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밥
상태바
아내의 밥
  • 중앙신문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8.04.25 10: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국(수필가)

| 중앙신문=중앙신문 | 아내의 밥은 맛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음심을 먹어도 맛이 있다. 물리지도 않는다. 대개 집 밥은 같은 반찬, 같은 밥, 같은 솜씨라는 일상에 질려 식당가를 찾건만 나는 아니다. 집에서 먹는 혼 밥조차 아내의 밥은 맛이 있다. 밥, 미역국, 김치, 깍두기, 오이소박이, 돼지불고기, 고등어조림, 꽁치구이, 계란찜, 김밥 등등, 무엇을 먹어도 맛이 있다. 하다못해 라면도 아내가 끓이면 더 맛이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태국, 평양식당에서 열사의 나라에 겨울 음식인 통배추김치 반을 쭉 쪼개 하얀 접시에 내어왔는데, 그 아이디어가 참신해 좋았다. 보기에도 좋았고 맛도 좋았다. 그런데 배추김치 옆, 오이소박이는 영 아니올시다. 구색 맞춰 내어온 것인지, 마지못해 곁들인 것인지 이건 아니다. 아들을 보고 이 오이소박이는 너의 엄마가 만든 것보다 못한데 하자, 아들은 거두절미
“어머니가 만든 것만큼 맛있는 음식이 세상에 있습니까.”
뿐만 아니다. 김치를 하건 국이나 찌개를 끓여도 아내의 음식을 맛본 여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거기다 어느 부인은 아내가 만들어 준 김치를 저녁 식사로 먹었건만 밤잠을 자다가도 생각나 다시 꺼내 먹고 잔다고 까지 했을까.
이만하면 아내의 음식솜씨는 주관을 넘어 객관으로 확보되었을 것이다.
최근 사무실 근처 식당가에서 하던 점심을 15Km떨어진 집에 가서 먹기 시작했다. 혼자 먹는 점심을 매일 식당에서 먹는 것도 그렇고, 어느 날 식당 여주인이 매일 점심을 매식하느냐는 질문을 받고부터 식당 점심이 싫었고 식당에 발을 끊었다.
인터넷에서 왕복 기름 값을 계산해보니 점심 값에 반이다. 당연히 집 밥을 먹어야 한다. 더구나 식당 밥이 아무리 소문난 집이라 해도 아내의 음식을 따를쏘냐.
어느 날 우연히 아내가 식당가를 지나며
 “왜 사람들은 식당을 찾는지 몰라. 집에서 먹는 밥이나 똑같은 밥인데, 고기를 구워도 집에서 굽는 것이 맛있고, 반찬을 해 먹어도 집에 것이 훨씬 나은데.”
‘그건 당신이 음식을 잘 만들기 때문이지.’
막 튀어 나오려는 말을 삼켰다. 이 걸 터뜨려 기고만장해질 아내를 어찌 감당하랴. 하지만 그 훌륭한 솜씨를 마냥 모른 체 할 수는 없는 터. 언젠가는 해야 될 것만 같아 때를 기다렸다. 한 달, 두 달…
때가 왔다. 처형들이 온 날이다. 사무실을 한 바퀴 돌아보고 가는 길에 아내가 남편은 점심도 “집에 와서 먹어요, 점심 값보다 기름 값이 싸다고.”
이 때다.
“식당음식이 아내 음식만 못해요. 어느 집을 가나.”  “마누라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씀이겠지.” 나의 칭찬과 처형의 대답이다.
변론은 다음과 같다.
“아니다. 사실이다. 여북하면 둘째 아들이 어머니가 만든 음식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아내가 만든 음식보다 더 맛있는 식당이 없다고 했을 때 아내는 왜 움찔했을까. 뭘 훔쳐 먹다 들킨 것도 아니고, 태산 경동할 일도 아니거니와, 아닌 칭찬을 한 것도 아닌데.
다음.
내가 근심 걱정했던 아내의 기고만장은 보이지 않았다. 아내의 나이 예순여덟. 내가 애써 이 말을 꼭하고 싶었던 것은 아내의 기를 살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아내의 사위여가는 열정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단독] 3년차 의정부시청 여성 공무원 숨진 채 발견
  • 박정 후보 유세장에 배우 유동근氏 지원...‘몰빵’으로 꼭 3선에 당선시켜 달라 ‘간청’
  • 감사원 감사 유보, 3년 만에 김포한강시네폴리스 산단 공급
  • [오늘 날씨] 경기·인천(20일, 토)...낮부터 밤 사이 ‘비’
  • 김포시청 공직자 또 숨져
  • [오늘 날씨] 경기·인천(24일, 수)...돌풍·천둥·번개 동반 비, 최대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