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겁과 찰나

2018-06-10     중앙신문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긴 시간이 ‘억겁’이다. 반대 개념으로 찰나가 있고 억겁에 비슷한 말로 ‘영원’이 있지만 영원이라는 시간에는 끝이 없으니 가장 긴 시간단위는 억겁이 맞다. 겁(劫)은 인도 말 칼파(kalpa)를 한자화하여 겁파(劫波또는 劫?)라고 옮긴 것이라 한다. 한 세계가 만들어 져서 존속하다가 파괴되어 무로 돌아가는 한 주기가 겁이라는데, 다른 말로는 선녀가 사방 십리에 쌓은 돌산을 하늘에서 백년에 한 번씩 내려와 비단 치마를 스쳐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1겁이라고 한다.

또 이런 말도 있다. 사방 40 리의 성에 겨자를 가득 채워 놓은 뒤, 백년마다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씨가 다 없어져도 끝나지 않는 시간이라고도 한다. 억겁은 그 겁이 억 번이나 쌓인 시간이니 상상도 하지 말자.

아승지겁 (阿僧祗劫)이라는 말은 숫자로 나타내자면 10의 64승이고, 겐지스강의 모래알 수를 의미하는 항하사 (恒河沙)의 만 배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불교에서 하는 이야기이고 인도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이니 한 뼘 남짓한 머리카락을 백발삼천척이라는 중국인보다 인도사람들의 과장법이 대단하다고 할만하다.

사람들은 시간을 쪼개고 금을 그어 해(年)달(月)날(日)을 만들고 달력을 찍어낸다. 24절기를 정해 이름을 붙이고, 해와 달의 뜨고 지는 것으로 낮밤을 정한 게 벌써 수 천 년 전 일이니 우리의 선각자 덕분에 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천체 속에 한조각 지구는 공전과 자전을 하며 시공을 만든다. 억겁이 무언지도 모르며... 새해가 되니 여기저기 이곳저곳에서 신년 인사가 왔다. 그 중 난생처음 받아보는 잊지 못할 한편을 소개한다.

生得同期億劫中 생득동기억겁중

萬留世索遇而公 만류세색우이공

隨時無數恩情受 수시무수은정수

每樣多方啓導蒙 매양다방계도몽

特有昨今垂德澤 특유작금수덕택

別施大小發仁風 별시대소발인풍

前功感謝仍心祝 전공감사잉심축

甲午新年福不窮 갑오신년복불궁

억겁의 세월 속에 같은 시기 삶을 얻어

만상 섞인 세상에서 그대를 만났기에

수시로 수도 없이 은혜 정을 받았었고

언제나 다방면에 이끌어 열어줬소.

어제오늘 특별하게 덕택을 베풀었고

대소사 유별나게 어진 기풍 발휘함에

앞선 은공 감사하여 마음속에 비나이다.

갑오년 새해에도 행복 무궁하시기를!

경북 포항의 수필가 김은애 선생이 보내주신 멋진 한시는 두고두고 남을 것 같다.

첫 구절 억겁이라는 문구가 뇌리에 박히니 아등바등하며 지나온 세월이 안쓰럽고,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내 죄를 숨기고 잘 난체 했던 뒷모습이 부끄럽다. 산과 들과 물, 사람들은 시간에 길 들여 지며 억겁의 한 귀퉁이를 비집고 발버둥치고 있다. 벌거벗은 자신을 내 보이지 못하고 갑옷위에 갑옷을 덧입혀 속살을 감추려했던 어리석음, 한 발짝 다가서면, 한 발짝 물러서면 미움이 사라지고 욕심이 덜어질 텐데 윗분에게 아첨하고 아랫사람에게 모질게 굴지나 않았는지.

북의 침략질. 노와 사. 여와 야. 부와 빈. 갈등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세상사. 진심으로 믿는 관계를 구축하면 해결된다는데 오늘도 내일도 흙탕 싸움만 되풀이되는 시대상은 그 방법을 몰라서일까.

남에게 상처주기위해 눈을 뜨고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을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찰나라는 시간은 현대 시간의 개념으로 75분의1초라고 한다. 얼마나 짧은가. 사람은 억겁에 비하면 찰나의 만분지일도 안 되는 시공을 살며 옳은 일 한번 못하고 제 욕심만 채우려 갈팡질팡한다. 덧없는 내 생애를 나답게 살기위해 정신 차리자.

남을 배려하고 조금씩 양보하자.

내일도 모레도 웃을 일만 찾아 많이 웃자.

새로운 365일이 행복해지도록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