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다움의 미학(美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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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다움의 미학(美學)
  • 유지순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20.06.0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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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유지순 | 해가 바뀔 때마다 1년 간의 계획을 어김없이 세워보지만 언제나 물거품이 되는데도 새해가 되면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설렘과 희망, 꿈을 갖게 된다.

이렇게 스쳐간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인 것 같은 데 어느새 많은 세월이 흘러 지나간 날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랄 만큼 넘쳐흐르고 있다.

아름다운 모습의 보기 좋은 어른으로 거듭 나야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과연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내 모습이 어떻게 비쳐질 것인지 늘 생각을 하게 된다.

하루하루 나이를 먹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어른답게 아름다운 마음과 모습으로 살아야 되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나이 들어 주름과 흰머리가 늘고 보기 싫게 변해가는 모습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며 현상이지만 좀 더 보기 좋게 나이 들어가고 싶은 것은 누구나 이루고 싶은 꿈이다.

아등바등 살아온 삶속에서 실망스러웠던 모습은 지워버리고 젊은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늘 마음속을 맴도는 숙제다.

이제 이만큼 살아 온 세월이 켜켜이 쌓였으니 사물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여유로운 마음과 천천히 가는 자세로 살아야 될 것이다. 지나간 삶을 바탕으로 오늘은 잘 가꾸어 나가야 하리라. 욕심을 버리고 물질에서도 해방되어야 된다.

가톨릭 서울 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성탄메시지에서 우리 삶의 중심은 물질적 가치가 아니라 정신적 가치를 향해야 한다라고 발표하셨다. 추기경님 말씀대로 물질에 대한 욕심은 버리고 정신적인 가치를 향해 삶을 이루어 가야할 것이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삶이라 초조하고 불안하지만 마음을 편히 갖고 느긋하게 가는 것이 어른다움이리라.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인 물질을 버릴 것은 버리고 나누어 줄 것은 나누어 주고 언제 떠나도 좋을 만큼 홀가분하게 주변 정리를 하고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이제라도 가졌으니 다행한일이다.

지나간 세월을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도 걱정하거나 고민하지 말 것이며 늘 새로운 날을 맞듯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살자고 다짐하지만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으니 이것도 어른다움의 생각이 모자라서가 아닐는지.

살 날이 그리 길게 남지 않았다 해도 하나라도 더 부지런히 배우고 도전하면서 의욕적으로 즐겁게 활기차게 살자는 용기도 가져 본다. 평균수명이 많이 길어졌으니 그 길어진 수명만큼 잘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면서 건전하게 시간도 보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지내야 되니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며칠 전 꽃가게 앞을 지나다 꽃이 곱게 핀 시클라멘 세 포기를 사왔다. 주홍과 짙은 자색의 국화가 꽃잎을 떨어트린 뒤로는 초록색뿐인 우리 베란다에 빨강과 분홍, 노란색의 꽃을 갖다 놓으니 다른 화분들도 생기가 돈다.

거실에 앉아 햇볕 잘 드는 베란다의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세상을 밝게 장식하는 갖가지 빛깔들을 보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이런 작은 일이 행복이라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행복들이 가득 차 있을까.

어떤 모양과 색깔을 지니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지, 지나간 삶을 바탕을 오늘은 어떻게 잘 꾸려야 하는지, 여유롭게 많이 웃고 누군가에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인지, 건조한 일상에서 기름이 흐르는 생활, 표현하지 않아도 깊이를 보여줄 수 있는 넓은 사람, 누구에게나 사랑을 듬뿍 줄 수 있는 사람, 매사에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계로록(戒老錄)’의 저자인 소노 아야코는 나이 들어 필요한 네 가지를 허용, 납득, 단념, 회귀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이 네 가지 안에는 어른이 가져야 될 겸허한 마음이 다 담겨 있다.

이제는 이만큼 살았으면 마음도 물질도 비우면서 남은 세월 아름다움이 넘치는 겸손한 삶을 살고 싶다. 이런 삶이 어른다움의 미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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