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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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의 공간
  • 중앙신문
  • 승인 2020.05.0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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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위원
김영택 칼럼위원

심신이 피곤해서 휴식을 취하려고 집으로 돌아와보니 마침 가족 모두가 출타해 집안 분위기가 썰렁하다시피 조용하다. 거실 한편 구석에 잠자리를 만들어놓고 벌렁 드러눕자 텅텅 빈 한낮의 집안은 고요한 정적만이 흐른다.

소리 없이 흘러든 정적에 진공상태가 되어버린 작은 공간은 수면을 취하기보다 순간적으로 사념의 생각 속에 빠져들게 한다.

미국의 철학자 조지프 머피는 정적을 가리켜 사람의 마음에 휴양을 찾아주는 안식처라고 극구 예찬을 했다. 그는 숨 막히고 답답한 인생살이의 격랑 속에서 그래도 잠시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자체가 삶의 기쁨이요 희망으로 피력했다.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육체적 피로는 충분한 수면만이 부족한 에너지를 보충시켜서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듯이, 정적은 인간 사회와 격리된 채 3세계를 잠시나마 영적으로 조화 시켜줌으로써 사람의 마음에 비타민과 같은 영양을 공급하고 원기를 회복시켜준다.

그러나 숨을 쉬지 않고 생명이 끊어진 것처럼 긴 정적만이 흐르는 공간의 분위기는 안정을 취하기보다는 공포와 두려움의 블랙홀 속으로 순간적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밀림과 같은 깊은 산속에 나 홀로 버려진 것 같고, 별빛도 없는 캄캄한 밤을 무작정 헤매는 것 같다.

머피 이전에도 인류학자로 널리 알려진 에머슨은 정적을 이렇게 표현했다. '정적이란 잠재의식이 무한한 예지가 감응하여 명확한 해답을 얘기하면서 사념의 초점을 이상적인 목표로 도달시켜주는 침묵의 상태'라고 말했다.

침묵과 관련된 말을 이어보면 예부터 침묵은 황금과도 같은 귀한 존재였다.

우리 조상들은 슬기롭게도 행복과 고뇌가 교차되는 침묵의 시간을 이용하여 마음을 다스렸고, 심신을 수련했으며 영광된 순교자의 길을 선택한 종교인들은 도와 이치의 깨달음을 침묵의 긴 고행 끝에서 얻어냈다. 사람들 간에 비교되는 말로서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다. 매사에 사려 깊고 허튼 말을 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말만 꼭꼭 집어서 말하는 사람을 가리켜 과묵한 사람이라 존칭했고 배운것 없이 사방팔방 거짓말만 늘어놓고 잔머리만 굴리는 사람을 빈 수레에 비유하여 얄팍한 사람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세상이 시끄럽고 어지럽다 보니 사회 전반에 병이 들어 이제는 사람이 먹는 음식물에까지 죄의식 없이 맹독성 화공약품을 사용해 사람의 신체기능이 손상되고 암과 같은 불치의 병을 발생시켜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한다. 그러나 먹는 것보다 더 걱정이 되고 두려운 것은 극심한 가뭄으로 처참하게 갈라진 논바닥처럼 끝없이 타락되어 가는 인간의 윤리관이다.

때마다 정부가 나서서 교육과 법 집행으로 사회 안정과 국민 정서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선언하고는 있지만 법 집행은 여전히 구속력이 약하고, 교육은 보수와 진보의 대립과 사각지대로 인해 진전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음을 본다.

모든 것이 인구 팽창의 원인으로만 돌려지다 보니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도덕적 영양소가 어처구니없게도 몰지각한 사람들로 인해 심각하게 파괴되어 고갈되어간다.

생사에 있어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존의 신드롬을 불러오게 하고 심적 변화를 발생시킨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악마의 유혹에 빠져들어 혼탁한 삶을 사는 인간 사회와는 달리 속세를 벗어나 불가에 귀의한 스님들은 오욕이 넘치는 금단의 세상에서 생활하기를 불편해했고, 교회의 성직자들 역시 신앙 외에 외부와의 접촉을 그리스도의 성역 밖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종교의 역할이 큰 오늘날에는 산속의 스님들은 부처의 형상에 얽매여 있기보다는 눈앞에 펼쳐진 중생들의 고통에 혜량을 베풀고자 하산을 당연시하고 교회의 성직자도 만인을 위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나눔의 즐거움 속으로 뛰어든다.

무릇 깨달음은 성직자들에게는 꼭 보이지 않아도 보이고, 보여도 보이지 않는 일반인과 구분된다고 한다. 고승들이 인용하는 부처의 가르침 중에 하심을 통해 득도를 더욱 깨우쳐나가기를 바라는 법문이 있다.

걱정스러운 것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지탄을 받는 사람들이 가증스럽게도 종교를 방패로 제 허물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종교만 믿으면 모든 죄를 사면 받을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그런 치졸한 생각 자체가 용서받지 못할 죄악으로 나락의 고통 속으로 빠져들 뿐이다.

철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속 실체는 선보다는 통제할 수 없는 악령이 더 강하다고 한다. 모든 것이 물질 만능주의에 살다 보니 매일같이 보고 느끼는 것이 도덕과는 동떨어진 지저분한 이야기들뿐이고 칭찬보다는 남을 헐띁고 비방하는 일이 더 많다.

범죄가 극성을 부리고 치열한 경쟁 속의 우울한 사회를 살아가자니 쓸모없는 백 마디 말보다는 때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혼탁한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데에 다소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인구증가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고 삶의 중심체가 불균형으로 기울다 보니 삶에 대한 회의와 욕구불만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때로는 눈덩이처럼 쌓여만 간다.

그러나 무심한 세월은 삶의 희망을 북돋아 주기는커녕 알 수 없는 의문만 이 작은 공간 속을 증폭시킨 체 오늘도 유유 작작 잘도 흘러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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