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조명 받지 못했던 ‘고려판 이순신’ 양규 장군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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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조명 받지 못했던 ‘고려판 이순신’ 양규 장군의 부활
  • 김상현 기자  sanghyeon6124@naver.com
  • 승인 2024.01.1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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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 기자
김상현 기자

| 중앙신문=김상현 기자 | 고려사의 명장이 드라마를 통해 부활했다. 현재 방영 중인 KBS의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배우 지승현씨가 열연한 양규장군이다. 그 동안의 한국사에서 숨겨져 왔다시피 한 명장이다. 그는 고려의 이순신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이른 바 신드롬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규 장군은 거란의 성종 야율융서가 1010년 겨울 4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남하했을 때 최전방인 오늘날의 의주에 해당하는 흥화진이라는 작은 성을 불과 3000여명의 군사로 지켜냈다. 장장 일주일간 40만 대군을 상대로 성을 철통 같이 방어해냈다.

개전 직후부터 발이 묶인 거란은 특단의 대책을 취한다. 무너지지 않는 흥화진을 두고서 남진한 것이다. 고려의 실세인 강조는 거란군을 상대로 첫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이윽고 방심해 진지에서 한가하게 장기를 두다가 급습한 적의 별동대에 사로잡히고 만다. 강조가 죽고 고려의 본군은 무너졌다. 거란은 서경(평양)을 공격하다가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수도인 개경으로 쳐들어간다.

그러나 거란은 그들이 확보한 병참기지 곽주성이 양규에 의해 다시 고려군의 손아귀에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후방의 보급로가 차단된 것이다. 양규는 오늘날의 특수전 사령관이라할 만한 기동력과 신출귀몰함으로 700여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적이 점령해 수천여명의 거란군이 주둔한 곽주성을 야습, 탈환한 것이다.

퇴로를 차단당한 거란 성종은 자칫하면 개경에 묶여 오도 가도 못할 처지가 되자, 남쪽으로 몽진한 고려의 왕 현종을 추격하기를 중단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양규는 김숙흥 장군 등과 합류해 원군도 없이 소수 병력으로 수만, 수십만의 거란군을 상대로 끊임없는 게릴라 전술을 펼친다. 이러한 특수전으로 양규는 거란군에게 잡혀 끌려가던 3만여명의 백성들을 구해냈다고 한다. 당시는 사람이 지금보다 더 귀할 때라, 거란으로 끌려가면 각종 노역과 노예 생활 등으로 시달려야 했다.

하루에도 세 번이나 싸워 모두 이겼다고도 고려사 양규 열전은 기록하고 있다이렇게 끈질기게 거란군을 공격하고 베던 양규와 김숙흥은 1011128애전(艾田)’에서 최후의 전투를 벌였다. 애전은 쑥밭이라는 뜻으로, 이날 애전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양규 등은 애전에 거란군이 접근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출격해 수천의 거란군을 베었다. 그때 거란 성종이 이끄는 수십만 본대가 나타났다. 뒤로는 구출해낸 백성들이 있었다. 백성들을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과 성종을 직접 처단하겠다는 각오로 양규와 김숙흥, 그리고 이름 없는 고려의 군사들은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결국 양규와 고려의 영웅들은 모두 전사하고 만다.

고려사에서는 양규와 김숙흥이 온몸에 화살을 고슴도치처럼 맞고 전사했다고 기록했다고 한다. 사로잡거나 칼로 베지 못하고 화살을 무수히 쏴서 죽였다는 것은, 그 만큼 육박전에서 용맹했기에, 압도적 군사력을 갖춘 거란군으로서도 다른 방법이 없이 화살을 동원해 제거했다는 뜻이겠다. 드라마는 이 모습을 충실히 재현하고 연출해냈다. 지난 7일 양규의 마지막 사투가 방영된 후 TV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시청자들이 속출했다. 양규는 드라마 속 정변을 일으킨 강조와 대화를 나누면서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일에 목숨을 걸면 된다는 취지로 말한다. 자신의 직분에 충실함을 강조한 것이다.

오늘날 무수한 시청자들이 양규를 보면서 진한 감동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우직함, 충직함, 책임감을 갖춘 리더에 대한 그리움과 열망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잘 몰랐던 양규 장군이라는 구국의 영웅을 새롭게 알게 된 감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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