1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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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독일 소설가 빌헬름 게나치노의 ‘이 날을 위한 우산’을읽다 보면 현대인의 한심스러운 일상을 보게 된다. 구두를 신고 다니며 구두의 착용감, 실용성, 패션 감각, 견고 성 등을 검사해 보고하는 구두 테스터. 그 직업으로 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가는 인생.

솔직히 그런 것도 소설이 될 수 있느냐가 의문이었다.

영웅호걸의 장대한 스케일도 아킬레스의 날카로운 공격과 전술이 번뜩이는 전쟁도 기대할 수 없었다. 거기다 ‘더블린 사람들’이나 ‘율리시즈’를 기대할 만한 소설도 아니었다. 그런데 실상 우리 젊은이들의 일상이 이렇게 변화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학벌은 대부분 대졸 이상이다. 부모들의 학구열이 이들을 고학력으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그걸 자랑했다. 조국을 부유하게 한 원동력이라고. 그렇게 작용했고 그렇게 성공했다.

그러나 모든 일에 일장일단이 있듯 반작용으로 고급 룸펜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할 게 없어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저녁이 되면 겨우 집에 들어가는 한량. 옛날 급제及第 못한 양반의 자제가 그리 했던가.

외국에서 수십 년 공부하고 돌아온 석학들이 유명 기업체에 입사했다 몇 달 견디지 못하고 회사에서 뛰쳐나오고 국내에서도 천재 소리를 들어가며 대학원까지 공부했던 영재들이 돈벌이에 뛰어들면 쉽게 돌아서는 꼴이 다반사다. 거기다가 유학 중인 졸업 대상자들까지 국내에 들어오느냐 외국에 남느냐로 고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국내에 들어온다고 비까번쩍하는 직장이 반겨 주는 것도 아니고 적응이 안 돼 무직으로 전전긍긍하면 무슨 낭패며 부모의 재산이 많아도 무위도식하는 꼴은 보기 싫고, 그렇다고 외국 땅에 남아 수십 년 동안 고생 해 쌓아 온 실력을 조국을 위해 쓸 수도 없어 허탈감만 남을 것이다.

이런 예가 있다. 부잣집 아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를 졸라 서울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졸업하고 작은 소매상을 차렸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아 몇 번의 업종을 변경하고 그럭저럭 어렵게 살다가 아들딸 모두 독립해 나갔다. 그 후 아내와 이혼하고 잠적했다. 아무도 행방을 모른다. 시골에 땅이 많아 다시 돌아와 농사를 지어도 좋으련만 그도 아니었다. 누구는 지하철 노숙자가 되었다느니 어디 가 죽었으리라는 낭설이 돌았다.

이들은 모두 고학력 아웃사이더들이다. 현대판 고등룸펜이며 유식한 거지들이다. 국가가 자랑하던 부모 시대 학구열이 만들어 낸 또 다른 결과물이다.

나는 공무원에 들어갔다 이 년만 해 먹고 때려 치운다 했다가 처자식이 눈에 밟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공무원에 목숨을 걸고 평생 살았으니 적성이고 나발이고 없었다. 무작정 치열하게 살았다. 대기업에 들어갔 다면 전 동네 떠들썩하게 잔치 벌이고 퇴직하는 날까지이를 악물고 견뎌왔을 것이다. 적성에 맞고 안 맞고를 따져 그만 둔다는 말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부모가 반대하고 조상님들이 반대하기 전에 오직 자기만을 바라보는 처자식을 생각하면 어찌 안일을 찾으랴. 죽고 싶어도 죽을 시간이 없었다. 이것이 구세대의 일생이다.

그렇다고 청소년 실업(失業)을 모르는 게 아니다. 옛날 같으면 늙은이들 몫이었던 환경미화원이 한참 젊어졌다.

언젠가 대졸자가 지원했다는 뉴스도 들었다. 지금은 운전면허까지 있어야 한다고 하니 고급인력이다. 외국 출장을 다녀와 저녁으로 라면이나 끓여 먹어야지 치킨까지 시켜먹으면 봉급 적자가 될 거라는 기업체 봉급 생활자의 처연한 일상.

삼십 년 전인가, 유럽 여행을 하면서 결혼 안 하고 애안 낳는 풍조가 이상했고 아랍 이민자들이 어린애 낳고 국가로부터 지원금을 타서 먹고 사는 이야기가 낯설었는데 이제 우리가 그들을 훨씬 앞서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선진국을 따라가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망가지는 건눈 깜짝할 사이. 좋은 것 배우는 건 어렵지만 못한 것

따라하는 건 여반장(如反掌)이라.

최저 생계비, 근무시간제, 몇 년을 두고 신경 곤두세우며 지켜봤다. 그런데 내 주변 청소년들은 하나도 적용받지 못하는 곳에서 죽어라 일만 한다. 일주일 내내 밤 12시가 다 되도록 근무하고 일당은 최저 생계비에 못 미치는 근무처가 대한민국 도처에 태반이다. 노조 같은 건 꿈도 못 꾸는 곳이다. 완전 흙수저.

할머니께서 하시던 말씀이 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하는 법이란다.”

문재인 대통령의 일자리 창출도 지지부진해 보인다.

애초부터 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날이 갈수록 일자리 창출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만 같다. 어찌 아니 그러 하겠는가. 그 일자리가 하늘에서 뚝뚝 떨어져 주는 것도 아니고, 공무원을 대폭 늘려 뽑는 것도 한계가 있으며, 대기업체가 말을 들어 주어야 하는데, 그들도 여간 해선 직원 늘릴 생각을 쉽게 하겠는가.

이 난감한 고학력 아웃사이더, 어찌 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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