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 '알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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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알밤'
  • 김광섭 기자  kks@joongang.tv
  • 승인 2023.10.01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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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 기자
김광섭 부장

| 중앙신문=김광섭 기자 | 가끔 찾아뵙는 곳이지만 이번 추석에도 조상님이 모셔진 산소에 다녀왔다. 아주 엄격하셨고 한치의 잘못도 용서하지 않으셨던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7년 하고 4개월 5일이 지났다. 시간은 참 빠른 것 같다.

시골집과 멀지 않은 조상님들이 모셔진 산소에 가면 어린 시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주셨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비롯해 증조부, 증조모, 17, 25대 조상님들이 모셔져 있다. 아버지는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산소를 각각의 합장묘로 단장하셨고, 그 바로 밑에 본인이 묻히셨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셨던 분들을 추모하기 위해 비석과 둘레석, 상석도 설치하셨다.

예전 이곳에 와 벌초를 하시면서 아버지는 힘들어 쉬곤 하실 때 항상 말씀하셨다. "내가 죽으면 내 자리를 여기다" "너는 나중에 여기에" 이렇게 묻히게 될 거라고, 매년 벌초 때 잊히지 않을 만큼 내 자리까지 일러두곤 하셨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는 그렇게 아버지 말씀대로 거기 모셔지셨다.

나중에 산소에 가 알밤이 떨어질 때 안 사실이지만, 돌아가시기 전 몇 해 전엔 밤나무도 두 그루 산소 위쪽에 심으셨다. "가을에 나를 보러 오면 이 밤을 주워 제사상에 올리고, 밤 주으러 오는 재미로 산소에 오라"고 심으신 듯하다. 밤나무 심으신 이유에 대해 말씀이 없으셨으니 누구보다 아버지를 잘 아는 자식인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난 추석 때 보는 밤나무에서 나 혼자만 겪는 마음속 아리디 아린마음이 솟아 생겨 한참을 머물다 간다. 추석 전에 벌초를 위해 미리 찾는 산소에 떨어진 알밤을 보며 생긴 일종의 증후군인 게다. 알밤을 보면 주무시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꾸 생각나 죄스럽고 뵙고 싶다.

당시, 주무시다가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날 수 도 있다는 것에 나는 참 힘들어했다. 더 힘들어하시는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고 슬플 겨를이 생기지 않도록 이리저리 일부러 모시고 다니곤 했었다. 지금 와 생각하면 평생의 반려자인 남편을 갑자기 잃은 슬픔을 더 생각지 못한 것 또한 어머니께 죄스럽기만 하다.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아들인 나에 대해 항상 잘되길 소원하셨다. 항상 앞서 나가길 원하셨고, 항상 모든 걸 잘하는 아들이길 원하셨다. 그래서 아버지를 볼 수 없는 지금도 너무 죄송스럽다. 인생은 지나고 나면 항상 흑백사진 한 장처럼 후회투성이다. 엄격하셨던 아버지가 몹시도 더 뵙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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