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응급의료 시스템 대수술 시급하다

2023-06-01     중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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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치료거부로 응급환자가 사망하는 일이 다반사인 나라가 됐다니 부끄럽다. 의료 선진국이라 자처하기조차 민망하다. 충분히 살릴 수도 있는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못 받아 사망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119 및 응급환자와 의료 인력·인프라를 실시간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확 뜯어 고쳐야 한다. 아울러 재발 하지 않도록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해야 한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엊그제 용인에서 발생한 70대 교통사고 환자의 사망사고를 보면 더 절실하다. 지난달 30일 후진하는 차량에 치인 환자는 10분 만에 도착한 119 구급대에 의해 이송이 시작됐다. 인근 수원의 대학병원을 비롯해 도내 12곳의 병원에 응급상황을 알리고 수술병원을 찾았다. 그 가운데는 중증 응급환자를 수용해야 할 권역외상센터나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설치된 대형 병원도 7곳 있었다. 하지만 절박한 상황을 수용하는 곳은 한곳도 없었다. 병실과 전문의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구조대가 백방의 수소문 끝에 어렵게 찾은 의정부 소재 종합병원으로 가던 중 환자는 사망했다. 수술가능 통보를 받은 병원은 사고 현장에서 100km 떨어져 있었고 도착했을 때는 사고 발생 138분이 지난 뒤였다. 결국 병원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길거리에서 애꿎게 생명을 잃은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사건발생이 처음이 아니다. 걸핏하면 이슈화될 정도로 잦다.

그런데도 개선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응급환자 거부 병원에 대해 과징금 등 행정처분이 고작이다. 이러한 솜방망이 처벌은 자칫 의료 현장에서 법에 명시된 규정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또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의 양심까지 팔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치료거부 병원의 처벌을 강화 하면서 의료계의 자성도 이끌어 내야 한다.

하지만 몇몇 병원과 의료진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동안 발생한 응급실 뺑뺑이 사망사고 대부분이 응급의료체계의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제에 경증 환자의 대형병원 응급실 이용을 제한해 응급의료시스템을 중증 환자 중심으로 확 바꿔야 한다. 병원의 거부 사유가 전문의와 병상 부족이 가장 많았다는 사실도 간과 하면 안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대와 의료 인력·인프라를 실시간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 하는 일이다. 각 병원의 여유병상과 수술 의사를 확인 할 수 있도록 하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