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는 바벨탑, 세워지는 바벨탑
상태바
부서지는 바벨탑, 세워지는 바벨탑
  • 중앙신문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8.06.19 17:0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조각난 언어들을 통합하여 새로운 바벨탑을 쌓는다.

100년 후 영어와 중국어, 스페인어, 아랍어만 남고 모든 언어가 사라질 것이라고 하며 급진주의자들은 한 술 더 떠, 영어만 남기고 모두 없애자고 한다.

창세기에 오만방자한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고 도전하려는 만용에 진노한 신이 탑을 허물고 각자 다른 말을 쓰게 하여 뿔뿔이 흩어졌다는데, 언어를 통합하자는 미래 학자들의 말은 새로운 바벨탑을 세우자는 뜻이다.

외국어에 쏟아 붓는 시간과 정력과 재화의 낭비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공원 담장에 새겨진 훈민정음을 “셍종엉젱…” 하며 읽는 어린이를 보고 웃는다. 처음 훈민정음을 읽으며 “뭐 이런 글도 있어”하며 배웠다. ?, △, ㅸ… 사라진 글자와 어휘의 변화를 배우는 것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고궁이나 절(寺)에서 만나는 한문 앞에 말문이 막힌다. 글자를 모르는데, 내용을 어찌 알랴. 뜻 모르는 병풍을 쳐 놓고 좋아하는 속물을 속물이라 하지 못하며, 축문을 읽고 지방을 써 붙이지만 내용을 알고 제사를 지내는 사람 몇이나 될까. 더욱 약 오르는 것은 중학에서 대학까지 숱한 나날을 영어 공부하느라고 시간을 소비했건만 인터넷에 들어가면 좌르르 쏟아지는 영문에 기가 죽는다. 사서삼경을 독파 할 자가 몇이며 조선실록은 차치하고 족보라도 해독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랴. 아들 딸, 손자 외국어 공부로 코피 흘린다.

사이버 세상이라 인터넷이 언어의 통합을 부추기지만, 증가하는 정보 과잉으로 선호도와 전문분야의 세분화로 더욱 흩어져 수만 개로 늘어나는 동호회와 홈페이지로 문화는 파편화되어, 공통의 정보와 공유된 이해는 불가능해 보인다.

외국 농수산물 수입으로 농민들은 울상이고 정부는 대책에 고심한다. 값싸고 질 좋으면 외제품을 스스럼없이 사용하던 10여 년 전 유럽 여행의 국제화 식탁이 어느 틈에 우리 밥상에 침투한다.

지구가 하나이듯 세계는 하나이며, 윤회설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이다. 피카소는 어린애 같이 그리고 “이렇게 유치하게 그리는데 사반세기를 보냈다”고 한다. 지식인들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생각하는 데 있다’고 한다.

공자님이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한 것처럼 조상들은 무수한 철학과 사유의 체계를 세우며 최고의 인간이 되고자 노력했건만, 요즘 같아선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 돈벌이에 급급한 걸 보면, 동물과 다를 게 없다.

2001년 9월 11일, 세계 경제의 바벨탑 ―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 한 대 꽂히니 풀썩 주저앉는다.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아마겟돈’이 그렇고 ‘인디펜던트’가 그렇다. 테러분자들이 영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아프칸 침공이 임박했을 무렵, 세계 각국의 칼럼은 종교는 타종교를 탄압하지 않는다. 타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정치언어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소도시(小都市) 축제 마당에서 설치미술을 읽는다.

장소는 어느 곳이든 좋다. 원형으로 예수님과 부처님, 마호멧과 공자님이 점잖게 서 있는 가운데 신사와 섹시한 여인이 허리를 굽혀 대화중이다. 옆에 돌고래가 꼬리를 뻗쳐 올리고 눈웃음을 치고 있다. 종교의 화해인지, 제목은 “유토피아에서는…”이다. 말끝을 왜 흐렸을까.

카스트 제도나 질서를 폭력으로 다스리다 사회적 평등의 사상으로 4대 성인의 정의를 받아들이는데 2천여 년이 걸려 폭력에서 해방되었지만 4대 성인의 추종자들이 종교전쟁으로 폭력을 휘두른다. 폭력에서 평화로 발전했나 싶더니, 폭력으로 돌아왔다.

꼬리를 문 한 마리의 뱀―원형의 전설처럼 인류는 바벨탑을 쌓았다 허물고, 허물었다 다시 쌓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단독] 3년차 의정부시청 여성 공무원 숨진 채 발견
  • 박정 후보 유세장에 배우 유동근氏 지원...‘몰빵’으로 꼭 3선에 당선시켜 달라 ‘간청’
  • 감사원 감사 유보, 3년 만에 김포한강시네폴리스 산단 공급
  • [오늘 날씨] 경기·인천(20일, 토)...낮부터 밤 사이 ‘비’
  • [오늘 날씨] 경기·인천(24일, 수)...돌풍·천둥·번개 동반 비, 최대 30㎜
  • 김포시청 공직자 또 숨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