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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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 중앙신문
  • 승인 2020.03.2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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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출근길에 울려 퍼지는 노랫말.

하루에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 날 보고 하는 말 아닌가.

나는 내가 퍽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위대한 사람이 될 거라고 믿었다. 훌륭한 인물이 될 가능성의 인간이라 장담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위하여 치열하게 달렸다. 시시한 것들은 시시해서 돌아보지도 않았다. 꽃도 장미처럼 활짝 붉게 피어야 한다. 망초꽃, 남들이 그 흔히 좋아한다는 오랑캐꽃도. 그게 꽃이냐. 일생에 단 한번 피어보는 꽃인데. 기왕에 한 번 피는 꽃이라면 장미나, 백합, 함박꽃, 해당화 정도는 되어야. 그런 꽃이

되기 위하여 평생 한 번 화려하게 피기 위하여 열공, 열독, 매일 저녁 양초 한 자루씩은 태워야 잠이 들었다.

오직 앞만 보고 달렸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언젠가 달리기를 하다가 뒤돌아보는 사이 따르던 친구가 추월하고 말았다. 뒤돌아보는 순간. 그 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앞서가려고, 앞서가려고 물불가리지 않고 뛰었다. 저 죽는 줄 모르고.

가끔 뒤뚱거리며 걸었다. 위대한 실수, 영어에서 헛딛고 말았다. 영어.

비디오도, 카세트도, 동영상도, 온라인 강좌도, 하다못해 그 흔한 학원조차도 없었다. 오로지 독학, 가능키나 하냐. 안 되는 영어 대신 수학을 죽어라 팠다. 그런데 수학이 영어를 대신해 주지는 않았다.

못된 영어 때문에, 패한 영어 때문에 내 인생의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영어를 피해 다녔다. 영어 없는 시험만. 그런데 그 불이익의 정도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공무원으로서 진급의 길이 막혀 헤어날 길이 없었다. 어쩌다 열어준 구제의 길, 숨 쉴 수 있는 길,그 틈을 비집고 막차를 탔다. 겨우 빠져나와 본류에 합류했지만 때는 늦었다. 영어로 인한 지체의 시간이 너무길어, 먹은 나이가 너무 많은 것도 불이익이 될 줄이야.

인생의 꽃을 피우고 만개한 자기를 자랑할 시간이 그리길지 않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모두 끝났다. 내가 피운꽃이 과연 해당화, 작약, 다알리아, 백합, 장미에 버금가는지.

천만에. 내가 비웃던 오랑캐꽃, 망초 대에 피는 꽃은 무슨. 그도 훨씬 못 미치는 할미꽃보다 한참 밑도는 이름 없는 꽃. 한 송이 꽃?

인생 길게 잡아 100. 이것도 선녀의 비단 옷으로 스치고 스치며 스쳐서 닳아 없어지는 바위 하나의 생존기간을, 천지가 한 번 개벽을 하고 다음 천지가 개벽할때까지의 시간을 겁으로 따지는 신의 눈으로 본다면

겨우 하루해에 불과할 것이니, 나는 하루에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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