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낮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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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낮추면
  • 유지순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20.06.1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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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유지순 | 우리 민족의 특성 중 장점은 부지런하고 억척스럽거나, 어떠한 역경에서도 잘 적응하는 힘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좋은 부분도 있는 반면 어딜 가나 목소리가 큰 사람들은 틀림없이 한국인이라는 지적은 부끄러운 단점이다.

지하철에서나 음식점, 버스 안에서, 마치 옆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큰소리로 전화를 하거나 떠드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얼마 전 음식 맛이 괜찮다는 음식점에 갔었다.

음식 맛은 좋았는데 옆에서 먹는 사람들이 어찌나 큰소리로 떠드는지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여서 다시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린 물에 살던 고기는 세상 모든 물이 흐리다고 생각한다. 흐린 물에 살다가 맑은 물에 가 봐야 세상에 맑은 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듯이 큰 목소리로 떠드는 국민들 사이에 살고 있으니 그 목소리가 큰 것인지 작은 것인지 알 수가 없나보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노인들에게는 배려를 하느라 큰소리로 얘기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젊은 사람들이 안하무인으로 소리가 큰 것은 가정교육이 부족했거나 교양이 덜 쌓여서이다.

지난봄에 남편과 함께 거문도를 구경하고, 백도를 돌아보는 배를 탔다. 제법 큰 배여서 사람들이 많이 탔고 외국인들도 몇 사람 눈에 띄었다. 날씨도 쾌청하여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구경하느라 정신을 뺏기고 있는데, 옆자리에는 남녀 노인들 10여 명이 둘러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들은 술이 얼큰히 취해 떠들며 노래하고 춤을 추고, 술잔을 서로 권하며 돌아 다녔다. 같은 한국인인데도 짜증이 나고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외국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언제 어느 때나 예상하지 못하는 돌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바다 위에서 아무 대책 없이 이렇게 술 먹고 정신 못 차리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옆에서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벼르고 별러서 하는 바다 여행인데 그 아름답고 멋진 바다 풍경은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술이나 마시고 떠들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은 삼가야 될 일이다.

힘든 일상의 굴레에서 해방이 되어 마음껏 떠들고 노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조금만 자제하고 목소리를 낮추면 모두 즐거운 여행이 됐을 것이다. 자기들만 즐기자고 하는 행동 때문에 피해를 입어야 되는 옆 사람들도 안중에 두어야 될 것이다.

1979년대에 우리나라 대사로 와 잇던 일본인 가네야마씨가 우리나라의 전통결혼식장에 갔다가 한 얘기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혼식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너무 떠들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결혼식이 끝나자 볼일을 다 보았다는 듯이 조용해져서 이상하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결혼식이 진행 될 때는 조용한데 결혼식이 끝나면 그때부터 결혼식 진행에 대한 비판을 하느라 말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이 두 민족의 차이점은 어떤 태도가 옳은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일본에서 시집 온 여자가 한국 사람들은 목소리가 크고 말을 빨리 해서 한국말을 알아듣기가 어렵다고 한다. 일본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옆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소곤소곤 얘기를 하도록 교육을 받아서 한국인들이 큰소리로 얘기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월남전 당시 숨어서 정찰하는 월맹군이 적의 야간 식별방법으로 장비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미국이고, 시끄럽게 떠들면서 지나가면 한국군으로 판별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노래방에 한국인 입장을 사절 하는 곳이 있는데 이유는 듣지 않아도 뻔하다.

술 먹고 떠들고, 마이크 한 번 잡으면 넘겨줄 생각을 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고,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듣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진다.

떠드는 민족인 우리도 좋은 점은 있다. 금년처럼 월드컵을 치를 때 모두 한 마음이 되어 마음껏 외치며 응원하는 것이다. 응원할 때는 큰소리 지르고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차분하게 목소리를 낮춘다면 얼마나 좋을 것이가.

정작 목소리를 낮추어야 될 사람이 있다. 정치가들이다. 상대방이 잘못한다고 사사건건 반대하면서 떠들지만 말고 조용히 목소리를 낮추고 대화와 타협으로 진정 국가에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고 실행할 일이다.

우리 서로 목소리를 조금만 낮추고 모든 일에 심사숙고한다면 좀 더 품위 있는 국민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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