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빗과 가위’로 살아온 50년 세월... 사라지는 이발관 '너무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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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빗과 가위’로 살아온 50년 세월... 사라지는 이발관 '너무 아쉬워'
  • 오기춘 기자  okcdaum@hanmail.net
  • 승인 2023.10.0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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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불노이발관, '신영도 대표 이발사' 만나
젊은 세대 이발 기술 배우려는 사람 거의 없어
50년 외길 이발사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운영'
지난 4일 장장 50년이란 세월을 이발관에서 보낸 동두천시 지행동의 ‘불노이발관’ 신영도 이발사(대표)를 만나 그동안의 얘기를 들어 봤다. (사진=오기춘 기자)
지난 4일 장장 50년이란 세월을 이발관에서 보낸 동두천시 지행동의 ‘불노이발관’ 신영도 이발사(대표)를 만나 그동안의 얘기를 들어 봤다. (사진=오기춘 기자)

| 중앙신문=오기춘 기자 | [편집자주] 예전 '이발관'은 거리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간판이었다. 당시 하얀 가운을 입고 머리를 깎는 '이발사'란 직업은 먹고사는데 큰 걱정이 없을 정도의 촉망받는 직업군이기도 했다. 그래서 젊은 이발사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발관'이 많이 사라져 간지 오래됐다. 추석, 설날 등 명절날이 오기 전, 대한민국 거의 모든 남자들은 이발관으로 향했다. 깔끔하게 이발을 한 후 고향을 찾아 명절을 보내기 위해서다. 장장 50년이란 세월을 이발관에서 보낸 동두천시 지행동의 불노이발관신영도 이발사(대표)를 만나 그동안의 얘기를 들어 봤다.

동두천시 지행동에서 불노이발관을 운영하는 신영도 대표 이발사의 말을 들어 보면 요즘에는 젊은 세대가 이발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아,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정작 기술을 배워도 이 직업으로 돈 벌기 어렵기 때문이다. 30-40년 전만 해도 젊은이들이 이발소를 찾아 이발 기술을 배우려 머리를 감는 일부터 시작해 기술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무한 상황이다. 신영도 이발사도 그 시절 4-5명에게 이발 기술을 전수해 제자들을 배출했다. 다시 생각해도 이발소 안이 비누냄새와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그 시절이 좋았다.

남성의 머리를 깎는 이발 기술은 남성이 미용실에서 머리 자르는 기술보다 까다롭다고 한다.

전통 이용사들은 머리를 자를 때 바리캉(머리 깎는 기계의 속칭)이라는 기계를 잘 사용하지 않고 가위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를 때에는 미용사들은 머리의 뒤쪽과 옆에서부터 바리캉을 사용해 깎기를 시작하지만, 이발관 이용사들은 웃머리부터 가위를 사용해 머리 길이를 조절해 가며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가위질로 깎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바리캉으로 쑥 밀어내듯 깎는 것과는 차이가 많다.

이발사들은 인내하는 마음도 중요하다.

50년 이발사 생활 중에 가장 재미있는 기억은 당시 이발소를 찾아온 키 작은 어린아이들의 머리를 깎아주기 위해 널따란 널빤지를 의자 팔걸이에 올려놓고 그 위에 어린아이를 앉게 했다. 어른과의 머리 높이를 맞추기 위함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기억에 남는 재미있는 추억이라고 말한다. 또한 부모들은 머리 깎기 싫어서 우는 아이들의 앞에 서서 사탕으로 달래곤 했다. 그때마다 이발사들은 아이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고, 머리 깎는 데에는 이래저래 인내가 많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발소엔 미용실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 있다. 머리를 자르는 머리에 흰 가루를 고르게 칠하는 게 바로 그것인데,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머리카락이 일정하게 잘렸나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눈만으로는 머리카락은 고르게 잘렸는지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흰 가루를 칠하면 머리카락이 일정하게 잘렸는지 눈에 잘 띄게 되며, 잘못 깎여 울퉁불퉁하게 잘린 머리카락을 가위질해 잘 손질할 수가 있다고 했다.

'이발·면도하면 새신랑 같아'
 
드라이까지 하면 '유명배우'

이발소의 제일 큰 매력은 뭐니 뭐니 얼굴 면도다. 얼굴에 있는 잔털을 깎기 위해 솔에 비눗물로 낸 거품을 묻혀 얼굴에 바른 후 솜털과 더부룩한 수염을 면도칼로 자르게 되는데, 이런 기술이 최고의 숙련 기술이다. 숙련된 자가 아니면 면도를 하다가 얼굴을 면도칼에 베이게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굴 면도를 할 때에 가죽 피대(소가죽으로 만든 허리띠 모양 가죽)에 면도칼을 쓰윽 쓰윽문지른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던 칼날을 가는 게 아니라, 면도칼에 묻어 있는 비눗물과 잔 솜털들을 닦아 내는 것이다.

면도칼을 현미경으로 보면 칼날이 미세한 톱니처럼 생겨서 면도하면서 생긴 뭉친 털이나 비눗물이 그 사이에 끼게 되는데 그러면 면도칼이 잘 나가지도 않게 되고, 억지로 면도칼을 밀게 되면 살을 베이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고도의 감각적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원리를 들어보니 이발소 면도 기술에는 과학적 이론이 들어 있는 듯했다.

이발소 면도는 해상도 좋은 렌즈를 닮아다는 생각을 할 만큼 면도를 하고 난 사람모습은 한결 깔끔해진다.

해상도가 좋은 카메라 렌즈로 사진을 찍었을 때 하고 화질이 깔끔하게 나온 사진들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이발소에서의 면도는 그 정도로 얼굴이 할 만큼 깔끔해진다. 마치 젊은 새 신랑처럼 얼굴이 깔끔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게 되면, 면도를 꼭 하게 되는 이유다. 하지만 이제는 전통 이발관에서 얼굴 면도를 하는 이들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고 한다.

4일 장장 50년이란 세월을 이발관에서 보낸 동두천시 지행동의 ‘불노이발관’ 신영도 이발사(대표)를 만나 그동안의 얘기를 들어 봤다. (사진=오기춘 기자)
지난 4일 장장 50년이란 세월을 이발관에서 보낸 동두천시 지행동의 ‘불노이발관’ 신영도 이발사(대표)를 만나 그동안의 얘기를 들어 봤다. (사진=오기춘 기자)

미용실이 적고, 이발소 성수기 시절에는 하루 이용객이 40-50명이었다. 보조 이발사들이 머리를 감아 주던 시절이 있었다. 보조 이발사들은 머리를 깎은 뒤 머리를 감길 때 두피에 손가락을 튕겨 마사지하듯 감긴다. 그때의 시원함을 잊을 수가 없다.

또한 머리를 감기고 나면 짧은 머리의 남자들은 대부분 드라이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마른 수건을 길게 잡은 후 줄넘기를 하듯 머리카락을 튕겨서 말려 주곤 했다. 그리고 드라이를 할 경우 드라이 비용을 별도로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장면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 드라이 역시 면도처럼 이발한 머리에 드라이를 더하면 사람이 유명배우처럼 완전히 달라 보일 정도라고 했다. 신영도 대표 이발사는 그 시절이 그립다고 귀띔했다.

퇴폐 이발소 등장, 이발사 인생 가장 부끄러운 순간
50년 세월 '명장 이발사' 건강허락되면 자리 지킬것

이런 신영도 대표 이발사는 퇴폐 이발관의 등장이 부끄럽다고 했다. 한 때 퇴폐 이발소의 등장으로 건전한 이발소까지 많은 피해를 보게 된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그때가 이발사로서의 인생에 제일 부끄러운 순간들이었다고 말한다. 이발관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지금에서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라고 불노이발관 신영도 대표 이발사는 말하고 있다.

신영도 이발사는 건강이 유지되는 날까지 계속적으로 이발관을 운영할 생각이다. 50여 년을 넘게 '빗과 가위'를 손에 떼지 않고 보내온 이 직업이 그래도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한다. 기술적으로 50여 년 외길을 걸어오면 우리는 그들을 명장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발의 명장 격인 그는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직업 활동을 할 수 있게 해 준 이발 기술이 있어 노후에도 일을 하는 것이 그나마 너무도 감사하다""건강이 유지되는 동안까지 계속 이 자리를 지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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