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화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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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화폭
  • 이상국
  • 승인 2020.04.0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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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주식(主食)으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쌀이 괄시(恝視)를 받기 시작했다. 올해 모내기는 엉망진창이다. 심어 놓은모가 세 개 건너 한 개는 외대궁이다. 분얼을 해 봤자 가지 몇 개를 칠 것인가. 아예 금년 농사 1/3은 감량될거란 각오를 해야 할 판이다.

울화를 씹으며 아래 논을 내려다 보니 더욱 가관이다. 듬성듬성 심지 않은 부분이 훤하다. 노환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논주인 할아버지가 보았더라면 까무러치고 말 일이다. 아예 반도 심기지 않았다. 그런 논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도대체 모내기를 어떻게 한 건지. 이앙기 기술자들이 모의(謀議)를 했던가.

아무렇게나 대충대충 심어주고 말자!”

원래 모를 심을 땐 논 가장자리는 물론 귀퉁이까지 알뜰하게 심었던 게 모에 대한, 그리고 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작은 논을 최대한으로 늘려 모를 심었던것이다. 그런데 기계가 논 가장자리 한 줄은 심을 수 없어 주인이 돌아가면서 모를 이었다. 20여 년 전이던가.

그런데 어느 해부터 한 줄은 안 심는 안일(安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논두렁 한 줄 안 심기는 가을에 한 줄을 낫으로 일일이 베어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니 얼마나편한가. 그 쉽고 편한 습속(習俗)은 급속도로 번져 모두들 안 심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젠 논 네 귀퉁 이마저 심지 않는다.

이런 것, 저런 것 모두 싸잡아 누군가 탓을 하니 돌아 오는 답.

논농사는 돈 안 돼요.”

쌀 소비가 안 돼, 쌀값으론 이 시대 경제에 한참 모자란다는 말씀이다.

3공화국 시댄가. 식량 자급자족이 힘들어 통일 쌀을 만들어 수확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그도 모자라 외국에서 몇만 톤씩 수입해 들여오던 때가 40여 년 전이다.

전두환 대통령 때도 모자라는 쌀을 수입하다 너무 많은 양을 수입하는 바람에 몇 년씩 재고량이 남아돌던 때도 있었으며 농사꾼에겐 최고의 농사가 논농사라 병충해 방제니, 비닐 보온 절충못자리니 쌀 재배에 관한 종자나 기술을 기를 쓰고 도입했으며 강제로 재배기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대통령이 모내기, 벼 베기에 우선 앞장서서 시범을 보이기까지 했던 쌀이다.

언제부터인지 이 나라 아이들이 핫도그, 햄버거, 피자로 연명하는 법을 배우자 쌀이 남아돌기 시작했다. 전국 농업인대회는 성토대회가 되어 협의에 나서서 해마다 쌀값 안 올려준다고 국가를 상대로 투쟁을 하던 때도 있었다.

쌀은 청동기 시대부터 우리나라에 전래돼 귀중한 식품으로 취급된 모양이다. 여주 점동면에선 탄화미가 발견되어 꽤 오랜 역사적 사실로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기재되어 있다. 그런 걸 보면 우리 민족을 먹여 살려온 식품으로 대접받아 마땅하지만 외국산 밀에 밀려 별 볼일없는 흔히 먹는 밥쌀로 떨어졌다.

오래 전부터 밥이 없어 궁핍한 민족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사(餓死)해 죽어간 게 쌀이 모자라거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때는 김동인이 아사로, 몇 년 전엔 어느 시인이 굶어 죽었다. 밥 한 그릇만 있었더라도 죽지 않았을 목숨들이다.

아침 논에 물을 대러 나갔다가 이웃 논바닥이 이상하게 훤하다. 뭔가 뻥 뚫린 것만 같아 찬찬히 훑어보니 논바닥이 비어 물만 고여 있는 것이다. 80년대 보행식 이앙기로 혼자 며칠을 두고 심는 것을 보고 저 친구 대단하다 했는데 모가 제대로 심기지 않았나 보다. 빈자리가 많았다. 매일 모 누비기를 하고 있는 걸 보았는데 기어이 포기하고 말았구나. 그의 아버지가 언제나 꼼꼼쟁이라고 적잖이 칭찬하셨는데 그것을 보셨다면 어떠하셨을까.

매일 아침이면 누구보다 먼저 나와 한 바퀴 돌아치던 그의 아버지도 그도 보이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논 갈아 엎고 다시 시작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농사란 시기가 있는 법. 적어도 1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이 친구 성질 못 참아 자살하는 것 아닌지. 오래전의 일이다. 농약 잘못 뿌려 논 한 배미 몽땅 고사시킨 일이 있었다. 그가 그해 가을을 넘기지 못하고 목을 맨 일이 있었다.

어느 해 목 도열병으로 전국적으로 폐농(廢農)한 일이 있었다. 국가에서 피해보상을 조사할 때, 농사꾼이란 농사꾼이 면사무소에 진을 치고 아우성을 칠 때, 한구석에 술에 잔뜩 취한 젊은이가 마지막 자기 차례가 되자 농사도 농사꾼에겐 일 년이란 화폭에 그린 하나의 그림, 예술이란 말입니다.”

한마디 하고 비틀거리며 떠났다. 그의 뒷모습이 어찌나 허전하던지.

그의 말대로 한다면 금년 논농사는 당장 찢어 버리고 싶은 거대한 한 폭 그림이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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