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와 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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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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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1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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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배배 꼬인 소나무를 보면 슬프다. 이리 휘고, 저리 휜 소나무를 울 안에 심어 놓고 되지도 않는 도인의 명상을 찾는 꼴을 보면 울화가 끓는다.
조선은 좋은 나무를 먼저 베어 건물을 짓지만 일본은 아껴두고 질 떨어지는 나무를 먼저 베어 쓴다고 한다. 때문에 한국 소나무는 작고 배배 틀린 열성인자만 번성하고, 일본은 쭉쭉 뻗은 우성인자가 건재하다는 말을 듣고 분개한 일이 있다. 경주에 가면, 신라 시대에 궁궐과 대감집, 또는 여염집을 지을 때, 너도 나도 좋은 나무만 베는 바람에 우성인자는 사라지고 열성인자만 번창했고, 지금도 빌빌거리는 소나무가 지천이다. 이를 바라보며 시인 묵객입네, 거드름을 피우는 얼굴이 한심스럽다.
안면도 소나무 숲은 조선 왕실에서 관리했다는  말을 듣고 찾았다. 붉은 줄기의 적송군(赤松群)이 바다를 배경으로 힘차게 뻗어 있다. 뒤틀린 소나무의 울화가 한꺼번에 가셔 기분이 좋았다. 백두산 소나무 숲은 어떨까. 돈 좀 벌었다하면 과시하지 못해 안달하는 졸부 근성이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점잖으신 분의 집 구경을 간 적이 있다. 정원에 나무토막을 즐비하게 세워놓고 그 위에 사람 머리통만한 돌을 하나씩 올려놓았다.
왜 그런 것을 세웠는지 뜻을 묻지 않았지만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에서 원시림의 화제가 된 ‘커츠’가 원주민들을 살해하고 목을 잘라 울타리에 꽂아 놓은 효수대(梟首臺)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의 잔인성이 전쟁터나 위기촉발의 순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고귀한 취향의 정원에서도 발현되는 것을 보면 놀랍다.
제주도 하루방은 할아버지가 모자를 쓰고 있는 모양이 이국적이고 볼만한 형상이지만 가이드의 말로 제주도엔 음기(陰氣)가 강해 남자의 성기를 세워 그 기(氣)를 제어하자고 세운 것이라며 뒤를 보라고 한다. 과연 남자의 그것을 빼어 닮았다.
선조들의 의도는 절박했지만 지금은 내륙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으니 한낱 구경거리를 평가절하되어 아쉽다. 그저 신기하고 귀하다 싶으면 가리지 않고 자 기 정원을 치장하는 졸부들의 소행이 밉다.
지방자치제가 되면서 지방마다 특색 찾기에 여념이 없어 솟대, 장승, 허수아비 문화가 판을 치더니 엉뚱한 음란성이 기승을 부린다. 장소를 불문하고 남자의 성기 모양을 나무로 깎아 장승 옆, 또는 대형 음식점 앞에 세워놓아 식사를 마치고 나온 식객들이 보고 낄낄거린다. 도가 지나쳐 식당 안까지 그것 몇 개를 들여 놓은 것을 보니 음식 맛을 잃어, 먹는 둥 마는 둥 급히 나와 버렸다. 나만 역겨웠던 건지 아직도 그 식당은 성업 중이다.
도자기 축제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그릇이 원샷 잔이다. 남자의 성기를 본 따 도자기 술잔을 만든 것이다. 귀두부를 밑으로 했으니 잔을 받아 단숨에 마시고 다음 사람에게 넘겨야 한다. 술 한배 돌리는 데, 뜸들일 새 없으니 단연 원샷이다. 뒤따라 나온 것이 유방 잔이고. 처음엔 어색해 감춰두고 팔던 것이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좌판 앞자리를 차지한다. 찾는 사람이 남자일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 젊은 여자들이 깔깔거리며 주무르다가 참지 못해 하난 둘도 아닌 박스 채로 사가니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런대 그 여자들이 하나같이 섹시하고 생기발랄해보여 내가 미칠 노릇이니. 나 또한 키츠(kitsch)문화에 한 발 담그고 있는 꼴 아니냐.
봄이다. 책상 위 화병에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렸다. 뿌리 없는 꽃을 바라보는 나 또한 자생(自生)하는 꽃 한 송이 산자락에 두지 못하는 졸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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