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박사의 ‘생활속 지혜’] 스승과 제자

2023-12-22     ​​​​​문학박사 문재익(전, 강남대 교수)
문재익

<이 글은 40여 년간 사교육과 공교육에서 수십만 명의 학생들을 가르쳐왔던 경험자의 견지(見地)에서 조명(照明) 한 것이다. 현재 가르치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고, 배웠던 사람으로서는 지난날의 참 스승, 선생님()을 돌이켜 회상(回想) 해 볼 수 있는 계기(契機)가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은 쓴다.>

스승이란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이며, 유의어는 랍비(Rabbi:유대교의 율법학자, ‘나의 스승’, ‘나의 주인이라는 의미), 사범(師範: 운동이나 바둑 등 주로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 사부(師父:스승의 높임말이나 스승과 아버지)이다. 스승의 높임말인 스승님의 유의어에는 부자(夫子:모든 사람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에 대한 경칭), 은사(恩師)이다. 불가(佛家)에서 경문(經文:불경에 있는 글)의 뜻을 풀어 가르치는 법사(法師:설법하는 승려)를 경() 스승이라고 일컫는다. 동사(動詞)사사(師事)하다의미는 스승을 섬기다,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다라는 의미로 유의어에는 배우다’, ‘사수(師授)하다’, ‘사승(師承:스승에게 학문이나 기술 등을 배워 이어받음)하다가 있다.

제자란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거나 받은 사람이며, 유의어는 도제(徒弟), 문도(門徒:제자), 문인(門人:문하생)이다. 누군가가 교육을 받았다면 누군가의 제자이며, 그 제자가 나이 들어 누군가를 가르치는 스승이 될 수도 있다. 스승과 제자사이를 사제(師弟) 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세계 최고의 전설적 사제관계는 예수-12 사도(使徒:제자), 석가모니-십 대 제자, 공자-공문십철(孔門十哲공자님의 제자 중 뛰어난 열 명)을 일컫는데, 제자의 대표적 사례 둘을 들자면, 하나는 공자님이 만년(晩年:노년)에 교육에 전념하여 3,000여 명의 제자를 길러내고 시경서경등의 중국 고전(古典)을 정리하였으며, 제자들이 엮은 논어에 그의 언행(言行)과 사상(思想)이 잘 나타나 있고, 다른 하나는 성경의 용례(用例)에 의하면 좁은 의미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12제자(마태복음), 넓은 의미에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분을 좇는 모든 성도(聖徒:신자)(사도행전), 이 외에도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자(사무엘상), 신약성경에서는 세례요한의 제자(마태, 마가복음)나 모세의 제자로서의 바리새인(마태, 요한복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만한 사제(師弟) 계보(系譜) 도의 대표적 예()는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알렉산더 대왕인데 제자의 제자는 손() 제자라 하고 스승의 스승은 사조(師祖)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여러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제자를 수() 제자라 칭()한다. 그런데 제자라 해서 항상 제자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사자상승(師資相承:스승이 제자에게 학예를 이어 전함)하게 되면 사제동행(師弟同行:스승과 제자가 한 마음으로 연구하여 나아감)도 해야 하며, 신진화전(薪盡火傳: 스승의 학예를 제자에게 대대로 전수함) 하기도 해야 한다. 때론 청출어람(靑出於藍: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이 되는 경우 스승의 큰 보람과 기쁨이기도 하다. ‘제자가 계속 제자로만 남는 다면 스승에 대한 고약한 보답이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다.

우리는 보통 일상생활에서 가르치는 사람강사, 교사, 교수, 선생, 스승등으로 칭()한다. ‘강사학교나 학원 등에서 위촉을 받아 강의를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고, ‘선생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스승자기를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본래 교사(敎師:··고나 특수학교 기술 등)나 교수(敎授:대학교나 전문 학술, 기예 등)는 직업적 분류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선생()은 보통 일반적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경칭(敬稱:존대의 일컬음)인 존칭으로도 쓰인다. 요 샛날 우스갯소리로 강사는 강의실에서만 책임지면 되고’, 교사나 교수는 교실에서만 책임지면 되고’, 선생은 학교에서만 책임지면 되지만’, 스승은 학교 밖에 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회자(膾炙)되어지고 있는데, 그 나름대로 일리(一理)가 있는 말인 것도 같다. 그러므로 어디에서 무엇을 가르치든지 간에 가르치는 사람인 교육자는 배우는 사람들인 교육생들에게 진정한 스승이 되겠다는 마음가짐, 각오(覺悟)’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은 통()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스승에 대한 우리 속담과 명사들의 명언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속담들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그림자도 밟지 않을 만큼 존경한다.’는 말이고, ‘대중은 말없는 스승이다.’는 말은 평범한 사람으로부터 창조적 지혜와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배우게 된다.’는 말이며, ‘가난도 스승이다.’가난하면 그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생기므로 가난도 가르침을 주는 스승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명사들의 명언들에는, 우리나라 저술가이신 유동범 님의 말씀에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세 가지의 명언들로 훌륭하고 자애[慈愛:아랫사람에게 베푸는 도타운(사랑이나 인정이 많고 깊은) 사랑] 로운 스승은 많은 어려움과 실수를 통해서 라야만 만들어질 수 있다.’ ‘생명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만, 생명을 보람되고 온전(穩全:잘못된 것이 없이 바르거나 옳음)하게 키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다름 아닌 스승의 몫이다.’ ‘훌륭한 스승은 그 자체가 촛불이다. 제자들의 두 눈이 밝음에 트일 때까지, 어둠이 다 할 때까지 스스로를 다하여 타오르는 하나의 촛불이다.’가 있다. ‘어릴 적 스승이 그 아이의 운명을 좌우한다.’ 페르시아에서 전해지는 천일동안의 이야기(천일야화:千一夜話)를 아랍어로 기술(記述)한 설화(說話) 아라비안나이트에 있는 말이고, ‘가장 좋은 교사란 아이들과 함께 웃는 교사다. 가장 좋지 않은 교사란 아이들을 우습게 보는 교사다.’ 영국의 교육자 알렉산더 닐의 말이며, ‘난초 향은 하룻밤 잠을 깨우고, 좋은 스승은 평생의 잠을 깨운다.

나의 뜻을 얻은 자, 세상의 무정함을 탓하지 않으리라.’ 공자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말하는 스승이기 이전에 선생()이란 첫째가 인성이요, 둘째는 실력을 갖춘 강의력이요, 마지막으로 학력이나 학벌, 전문성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학력, 학벌이 좋고 실력과 강의력이 좋아도 인성이 되지 않았다면 가르치는 선생으로의 자격은 미달이고, 그런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서도 안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성, 인격 형성은 첫째가 부모, 그리고 집안 대대로 내려온 분위기 둘째가 스승인 선생님 마지막으로 친구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아 형성되는 것이다. 더불어 출신학교도 중요한데, 누구한테 배웠느냐? 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유교의 5경 중 하나인 서경(書經)에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내가 배우는 것이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라는 말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반절은 자신이 배우는 것으로, 가르치는 선생은 가르침으로 몰랐던 것을 알게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철저한 사전준비인, 수업준비, 교재연구가 필수(必須:꼭 필요함)이다. 선생은 학생들 교육받는 시간에 비례 내지는 그 이상 교재연구에 시간 투자를 해야 한다. 인터넷이 발달되기 이전에는 일일이 국문 동아대백과사전이나 영문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을 뒤져서 알아냈지만 오늘날은 조금만 수고해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다 찾아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수업시간 혹여 잘못 가르친 것이 있어 나중에 발견되더라도 반드시 수정해 주어야 한다. 자존심 때문에 얼버무리고 지나가거나 틀린 것을 알고도 그냥 지나쳐 버린다면 그거야말로 양심의 문제이고, 학생들에게는 큰 죄악을 저지르는 행위이다. 또한 가르치는 선생은 매너리즘(mannerism:타성:惰性)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한 교재만으로 매 학기, 매 학년 사용하기도 하는데, 가능한 같은 과목이라도 가끔씩 , 더 좋은 것은 매년마다 바꾸어 주어야 가르치는 선생 자신도 신선함도 있고 수업의 질()도 개선(改善)되어진다. 수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첫째는 눈높이에 맞는 교재, 두 번째는 강의력과 이해도 마지막으로 피드백(feedback)이다. 또한 가르치는 선생님은 수업시간을 철저하게 지키고, 용모나 옷차림도 단정하고 깔끔해야 하며, 수업 시 학생들이 지루해할 때를 대비해 3~5분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재미나거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얘깃거리를 항상 머릿속에 준비해 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러려면 평소에 여러 종류의 독서나 신문·잡지, ·내외 유머집 등을 읽는 습관이 필요하며,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을 강조할 것인지, 과제는 무엇을 부여할 것인지, 예상되는 질문은 무엇이고, 대답은 어떻게 할 것인지 연극대본을 쓰듯 미리 머릿속에 짜임새 있게 설정(設定)해두는 것이 생활화되어야 한다. 또한 매 학기마다 수업반응 설문조사(앙케트)를 실시하여 수업에 좋은 점과 개선해야 할 점 등을 조사해 다음 수업부터 반영하는 적극성도 필요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선생은 시대에 뒤떨어져는 안 된다. 요새 젊은 학생들의 관심거리가 무엇이고, 사용하는 어휘들이 무엇인가 까지도 알고 있어야 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교사만큼 딱한 것도 없다.’ 미국의 역사가 헨리 애덤스의 말이다. 무엇보다도 공부보다도 사람을 인도(引導)하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달초(撻楚:매질)라는 말은 어버이나 스승이 자식이나 제자의 잘못을 징계하기 위해서 회초리로 볼기나 종아리를 때리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기성세대들은 학창 시절 그것이 당연하고 사랑의 매인 줄 알고 성장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은 내 자식이라 해서, 또는 선생이라 해서 함부로 체벌을 해서도 안 되고, 못하는 시대가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그 폐해(弊害)가 심각하다. 학생이 선생님을 고발하고, 신체적 위해(危害)를 가하고, 오죽했으면 선생님이 극단적 선택을 했겠느냐?를 생각하면 그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되었다. 학생인권보다 선생님들의 교권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만 교육이 제대로, 바로 설 수 있다. 조속한 시일 내에 정부차원의 대책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못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날에야 과거처럼 체벌(體罰)이 금지되어 있고 학생 인권을 중시(重視)한 나머지 오히려 교권이 침해받고, 심하게 말해 땅에 떨어져 있다 해도 과언(過言)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학교별 교육현장이나 교사들 자체만이라도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제재(制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이다. 한 마디로 말해 자식을 훈육할 때 잘 못된 자식, 그리고 교육현장에서 잘 못된 학생은 말로는 안 되는 법이다. 적절한 제재나 일상의 통제, 더 좋은 것은 신체적 고통이 따라야 개선되는 법이다. ‘교사가 지닌 능력의 비밀은 인간을 변모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다.’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의 말이고, ‘교육은 인간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묘약이다.’ 독일 시인 W. 부슈의 말이다. 그리고 사자성어에는 사엄도존[師嚴道尊:스승이 엄해야 가르치는 도()도 존엄해짐]과 엄사출고도(嚴師出高徒:엄한 스승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나옴), 그리고 선생낙천(善生落川:좋은 스승 밑에서 좋은 제자가 생겨남)이 있다.

끝으로 스위스의 정신과의사,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프 정의 명언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의 대미(大尾)를 장식하고자 한다. ‘사람은 과거를 회상하며 훌륭한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데, 그러한 마음은 인간적인 감정을 우리에게 가르쳐준 선생님들에게 향하는 것이다. 교과과정은 정말로 필요한 교구이지만, 인간적인 따뜻함은 학생, 제자들의 영혼과 성장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다.’ 교육현장에 있는 스승, 선생님들이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명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