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에 얽매이지 않는 편안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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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에 얽매이지 않는 편안한 삶
  • 오기춘 기자  okcdaum@hanmail.net
  • 승인 2023.02.1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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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춘 기자
오기춘 부국장

| 중앙신문=오기춘 기자 | 아주 오래전 일이다. 오래전 일이 왜 이제야 생각이 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48년 전 중학교 다닐 때 일이다. 그 시절은 친구들과 학교 다니며 철없이 조잘거리던 시절이고 항상 만나던 친구들과 함께 통학했다. 학교와의 거리는 집에서 약 4거리였는데, 빠른 걸음으로 40분 정도거리였고, 보통 걸음으로 걸으면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짧지만은 않은 꽤 긴 거리였다.

그 짧지만은 안은 거리를 친구들과 재미있게 다니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어느 날 한 친구와 동네사거리에서 만나 함께 학교에 가자고 약속했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약속시간 5분전에 맞춰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러나 그 친구는 30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질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기다리다 지쳐 지각을 하지 않으려고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간신히 학교에 도착했다. 하지만 지각을 했고,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그 친구가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담임선생님이 조회를 하고 있었지만, 순간 화가 치밀어 나는 그 친구에게 큰 소리로 욕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지켜본 담임선생님은 나를 보고 무릎 꿇고 교실 문 앞에 앉아있어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오전 내내 복도에 손들고 앉아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화가 많이 나셨는지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고, 무릎을 꿇은 채 앉은 나를 보고 지나는 선생님들은 출석부로 내 머리를 한 대씩 쥐어박았다.

지금 생각하면 웃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추억이 됐다. 그 후 그 친구는 나하고의 관계가 한동안 서운했었지만 며칠이 지나, 다 잊고 열심히 통학하며 긴 거리를 함께 다녔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친구는 내가 오기 전 그 사거리에 있었고, 다른 친구들이 오는 것을 보고 함께 학교에 온 것이다. 그 친구는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그 후 나는 그 친구랑 사거리 약속은 다신 잡지 않은 기억이 있다.

최근엔 한 선배가 일요일 날 술 한 잔 마시고 하천변이나 걷자고 했다. 그런데 그 선배 역시 약속 장소에 안 나타나, 잠시 학창 시절 그때의 일이 떠올라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혼자서 40여분 동안 동네 한 바퀴 걸으며 전화를 할까? 하다, 술 마시며 한 말이라 기억이 안 났나? 아니면 무슨 바쁜 일이 있나? 하고 그냥 지나쳤다.

두 개의 기억을 떠 올리며 나는 생각했다. 약속이란 것은 지키면 좋지만, 꼭 지켜야 할 그 무엇도 아니다. 꼭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마치 요즘 남용되고 있는 MOU 같은 것이라고...

적지 않은 나이가 되다 보니 합리적 사고가 생긴 것일까. 아니면 이제야 세상 이치를 깨달은 것일까. 지난날을 생각할 때,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리 서운함 같은 것도 없다. 약속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이 도리어 나를 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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