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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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산책
  • 김영택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12.0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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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위원
김영택 칼럼위원

| 중앙신문=김영택 | 춘곤증 같은 피곤함이 엄습해와 한잠 자면 낫겠지 하고 억지로 낮잠을 청했지만 잠은 안 오고 괜스레 우울증만 가중된다. 얼핏 생각나는 것이 산림욕이 몸에 좋다는 말이 생각나서 한동안 등한시했던 뒷산을 향해 휘적휘적 걸었다.

몸이 아프면 당연히 병원을 찾아 가는 것이 정상이나 나 스스로 생각할 때 병원까지 갈 상태는 아닌 것 같고 산에 올라 땀이라도 흘리면 몸 상태가 개운할 것 같아서 나름대로 내린 돌파리 처방이었다.

산에 오르자 가을도 겨울도 아닌 11월 하순의 늦가을 풍경이 산 중턱에서 아쉬운 듯 멈칫거리며 제 갈 길을 주저한다. 울창한 숲에 뱅뱅 둘러싸여 완충지대와도 같이 느껴지는 작은 등산로에 들어서자 언제 봐도 정갈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풍경이 변함없이 나를 맞아준다.

숲 속을 바라보니 남몰래 겨울옷을 갈아입기라도 한 듯이 우수수 낙엽을 떨군 큰 나무들 틈새에 꽉 막혀서 갑갑해 보이는 작은 나무의 단풍잎이 가쁜 숨을 할딱거리는 것 같아 무심중 발길을 멈추게 한다.

짙은 수묵화로 그려질 듯한 숲 속은 갈참나무들이 털어낸 가랑잎이 볏짚 북덕거리처럼 수북이 쌓여서 땅 표면이 푹신푹신한 금실 이불로 뒤 덮혀진 것 같아 이내 푸근한 마음이 든다.

산이 길을 내주고 나무가 흘려준 낙엽을 천천히 밟아나가자 사각사각 낙엽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고 싱그럽게 들린다. 방풍림같이 빽빽하게 나무들로 둘러싸여 잠시 하늘이 가려진 등산로를 걷자 붉은 햇살이 레이저 광선을 나무들 틈새로 번쩍번쩍 쏘아대는 통에 반사적으로 몸이 움찔움찔 사려지고 앞으로 나가기가 두렵다.

산에 올랐지만 짧은 등산로에 올라서니 등산이라기보다는 도시공간에 조성된 소공원을 산책하는 것 같은 묘한 기분에 젖어든다 복잡한 생활 속에 묻혀 살다가 산에 오르면 우선 머릿속이 환하게 맑아지고 몸속의 나쁜 기운이 정제되어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 그 무엇보다도 좋다.

매일 보는 산이지만 높은 산을 바라다보면 우직함을 느끼고 작은 산을 바라보면 친근감이 앞선다. 산을 바라다보면 언제나 마음속엔 푸근한 감정이 앞섰지만 산속을 걷는 보람 또한 산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신선한 체험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 만나면 산을 찾아가는 이유는 산속에 저장된 에너지를 충전 받아서 심신의 피로를 회복하기 위한 일련의 수단이며 방편이기도 하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삶의 의제를 논하고 해결하려는 공동체의 참여의식보다는 나만의 생활을 중요시하고 집착하는 이기주의 생활에만 몰두한다.

삶에 대한 진정한 의식을 스스로 깨우치지 못하고 고 질적인 삶을 지속적으로 살다 보면 생활에 강박증이 생겨나서 심신이 무기력해지고 피폐해진다. 못에 박힌 것처럼 고정적으로 살아온 삶이 옳고 그름을 떠나 콤플렉스와 같은 문제를 그때그때 극복하지 못하면 언젠가 그 문제는 악재가 되고 장애물이 되어 생의 앞길을 불시에 가로막는다.

나이가 들어선 지 요즈음 지난 시절이 자꾸만 그리워지고 살아온 나날들이 보물 같은 생각이 들어 타임캡슐에 보관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친다. 비록 인생이라는 삶이 주체하기 어렵고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오늘보다는 내일의 삶에 비중을 두고 살아가는 생활이 더없는 기쁨과 활력소로 부풀려진다.

산은 등정이라는 거닐음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쾌감에 젖게 한다. 산에 오르자 무겁게 짓눌렸던 몸상태가 한결 좋아졌고 머리를 괴롭혔던 스트레스도 사라져 가뿐해졌다. 가벼운 운동으로 경직된 몸을 풀고 돌아오는 길은 즐거움 바로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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