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불어넣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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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불어넣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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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1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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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배(한국유머센터장)

| 중앙신문=중앙신문 | 동생 정세영이 대학 입시에 떨어진 것 같다고 낙심하자 형인 정주영이 용기를 불어넣었다.

“나도 들어갔는데 네가 못 들어가겠니?”

머리 좋기로 소문 난 정세영은 정씨 집안의 자랑거리였다. 반면 정주영은 가방끈은 짧아도 소문난 파워맨이 아니던가. 시무룩해 있는 동생에게 전매특허인 배짱 유머를 이용해 팍팍 힘을 불어넣었다. 당시 정주영은 고려대학교 캠퍼스 공사를 따내 공사 현장에 들어간 것이었다. 일을 하러 들어가나 학생으로 들어가나 ‘들어가기’는 매한가지였다.

정주영 회장에게 젊은 기자가 물었다.

“회장님 어떻게 이 많은 직원들을 먹여 살리십니까? 회장님만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비결을 알고 싶나?”

“네, 물론입니다.”

“사실은 내가 먹여 살리는 게 아니라네.”

“네?”

“우리 직원들이 날 먹여 살리는 거야.”

유머가 활력을 만든다는 사실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내게 우리 조상들의 유머를 가르쳐주신 은사가 있다. 학창 시절 우리 캠퍼스엔 유명 교수 네 분이 있었다. 은퇴 교수였던 김형석 교수, 나비 넥타이 김동길 교수, 교육계 스타 이성호 교수 그리고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가자, 장미여관》의 저자 마광수 교수.

마광수 교수는 약간 독특했다. 다른 교수들은 주로 건전한 이야기를 하다가 어쩌다 야한 이야기를 해서 야한 이야기만 오랫동안 기억이 난다. 반면 마광수 교수는 매일 야한 이야기를 하였기에 어쩌다 건전한 이야기를 해서 그 건전한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난다. 그래서 더 신뢰가 간다고나 할까.

“우리 조상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농사의 활력을 얻기 위해 다양한 유머를 만들어냈다.”

민요, 사설시조, 다양한 형태의 설화 등 우리나라 고전 문학을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해학체는 힘들고 고달픈 삶을 가볍고 악의 없는 웃음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문체이다. 해학체에서는 대상에 대한 호감과 연민을 웃음과 익살로 풀어놓았다. 그러면서 인생을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외세의 침략과 내란이 많았던 시대 상황에서 우리 민족은 우스꽝스러움, 익살, 무해한 웃음, 공격성을 띠지 않은 웃음으로 스스로를 치유해 나갔던 것이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심리학자 다니엘 칸네만은 행복한 국민이 국민경제를 성공으로 이끈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경제의 성공이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국민이 경제를 성공시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명랑하고 낙천적인 국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텔레비전 보면 웃을 일 많은데?”

물론 지금은 개그 프로그램 전성시대다.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프로그램은 넘친다.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인스턴트 음식이 영양에 한계가 있듯 텔레비전이 주는 인스턴트 웃음은 진정한 충족감을 주지 못한다.

영양가 있는 웃음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제대로 웃는 것이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고 환하게 웃는 것이다. 마음으로 온몸으로 웃는 웃음이 인생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그 중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웃음이다. 웃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표정도 밝아진다. 크게 웃으면 신체의 긴장이 풀려 혈액순환이 잘 되고 항체와 면역기능이 강화된다고 한다. 돈이나 시간이 들지 않으면서 건강을 얻고 성공으로 가는 출발점인 것이다.

정주영 회장이 조선소를 짓기 위해 서양의 채권단을 만났을 때 그들은 “일본이면 몰라도 한국 같은 후진국이 배를 잘 만들 수 있을지 영……” 하며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정주영은 거북선이 그려진 한국 지폐를 꺼내 보이며 “이미 400년 전에 이 거북선이 일본을 이겼소이다”라고 말했다. 콧대 높은 서양 채권단이 정주영 회장의 유머에 폭소를 터뜨리며 돈을 빌려줬고, 그 결과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는 조선 강국이 됐다.

유머는 단순히 웃기는 기술이 아니라 나와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기술이다. 웃음이란 결국 서로에 대한 호감에서 비롯되는 감정 표현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즐거움을 주고, 유쾌하게 웃는 가운데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유머의 진가를 정주영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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