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여 영원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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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여 영원 하라
  • 중앙신문
  • 승인 2019.10.2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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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 (수필가, 칼럼위원)

중학교 1학년 늦봄, 같이 진학한 초등학교 동창생 몇 명이 2학년짜리 친구들과 강을 건너 양섬강가에서 배투리(소라. 다슬기를 그렇게 불렀다)를 잡으며, 천렵을 하며 놀고 있었다. 갑자기 어느 친구가 ‘교장이다’ 소리치며 도망을 치는 게 아닌가. 얼마쯤 떨어진 강에서 낚시를 하시는 교장선생님을 보고는 제풀에 겁이 난 것이다. 모두들 덩달아 허겁지겁 짐을 챙겨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을 갔다.

다음날 월요일 조회시간에 할아버지 같이 인자한 석성균 교장선생님은 훈화를 하시다가 어제 교장에게 인사는커녕 도망친 학생들이 있었다고 일갈 하시며 주의를 주셨는데 다행히 더 이상 벌을 내리지는 않으셨다.

계절적으로 어느 때인지는 기억에 없는데, 여주 강에는 가끔 뗏목이 지나갔다. 누군가 ‘돼지우리 지어라’ 선창을 하면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런 게 그들에게 어떤 마음의 상처를 주는지도 모르고 우리들은 합창을 해댔다. 지금 짐작컨대, 영월이나 정선에서 왔을 뗏목꾼들은 의례 그러려니 ‘네 이놈들’ 하며 지나갔다.

장마가 지면 배가 강을 건널 수 없어 학교를 쉬니까 그건 좋았지만 강변 마을 논들은 시뻘건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빈약한 논둑은 어이없이 허물어져 가뜩이나 바쁜 농부들 일손을 잡아당겨, 어린마음에도 좋지 않았는데 이제는 개울둑을 높이고 농로와 수로를 정비하여 홍수피해 걱정이 없다.

사비강을 건너면 뱃삯이 여름에 보리쌀 한말, 가을에 쌀 한말이고, 학동나루를 건너면 학생은 공짜였지만 동무들을 따라 주로 사비(천남2리)쪽으로 통학하던 한강. 태어나기 전부터 인연을 맺어 이렇게 3년간이나 건너며 한강의 애환을 몸으로 느끼고 평생을 두고 마음에 품었었다.

어느 때인가 여주대교가 놓이고 차량이 늘면서 다리 위를 건너다보니 어린 시절 장난치며 강을 지나던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4대강 사업으로 내가 강을 건너 여주중학을 다닐 때의 초라한 한강모습은 찾을 길 없고, 수려하게 정비된 강변이며 503m짜리 보, 830m짜리 공도교, 4950kw발전소가 위용을 뽐내며 여주보는 경향각지의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내 아내는 집에서부터, 잘 포장된 개울둑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여주보를 건너 양섬 야구장을 돌아 천남지구 공원에서 하모니카를 불며 초여름 정취를 즐기는 자전거 마니아다. 나는 승용차로 따라 나선다. 강 건너 왕터마을은 새벽안개에 쌓여 부옇게 숨어있고, 강위를 나는 물새 울음소리는 아내 하모니카 반주소리 같다. 팔각정에서 내려다보이는 즐비한 시비(詩碑)며 야생화, 잘 다듬어진 산책로가 새삼 4대강 사업의 찬란한 변신을 웅변 한다.

한때, 당산리 공군사격훈련장 안전구역 확장 계획으로 인근이 발칵 뒤집혔을 때, 대통령과 동기동창이고, 대통령실장과는 고등학교 선후배라면서 손 놓고 바라만 볼 거냐는 주변 인사들의 핀잔을 듣고 건의서도 보낸 적이 있는데 나의 힘은 아니겠지만, 일 마무리가 잘 되어 여주보는 더욱 정감이 가고 빛난다.

짧은 기간, 단군개국 이래 한 번도 손대지 못했던 강들, 쓰레기, 오폐수를 치워 병들었던 강들을 깨끗하게 청소 하고 과학문명을 접목시키며 인간의 지혜를 더하니 건강을 잃어가던 강들은 기지개를 켜고,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쾌거가 눈앞에 펼쳐지고 국제적으로도 유명해져서, 이포보는 태국 총리가 견학을 올 정도로 명성을 날리고, 외국에서 모방하기에 바쁘다하지 않는가.

여주. 예부터 비옥한 농토 훈훈한 인심, 십풍오우(十風五雨 온갖 기상기후조건)가 온건한 고장, 순전히 한강의 덕이었다. 여주보 관망대 위에서 내려다보는 맑은 한강물, 밝게 빛나는 모래사장, 꽃과 나무들. 자전거 길을 경쾌하게 달리는 시민들. 한 폭의 그림이다.

한강. 묵은 때를 벗고 어린아이처럼 명절빔을 차려입은 민족의 젖줄, 인간들의 못된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하며 묵묵부답 유유히 흐르는 한강물은 민족의 대명제이다. 여주 팔경에 노래하는 한강의 체취, 체온은 억겁을 두고 우리를 쓰다듬으리라.

여름날 선선한 새벽 한강에 나와 보자. 자전거에 따끈한 커피, 건과자라도 몇 조각 싣고 와서 정인들과 정담을 나눠보자.
깨끗한 물로 채워진 한강을 노래하자.
우리의 젖줄 한강은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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