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에세이]60년 전의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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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에세이]60년 전의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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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1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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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내가 치즈 라면을 끓였다.

아, 이 맛이다. 60년 전의 맛! 그게 치즈였다니. 한국전쟁 때, 미군이 주고 간 깡통에 담긴 노란 고형물. 우리는 무언지도 모르면서 숟갈로 한 덩어리씩 떠먹었다. 밥을 먹을 땐 으레 한 덩어리 밥에 얹어 먹었다.

그게 치즈인지 몰랐다. 그땐 모든 것이 생소했다. 미군이 그렇고 탱크니 짚차니 스리쿼터, 육발이 십발이 화물차…. 하여튼 버터 같은데 버터는 아니고, 1갤런이었던가 꽤 컸다. 며칠을 두고 먹었다. 그때의 맛과 냄새가 잊히지 않았다. 지금까지 의문으로 남았는데 치즈 라면을 먹으면서 60년 전의 그것이 치즈였다는 걸 알았다.

60여 년 전의 맛이라!

생각난다. 총소리가 났고, 화약 냄새가 났으며, 눈 내린 벌판을 달리고 달렸다. 달리다 깼는데, 고모님 등에 업혀 남한강 거룻배를 타고 있었다. 피난 중이었다. 강건너 큰고모님 댁에서 묵었다. 그 동네는 모두 피난 나 간 텅 빈 동네였던가. 거기서 동생이 태어났고, 피난 갔던 동네 아이들이 돌아와 온 동네를 휘젓고 뛰어 놀았다. 그런데 지금은 누가 누군지 알아 볼 수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알 수도 없다. 오래 떨어져 각기 살아온 세월의 벽이 높고 두텁다. 너무 먼 친구들이다. 돌아가신 어른들의 기억 속에만 남은 이야기를 반추할 뿐.

피난처에서 돌아온 집에 난데없이 들이닥친 흑인 병사 의 총부리, 여자를 찾는 것이었다. 고모가 있다는 걸 알고 왔을까. 고모는 장롱 뒤에 숨어 있었다.

“색시 없어, 색시 없어.”

연발하시며 후들거리는 손으로 병사를 가로 막으시던 할아버지.

삼촌과 아버지, 할아버지는 뒷마당에 깊은 방공호를 파 놓으셨다. 사각형으로 파여진 그 방공호가 얼마나 반듯했던지. 한 달쯤 뒤 방공호는 메워졌으며 사랑방과 건넛방 사이, 헛간에 방공호가 다시 파여졌다가 다시 메워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익인지 좌익인지 모른 채 끌려가 죽음에 이르른 피 어린 산기슭과 며칠을 두고 감금되었던, 이젠 헐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앉은 면사무소 건물의 붉은 터.

오랜 가뭄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나와 한 동갑인 육촌형이 신작로에서 미군 짚차가 막 가로지르는 것을 앞질러 건너려고 내달렸다. 아차, 형이 자동차 옆에 쓰러지는가 했는데 어느 틈에 짚차 바퀴에 휘감겨 들었다. 아아, 치었구나. 자동차의 속도로 끌려가는 형의 작은 몸뚱 이. 다행히 찰과상에 그쳤다. 생전 처음 보는 빨간 아까 징기를 며칠 동안 바르고 뛰어다녔다.

언제나 형은 노래를 불렀다. 어린애에게 어울리지 않는 유행가만. 얼마나 잘 부르는지 중학교 땐 선생님이 불러 밤늦도록 그의 노래만 듣기까지 했다. 그에겐 장성한 누나들이 있었고 모두 가수 뺨칠 정도로 노래 솜씨 를 자랑했다. 누나들의 유행가를 따라 부르면서 익힌 노래들이었다. 거기다 변성기 직전, 소년의 목소리라니. 장마가 졌고 장마가 그쳤다. 범람하던 개울이 하룻밤사이에 절반으로 줄었고 물은 매일 줄어들었다. 그래도 물결이 만만치 않던 어느 날, 부잣집 후처가 된 어미를 따라 들어온 아들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구박받고 눈칫밥이나 얻어 먹었지만 장대한 신체조건으로 좌충우돌 견뎌내던 친구가 자전거를 끌고 개울 앞에 와 자전거를 건너편에 끌어다 달라고 했다. 내 열악한 신체조건은무시한 채. 못한다고 했다.

그가 한심스런 낯빛을 하고 왼쪽 다리를 들어 보이는데 크게 찢어진 자리에서 아직도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있었다. 입을 딱 벌리고 바라보는데 그는 이미 텀벙텀벙 자전거를 끌고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찌나 미안한지 입도 못 다물고 쳐다보고 있는데 그는 개울 건너에서 마주 보며 씩 웃고는 돌아서 자전거를 타고 떠나 버렸다. 그 경악스럽고 미안한 감정이 뒤엉킨 마음을 씻을길이 없다.

우리 주변에는 언제나 미군 짚차나 스리쿼터가 있었다. 우리는 그 차량들을 쫓아다녔다.

“워시워시!”

차 닦으라고 목청껏 외쳐 불렀다. 차를 닦으면 언제나 초콜릿이나 껌을 주고 사탕을 던져 주었다. 그래서 차만보면 “워시, 워시, 쵸코렛트 기브미” 하고 외쳤다.

그때는 매일의 일상사가 그랬다.

뜨거운 여름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 가운데 바지랑대가 있었고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고추잠자리 아래 마당 한가득 쌓이는 고요. 옛날엔 김일성이라면 철천지 원수요, 괴물로 각인된인상이었다. 우리 집 작은 창고 외벽에 나와 육촌 형이 김일성의 그림을 그린 형상이 10여 년째 방치된 적이 있었는데 입은 흉물스레 비뚤어졌고 머리털은 머리가 아닌 왼쪽 뺨에 듬성듬성 솟아있었고 눈은 한쪽이 없고 한쪽만 남아 홉뜨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외딴 밭두렁에 떨어진 고급 인화지에 선명하게 찍힌 얼굴. 근엄하고 인자한, 광채까지 나는 찬란한 얼굴, 이게 누구냐. 사진 하단에 기록되어 있으되, ‘태양으로 떠오르는 우리의 수령 동지 김일성 장군’ 삐라였다. 삐라는 주워다 경찰서에 내라 했는데 웬일인지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아, 나는 그 종이를 밭 덤불에 가만히 내려놓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숨가쁘게 집으로 달려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곧 대문을 두드리고 경찰서에서 잡으러 올 것만 같았다.

여름이었다. 어쩐 일인지 그해 거미들은 유난히 컸고거미집을 지었다 하면 초대형이었다. 그 거미줄에 제비가 걸렸다. 제비가 온몸으로 거미줄에서 날뛰자 거미줄은 더 많이 달라붙었고, 제비는 위기에 몰릴대로 몰렸다. 그러나 제비의 무게가 거미줄로는 너무 무거웠던지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수많은 제비들이 여기서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날카로운 사선을 그으며 수없이날아왔다 사라졌다. 제비들의 아우성에 동네 아낙들과 어린애들이 몰려들었다.

누군가 땅에 떨어진 제비의 몸에서 거미줄을 걷어내 자 제비가 푸른 하늘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모두들 만세를 불렀다. 먹잇감이 걸렸다는 걸 감지한 커다란 거미가 쏜살같이 달려 나와 거미집을 망가뜨리며 떨어진 제비를 내려다보다, 푸른 하늘로 솟구치는 제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갑작스레 회오리바림이 작은 마당 가득 몰아친다. 혼자 돌아 오르지 않는 회오리다. 60년 전의 기억들이 하나, 둘, 날아오른다.

행랑채를 건너뛰고 들판으로 내달린다. 가재도구가따라 오르고 바지랑대가 흔들린다. 빨랫줄에 널려있는 손수건, 러닝셔츠, 팬티, 크고 작은 옷가지, 탱크, 스리쿼터, 짚차, 할아버지와 고모, 삼촌, 어린 육촌 형, 총소리와 방공호, 북에서 온 삐라, 후처가 된 어머니를 따라 들어온 아들의 자전거, 초콜릿, 드로프스, 거미집,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한 마리 제비, 그리고 유난히 높이 날

아오르는 치즈 깡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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