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별보다 아름다운 대추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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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별보다 아름다운 대추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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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8.2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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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태(숲 해설가)

| 중앙신문=중앙신문 | 2017년 8월5일 토요일 여주시는 펄펄 끓는 불가마였다. 여주가 39.4도까지 치솟아 오르며 방송뉴스를 장식한다. 전국이 불가마다. 내륙도, 바다도, 펄펄 끓었다. 매스컴의 전하는 이야기는 ‘지구온난화가 몰고 온 기상이변이다.’라며 내일 지구의 종말이라도 맞이할 것 같은 보도가 이어진다. 폭염에 지친 시민들의 모습이 안쓰러운 날이다.

그러나 이 무자비한 폭염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위를 즐기는 듯 대추나무의 열매는 그 크기가 쑥쑥 불어난다. 나무는 어떻게 알았을까? 지금 이 무더운 순간 자신이 질주하지 않으면 겨울을 준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묘하게도 타이밍을 맞추고 몸집을 키우고, 색깔을 맞추고, 자신의 갈 길을 간다. 나무는 이미 내일 모래가 입추라는 사실을 달력을 보지도 않고 알고 있다. 대추는 태양과, 달과, 별과, 우주와 교신이라도 하는 걸까? 이내 때를 맞추어 몸이 붉어간다. 그 속에 달콤한 과육과 향기도 채운다.

대추는 남들이 모두 잎을 피운 뒤에야 서서히 잎을 내미는 나무의 귀족이다. 겨우내 세찬바람에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가지를 꺾어보기 일수다. 그러나 일단 잎을 내밀면 잠시도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 별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피운 꽃은 열매를 맺는다. 대추가 달리면 익을 때 까지 부모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많은 과일 중에 최고의 예우를 받는다. 인륜대사 축복의 자리에 빠지지 않는 과일이며 조상님의 음덕을 기리는 상차림에 동쪽우두머리를 차지한다. 벼락으로 타버린 몸도 귀한대접을 받는 나무가 대추나무다. 이 오묘한 나무를 날카롭게 주시하고 생체비밀을 누설한 장석주 시인의 시 ‘대추 한 알’을 음미해 본다.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대추 한 알에도 태풍이 불고, 천둥과 벼락이치고 39도를 오르내리는 땡볕과 몸을 에워싸야 하는 무서리, 뜨고 진 초승달의 역사가 고스란히 머물고 있다. 그냥 한입 베어 물면 그만인 대추가 아니다. 우주의 삼라만상과 자연의 이치가 대추 한 알 한 알 마다 올 곳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있을까?’,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 없잖아?’ 결코 혼자서 된 것이 아님을 시인은 알고 있다. 어디에서 저런 통찰력이 나왔을까? 반복해보고 또 읽어봐도 경이롭다.

대추는 봄날의 꽃샘추위도, 오뉴월의 목 타는 가뭄도, 천둥과 벼락과, 어둠보다 긴 지루한 장마와, 39도에 이르는 폭염의 강한 땡볕을 이겨낸 참으로 위대한 존재다.

대추 한 알 속에도 우주의 섭리가 간직되어 있는데 하물며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간직되어 있을까? 가족과, 이웃, 사회에 수많은 인연을 맺고 영향을 끼치고 받으며, 때론 시련과 상처로 신음도하고, 영광과 축복을 노래도 한다. 사람이 곧 우주다. 우주의 위대함을 간직하며 인간답게 살아가야하는 교훈을 대추 한 알은 말하고자 함이 아니던가? 그 뜨거웠던 팔월의 태양은 우주의 주인공이신 바로 당신을 향한 에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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