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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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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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1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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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자장면 한 그릇에 미친 적이 있다.

9급 말단 면 직원이었을 때, 생각지도 않은 면장님이 “자네 점심 약속하지 말아, 나하고 둘이만 하자.” 놀라 점심시간까지 정신없이 일을 하다 면장님과 중국집에서 마주 앉았다. “무엇을 먹을래. 나는 자장면을 좋아해.” 쓰다 달단 말없이 자장면을 먹는 수밖에.

면장이 자장면이라니. 모처럼 면장이 사주는 점심 잘 먹으려던 기대가 무너졌다. 그러나 인정받는다는 게 뭔지, 죽을 둥 살 둥 충성한다. 면장이 시키는 일이라면 면장의 의도라면 최일선에 서서 뛴다. 위험 부담은 뒷전이요 부정적 시각이 있을라치면 한마디로 일축하고 혼자라도 끝장을 낸다.

면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다른 곳으로 전근했다. 그 동안 면장에게 잘 보여 진급이나 발탁된 것은 없다.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와 일에 맛 들였다는 것뿐. 중요한 건 ‘인정 받는다’는 것이 우연히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앞에서 하는 척 하고 뒤돌아 빈둥거리는 것은 낭비이고 피곤해 사사건건 눈치만 살핀다. 알아주거나 말거나 열심히 하면 힘은 남아돌고 자부심이 생기며 성취감도 맛본다. 스스로 열심히 하다보면 발탁도 되고 요직에도 앉는다.

열심히 일하고 충분한 그릇임에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윗사람 탓하기보다 재점검해 볼 일이다. 규칙은 지키고 있는가. 직원들과 융화는 잘 되는가. 상사가 요구한 일은 때맞추어 처리했는가. 밀린 일은 없는가. 다가올 일들은 예측하고 대비했는가.

진급을 보약에 비기랴. 질병은 마음의 병이 우선한다. 마음이 편하고 볼일이다. 편한 것보다 신나는 것은 진급이다. 승진할 때, 세상 몽땅 끌어안은 것 같은 기분을 어디에 비기랴. 진급주(進級酒)는 많을수록 좋지만, 좌절의 술은 소태처럼 쓰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나는 아니다.” 일축하고 하던 일 열심히 하든가 도 닦는 것이 속편하고 떨어져도 섭섭지 않다.

한 자리 높아지면 윗자리 탐하기보다 아랫사람 입장을 넉넉히 생각할 일이다. 높은 사람보다 아랫사람과 어울리기를 즐기고 윗사람과의 술좌석에 아랫사람 끼워 주는 아량도 베풀어야 한다. 돈을 아끼지 말라. 아랫사람이 자주는 술 먹기를 탐하다보면 어느 새 왕따로 변한다. 순수한 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내 눈이 맑지 않으면 상대방도 색안경으로 보아 낭패를 본다.

자장면을 생각해 보면, 면장님은 마음을 열어놓고 계셨던 것 같다.

한직은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다. 진급에서 누락한 엘리트 그룹의 일단이 “도나 닦자” 군소리 없이 재충전의 기회로 삼아 차후 월등한 실력을 인정받아 대거 발탁된다. 한직을 탓하고 공부하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시대가 변해 선망의 대상을 깔보기 시작한다. 점심시간, 어느 구청직원들의 환담이다. “… 하나가 넘어지면 차례차례 쓰러지는 게 뭐지, 생각이 안나.” 도미노를 아는 사람이 10여 명 중 한 사람도 없다. 깔 볼만도 하다.

실력은 도토리 키재기다. 붓글씨가 한몫 하다 워드가 나와 빛을 잃어 워드 치는 사람을 선발하더니 일반화되자 아이디어를 찾는다. 누구의 아이디어가 풍부한가. 향후 지식의 확장이 평가의 잣대가 될 것이니, 얼마나 책을 많이 읽었느냐가 관건이 아니겠는가.

인정이 무엇인지, 자장면 한 그릇에 평생 목이 매어 끌려 다녔건만 후회스럽지 않으니 어인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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