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송만기 양평군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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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송만기 양평군의회 의원
  • 양병모 기자  jasm8@hanmail.net
  • 승인 2017.03.2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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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스포츠, 레저, 관광의 중심 양평 만들 것”
송만기 의원이 하키 선수 시절과 가수 활동 당시 에피소드, 양평의 미래 산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중앙신문=양병모 기자 | 관광인프라는 양평 지역경제 부흥

기타와 노래는 내 인생의 활력소

규제 철폐로 군민들의 삶 질 높여야

 

Q 자신을 소개한다면?

A 지난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양평군의회 의원으로 당선돼 양평지역 발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6년부터 양평군수 3회 낙선과 군의원 1회 낙선의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권에 들어가서 정치를 해야겠다는 4전 5기의 의지로 양평군 7대 의회에 들어가는 데 성공해 나름대로 양평발전에 공직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좋은 토의도 하고, 군민의 대변인 역할의 견제 기관으로서 역할과 더불어 때로는 질타도 하고, 격려도 하고, 미래 청사진에 대한 조언과 심사숙고 속에 의원 활동을 열심히 한지 2년 8개월이 지났습니다.

 

Q 유년기 시절은?

A 저는 청소년 대학시절 운동선수와 음악 예술인으로 즐겁고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음악인으로 가수와 작곡가 작사가로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살아온 것은 나의 행복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행복했던 순간만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운동선수로서의 삶이 아주 힘들고 고된 삶이었습니다.

초·중·고 시절부터 축구와 하키 선수로 활동하면서 실격을 인정받아 항상 주장을 맡아왔습니다. 항상 1등을 위해서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하키 선수로는 고교 시절에 청소년대표팀 주장으로 해외 대만으로 첫 시합을 가서 9전 전승을 기록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만 그곳의 요리 식사가 입에 맞지 않아서 너무 고생한 기억이 납니다.

전국에서 모인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들은 음식들을 너무도 맛있게 잘들 먹는데 저는 중국음식 향 때문에 전혀 먹을 수가 없어서 과일과 밥 조금을 먹는 게 다였습니다. 그때 참 힘들었던 식사였는데 지금도 중국에 가거나 동남아에 가면 현 지식을 아직도 그때처럼 거의 못 먹습니다. 운동선수로서의 기억에 남는 것은 해외로 시합 가서 여러 일들이 있고, 그 당시는 하키 스틱으로 매일 맞아야 하고 맞지를 않으면 집에 못 간다는 생각에 맞으면서 운동한 것이 웃을 수도 없는 과거입니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 일들은 스포츠맨들이 똑같이 겪었을 아픈 추억일 것입니다. 그때 그런 선후배 관계들 덕분에 단체생활을 알았고, 조직이 뭔지를 공부했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자평합니다.

 

Q 가수로 활동한 계기와 기억에 남는 일은?

A 저는 전축이 귀했던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수 정훈희 씨의 안개와 삐빠빠 룰라를 들으면서 음악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서 찬양 성가대로 활동을 계기로 기타를 배우고 합창의 테너 파트로 발성을 제대로 배웠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고교시절을 운동과 노래를 하며 지내던 중 우연히 고교시절부터 초대가수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전문가 가수의 길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1979년 1979년에 가수 김수철, 권인하, 이정희 등과 함께 전 동양방송(TBC)에서 개최한 제1회 대학가요 경연대회에 출전해 입상하면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7집 앨범까지 모든 곡을 직접 작사·작곡하면 싱어송라이터로 활동을 통해 저의 생각을 가사와 멜로디로 만들어 인생 삶을 즐기며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노래를 만들고 즐거운 인생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Q 정치에 입문한 계기는?

A 정치에 대한 생각은 어려서부터 대통령이 돼야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도 꿈을 위해 최고학부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국민을 이해하고 경험, 창조적 경영과 여러 상상력 등 이 정치 경영철학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정치 메카닉으로 여기에서 나름대로의 정치철학을 공부해왔습니다. 그런데 현실 정치는 너무 썩었고 부패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어려운 길을 사전오기로 도전해서 1차적 성공은 해냈습니다.

지금의 정치란 자신의 능력과 실력이 아니라 정당에 줄을 잘서야 되고, 공천자에게 잘 보여야 하는 정치적 구조의 모순을 갖고 있습니다. 기초 광역의원선거와 단체장 선출은 정당공천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지역구 국회의원의 횡포는 여기에서 만들어지고 있고, 그에게 잘 보임으로서 다 그렇지는 않지만 무지해도 공천을 받는 일들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은 여야 모두의 실제의 상황입니다. 정당공천제는 폐지돼야 합니다.

저는 정치에 입문한 계기가 정치를 통해 국민의 삶이 행복하고 윤택해지도록 경제적 부를 창출하는 것에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고 꿈입니다.

 

Q 양평군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은?

A 양평군은 여주, 가평 등 7개 시·군이 똑같이 각종 중첩된 규제 속에 처해 있어 우리 양평의 현실이 어두운 게 사실입니다.

정부는 지난 1982년 수도권의 과밀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을 제정·공포했습니다. 수도권 지역에 대한 각종 규제를 통해 지역 간 불균형 성장을 완화하겠다는 것이 당초 목표였는데 수정법 시행 35년이 지난 지금도 양평은 똑같은 상황입니다. 군사 접경지역인 상수원 보호구역과 그린벨트 등 중첩규제에 묶인 양평은 수정법에 발목을 잡혀 1983년 이후로 시간이 멈춘 상태로 가고 있습니다. 겹친 규제만 7가지입니다. 양평군에 적용되고 있는 규제는 1972년 양평군 양서면이 개발제한구역 지정, 1975년 상수원 보호구역 지정, 1982년 사격장 등 군사시설 들어서면서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 1983년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자연보전권역으로 지정, 1990년 환경정책기본법상 특별대책 지역 지정, 1999년 한강수계법 도입으로 수변구역 지정, 2013년 수질오염 총량제 의무 도입까지 총 7가지에 달하고 있습니다. 농림지역으로 지정된 면적과 규제구역을 전부 합치면 양평군의 전체면적의 두 배가 넘는 234%입니다.

이런 규제가 환경적 측면이 아닌 행정구역상 경기도에 속해서 생긴 것이라는 것이니 웃기는 일입니다. 양평은 전국적으로 유래가 없는 규제 통합지역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니다.

그렇다고 죽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양평 인구는 11만 1841명으로 계속 인구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서쪽의 발전은 크게 좋아지고 있지만 동부와 북부의 발전이 더딘 것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천혜의 자연조건을 우리의 무기로 이용해서 개발하고 상부조직과의 협조, 싸움을 통한 도전이 성공된다면 우리의 미래도 좋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경기도와 정부 당국은 우리의 규제 철폐를 하루빨리 시행해서 군민의 삶의 질이 넓게 퍼지기를 현직 의원으로서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Q 양평에 필요한 현안사업은 무엇인가?

A 양평은 과거부터 제가 주장해온 5벨트(문화, 예술, 스포츠, 레저, 관광) 사업이 주가 되는 도시가 돼야 합니다. 이 다섯 가지를 하나씩 풀어보면 결국에 관광입니다. 관광인프라는 지역경제 부흥에 가장 큰 역할이 되는 지역발전 마케팅이 되는 것입니다. 경제발전은 모든 이에게 일자리가 제공되며 거기에 도시경관의 개혁과 변화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시각적 공해를 유발하는 간판 정비 사업을 통한 예쁜 도시기반 조성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의 포토존 메카, 아시아의 스위스가 되는 숲과 강의 아름다운 조화 도시 육성, 놀이문화가 될 수 있는 레저타운 건설, 스포츠와 자연환경이 함께하는 스포츠 레저타운 형성과 문화 콘텐츠의 새로운 개발 힙합 문화 창조 등 우리 양평 미래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의정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A 의원이 되기 전 매번 낙선으로 사실 사람들 만나는 것을 꺼렸고 제가 어디를 가도 대중 군민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의원이 되고 보니 의원의 역할이 아주 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공부할 것도 너무도 많다는 현실에 봉착하게 됩니다. 결국 공무원들의 여러 가지에 대한 평가라든지 공무수행에 대한 소소한 것부터 행정사무감사에 대한 평가와 지적 등 따져야 하는 위치가 됐습니다.

그런 중 우리 많은 주민들의 민원이 해결을 비롯해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을 우리 동료의원들과 함께 이뤄 냈습니다.

다만 아쉽게 기억에 남는 것은 두물머리 세계강변가요제 공중파 방송 유치를 못한 것입니다. 이것을 유치했을 경우 우리 양평의 발전은 세계적으로 방송이 되면서 유명세를 탓을 것이고 양수리와 세미원 등이 최고의 관광 타운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주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부족한 사람이 의원이 돼 3여 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세월은 화살 같이 빠르지만 우리 양평의 변화 발전은 아주 느리게 가고 있습니다. 저는 누구나 보고, 누구나 듣고, 누구나 감동하고, 누구나 놀라고, 누구나 함께하는 그런 멋진 양평을 만들고 싶습니다.

양평을 세계 최고의 마을로 만드는데 견인차가 되도록 12만 군민 여러분들이 도와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주민에게 귀를 기울이는 민초 의원으로서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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