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호의 시선(視線)] 명절의 사회학

2023-01-28     김연호 수원시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
김연호

명절에 더는 전 부칠 필요 없다지난 추석과 이번 설에 주요 언론사에서 뽑은 기사 제목이다. 우리나라의 명절 문화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다소 자극적인 신문기사 제목은 성균관에서 차례상 간소화 방안을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발표한 것이 그 발단이 되었다. 2022년 유교 전통문화의 계승을 주도해온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에서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하면서 전을 부치느라 더는 고생하지 말라는 점과 음식 가짓수는 최대 9개면 족하다는 점을 제안하였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어머님이 명절 음식을 준비하시느라 고생하셨던 것을 기억하는 필자로서는 어머님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과 죄송스러운 생각이 먼저 들었고, 전통적인 문화와 예식을 고집스럽게 강조해온 성균관에서 차례상 간소화를 제안하는 것을 보고는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에게 명절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차례 지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우리 할머니 어머님들이 명절 후 며칠 몸져누울 정도로 집중적인 가사 노동을 하게 만들었고, 허례허식이라는 비난을 들어가면서도 전 국민이 경제적 비용을 기꺼이 부담하는 건지? 예전에 비해 명절 문화가 많이 변했다고는 하는데, 앞으로 우리네 명절 문화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설 다음날 몇몇 지인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C선배가 자리에 앉자마자 고향인 고흥을 갔다 오느라 이틀 동안 무려 20시간을 운전하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하소연했다. 다소 푸념 섞긴 어투와는 달리 그 선배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고 뭔가 뿌듯해하는 거 같았다. 그 선배가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대학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에밀 뒤르케임의 의례(儀禮, Ritual)라는 단어와 민중의례가 떠올랐다. 80년대 후반 대학가에는 가두시위나 교문 싸움을 앞두고는 민주인사에 대해 묵념을 하고 출정가를 부르는 등의 민중의례라는 것이 있었다. 그 분위기는 숙연했고, 비장스러웠고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신성스러운 의례였는데, 그런 고귀한(?) 의례를 너무 분석적으로 가볍게 보는 것 같아 반발심이 생겨났던 기억이 있다.

칼 마르크스, 막스 베버와 더불어 사회학의 3대 거두인 에밀 뒤르케임은 종교사회학에서 의례의 사회통합 기능을 강조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공식적인 국가 행사에서 국민의례가 국가 정체성을 확보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정치적인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 세시풍속같이 과거의 문화적 계승에 의해 이루어지는 명절 의례도 있고,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제대회를 통해 조성되는 일종의 국뽕 같은 세속적 의례도 있다.

뒤르케임의 의례라는 개념에서 강조하고 있는 의례의 사회적 통합적 기능을 우리 명절문화에 적용하면 명절이라는 의례가 갖고 있는 순기능이 있을 것이다. 바로 내적 결속력 강화소속감 부여이다. 조상을 모신다는 것은 그저 명분이고, 가문 전체가 한 장소에 모여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를 지내고 음식과 술을 먹으면서 가족 내의 위계서열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실제로는 우리는 한 가족이다라는 숭고한 의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명절 문화의 순기능이 유지되는 한 우리의 명절 풍속은 상당 부분 지속될 것이다.

다만 그 형식과 규모는 급격하게 변할 것이다. 전통적인 성균관에서 제안했던 간소화 방안, 즉 경제적 부담과 가사 노동 강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전통적인 차례 문화를 다른 방안으로 대체하거나 아예 없애는 가구도 생겨날 것이다. 이제 시대 흐름에 걸맞은 새로운 명절 문화 조성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과연 20년 후 우리 명절 문화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어린 시절 친구 사이인 70대 남자 넷이 한적한 콘도에 모여 인터넷에서 주문한 음식 9가지를 식탁 위에 놓고 합동차례상을 올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