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받지 못한 촌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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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받지 못한 촌극
  • 김영택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20.01.1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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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칼럼위원)
김영택(칼럼위원)

| 중앙신문=김영택 |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려 바깥출입을 자제하다 보니 게을러 저서 먹는 게 다 살로만 가는 것 같고 몸이 비둔해져서 이러다가는 안될성싶은 생각에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아 제대로 실천이 안 된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아침 운동을 하러 집 밖으로 나섰으나 하필이면 운동하러 나선 날이 영하 15도에 체감온도가 30도까지 내려가 입이 덜덜 떨리고 귀가 떨어져 나갈 것같이 한파의 추위가 올겨울 들어 제일 추운 날씨였다.

매서운 추위로 운동을 포기하고 돌아갈까 망설이다가 이왕 운동을 하러 나왔으니 그래도 조금은 해야 될 것 같은 생각에 오기를 부려 가벼운 조깅 과체 조로 아침 운동을 했지만 몸상태가 좋아지기는커녕 시베리아의 찬 공기에 숨이 막힐 정도로 입은 딱딱 얼어붙고 온몸이 동태처럼 꽁꽁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추위와 싸워가며 운동하기를 이십여분 뼈까지 스며드는 추위와 시간이 갈수록 위력을 더해가는 동장군의 기세에 눌려 쫓기다시피 집으로 돌아오니 신체의 외부 추위만은 영하의 온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몸안의 알싸한 냉기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강추위로 인해 추위가 풀릴 때까지 당분간 아침운동을 자제했다.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어대며 운동을 하던 날이 며칠 지났다. 밤잠을 자고 나니 얼굴의 안면근육이 갑자기 씰룩거리며 얼굴을 쪼개는듯한 통증이 왔다. 상비약으로 보관 중이던 진통제를 복용한 후 노화현상 이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며칠이 지나도 통증은 가라앉지 않고 더 심해졌다.

그제야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건강은 자랑할게 못된다더니 체력만 믿고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 것이 병을 불러 드린 것 같았고 몸에 이상이 온 것 같았다. 지난해 건강검진 시 지나친 음주로 인해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았고 없었던 혈압까지 생겨나서 금주를 해야겠다는 의사의 권고가 있었지만 이를 무시하고 무절제하게 생활해온 것이 결국은 오늘에 이른 것 같아 후회 막급 되었다.

병의 증세가 뇌경색과 중풍의 초기 증상 같은 생각이 들어 잔뜩 겁을 먹은 체 분당의 큰 병원을 황황히 찾아갔다. 병원에 도착하여 진료순서를 확인해보니 사전에 특진 예약을 신청해 노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진료 차례는 환자 대기자 명단의 맨 아래쪽에 기록되어있어서 오늘 안에 진료를 받을지 의심스러웠다.

더구나 비좁은 환자대기실 안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와 보호자들로 인해 노천시장처럼 북새통이었다. 웃자고 한 이야기이겠지만 병원에 가면 멀쩡한 사람도 환자로 보이고 경찰서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죄수로 보인다더니 내가 그런 꼴이 되었다. 시쳇말로 병원에 온 사람들이 모두가 환자 로보여 그 말이 사실처럼 느껴졌고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기본적으로 검사하는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를 받은 후 다음 순서를 기다렸지만 대기환자가 많다는 이유로 MRI, CT촬영은 일주일 후로 미루어졌다. 초조히 기다리던 일주일이 되었다. 다시 병원을 찾자 심전도 검사부터 시작한 검사는 MRI, CT 뇌신경 근전도 검사에 이르기까지 의료진의 정밀검사를 받았다. 검사 시 방사선을 이용해 신체 내부를 이곳저곳 촬영하는 영상검사는 참을만했고 순조로웠다.

그러나 뇌신경을 검사하는 근전도 검사만은 머리와 얼굴에 전기 충격을 주는 검사 때문인지 불안하고 긴장이 되어서 식은땀이 흐르고 초주검이 되다시피 사색이 되었다. 모든 검사가 끝나자 결과는 또다시 일주일 뒤로 미루어졌다.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알려주는 날자를 하루하루 기다리고 있자니 불안한 마음속에 알 수 없는 고통만 짐짝처럼 쌓여만 갔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씰룩거리고 씀벅대던 얼굴이 본상태로 서서히 돌아오는 것 같아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 거울을 보니 얼굴 상태가 전보다 호전되었지만 그래도 마음속 한편에는 안도의 한숨보다도 꼭 큰 병에 걸린 것만 같은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검사 결과를 알려주는 날이 밝아왔다 환자 대기실에서 담당의사를 기다리는 시간이 10년은 된 것 같고 염라대왕 면전으로 불려 나가는 것 같은 두려움 속에 헤어나 질 못했다.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줄어들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간호사의 호명에 잔뜩 긴장된 자세로 담당의사에게 다가갔다.

말 한마디로 생사를 좌우하는 결정권을 가진 담당의사가 오늘따라 성인처럼 위대해 보인다. 불안한 마음을 억제하고 예의를 갖춰서 정중히 인사를 건네자 직업의식 속에 묻혀 무덤덤한 표정인 담당의사는 환자는 본체만체 컴퓨터만 주시하며 입력된 검진 결과를 확인하더니 잠시 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하는 말이 김영택님 정상이시네요 이상 없으니 그냥 가셔도 됩니다라고 검진 결과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담당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두려움에 잔뜩 긴장되어있던 나는 지옥을 헤매다가 구원을 받은 심정이었다. 얼굴 표정이 화색으로 바뀌는 순간 그때까지 남편곁에서 보호자로 동행하여 걱정이 태산 같았던 아내가 눈꼬리를 치켜들며 그것 봐요 추운 날 밖에서 무리한 운동을 해 동상이 온 것 아니에요 하고 볼멘소리를 했다.

남편의 건강에 이상이 없기를 바라면서도 검진 결과에 심기가 뒤틀린 아내의 말이 모두가 사실인지라 나의 구차한 변명이 아내에게 통하지 않자 의사는 재미있다는 듯이 너털웃음으로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진료시간을 마무리했다. 병원문을 나서자 만만찮게 들어간 병원비가 아까웠고 억울했다 바보가 달밤에 체조한다고 추운 날 운동만 안 했어도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후회가 앞서자 가족들에게 면목이 없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실없던 행동에 자괴감이 들었으나 돈보다는 건강이 우선이라고 위안을 가져보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귀로 길 차 안에서 연실 잘못된 행동을 꼬집는 아내의 잔소리가 바가지 소리로 들리기보다는 퇴원을 한 환자에게 건네는 축하의 말로 기분 좋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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