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허상, 그리고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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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허상, 그리고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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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1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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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사실적 충격으로 멀쩡한 현실을 의심케 하고, ‘매트릭스’는 컴퓨터의 보급과 인터넷의 확장으로 그 가능성을 가늠케 한다. 보드리야르의 시무라크르 시므라시옹의 번역이며 확장이다.

칼럼을 읽는다. 작가는 국제기구 사회복지 재단의 포스터 한 장을 소재로 기아 대책에 관하여 논하는 중이다. 헐벗고 굶주려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5살 어린이의 사진과 ‘5달러만 있으면 한 달간 먹고, 공부할 수 있다’는 밑글에, 작가는 사진 속 어린이가 누군지 궁금하다. 전쟁 중인 이라크나, 베트남, 라오스, 아프카니스탄, 또는 캄보디아 어린이….

포스터는 사진보다 5달러라는 돈이다. 주머니 좀 끌어, 돈을 내 놓으라는 주문한다. 5달러 -4,500원만 있으면 한 달 동안 먹고 학교 다닐 수 있다. 제발 부탁인데 돈 좀 내놔, 그래야 이 불쌍한 어린이가 살 수 있잖아.

사진―그림자가 세상을 뒤집어 놓기도 하고, 진위(眞僞)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네이팜탄 투하―네이팜탄을 피해 달리는 사이공아이들’이란 제하의 사진 한 장으로 1973년 베트남 참상을 세상에 알려 그 해 퓰리쳐 상을 탄 ‘닉 우트’. 그리고 사진 속 발가벗고 울부짖으며 달려오는 소녀는 중년의 부인이 되어 미국 캘리포니아 어느 곳에서 유명인사로 살고 있다. 당시 이 사진이 베트남 전에서 미국을 패전국으로 몰아간 것은 아닐까.

1994년 수단에서 1Km 떨어진 유엔 구호물자 캠프로 먹을 것을 찾아가다 지쳐 주저앉은 아이와 이 아이가 죽기를 기다리는 독수리 사진 한 장에 쌍이 놀랐다. 사진작가 ‘케빈 카터’는 그해 퓰리쳐 상을 받지만 사진을 찍기 전에 소녀를 먼저 구했어야 한다는 논쟁에 휘말려 3개월 후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사진을 찍고 즉시 독수리를 쫓아 소녀를 구했다는데도 화염처럼 솟구치는 여론은 어느 네티즌의 댓글처럼 불행하고 비참한 현실을 사진으로 표현했다는 것에 대한 보복이 아니었는지.

서양의 어느 사진작가는 아버지가 죽어가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찍어 유명해졌지만 우리나라 사진작가는 죽어가는 아버지 시신에 카메라를 둘이 밀다 얻어터지기도 했다.

사진은 허상이다. 요즘 허상이 현실을 지배한다. 사건 사고가 있느냐 없느냐는 사진의 존재유무로 판가름이 난다. 전직 국무총리, 장군들의 궐기 데모도 매스컴기자들이 기사화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다음 날 아침뉴스로 부각되거나 없던 일로 안개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미국 대통령 닉슨의 하야 사건은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민주주의 정치사회의 실상이지만 닉슨 한 개인의 부덕으로 처리해 대통령의 허상은 위기에서 살아남아, 최고의 권력자도 못하면 탄핵당할 수 있다고 기염을 토한다.

사진, 거창하게 확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힘은 막강하다. 행정학자 사이몬의 서재에 이런 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일화만자(一畵萬子)―한 개의 그림이 만개의 글을 대신한다. 매년, 봄가을 시화전(詩畵展)은 아무리 잘 그린 시(詩)라도 그림으로 어느 구석 빈자리 메우자는 뜻이다.

칼럼이 끝나가고 있다. 몽골의 굶는 학생, 학교를 포기한 동남아 사회주의 국가 어린이, 지뢰로 팔 다리 잘린 캄보디아 어린이, 심장병 수술을 받고 기쁨 한아름 안고 돌아가는 어린이, 정부의 늦장 대처와 미흡 성, 민간단체의 눈물겨운 작은 힘들을 들춰내, 내 에고이즘까지 부끄럽게 한다.

칼럼의 마지막 줄. 사진은 6?25 전쟁 때 우리들 자화상이다. 네가 이렇게 헐벗었을 때 외국인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먹여 살렸어. 이제 네가 도울 차례야. 개구리 앞에 올챙이 적 사진 내어 놓는다. 약 오른다. 아킬레스 건 깊이 찔린 것 같고, 얄팍한 상술 운운 마구잡이 대들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픈 과거의 실체 하나, 어느 틈에 나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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