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산서당 야몽야몽] 가을 생각!

2022-11-04     강태립 웅산서당 훈장
강태립

가을~~~. 풍요롭고 낭만이 가득한 계절,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온 들판을 노랗게 물들이는 벼 이삭을 보며 혹자는 풍요로움을 느낀다고 하고, 은행잎과 단풍들이 노랗고 울긋불긋 변하는 가을만 되면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여가를 즐긴다.

나무는 가을이면 자신 본연의 고운 색을 보이다 왜 잎을 버릴까?

나무가 잎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 나무는 겨울에 동사(凍死)할 것이다. 살기 위해 한 해 동안 자신을 키워준 가장 중요한 일을 했던 한 부위를 버린다.

사람에게도 가을과 같은 시기가 있지 않을까?

강을 건너면 배를 버려야 하듯,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버려야 할 때가 있고, 버리지 않으면 오히려 짐이 되어 모두를 힘들게 하는 것들도 있다. 나이 들어 나의 소중한 것들이 많아져 가고, 하고 싶은 일보다 추억이 많아지면서 삶의 주변에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물건이 쌓여간다.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입지도 않을 옷들이 장롱 속에 가득 쌓이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귀한 책이지만 다시는 보지 않을 책들이 사방 서가를 가득 채우며, 기타 생활 도구나 취미활동 도구들이 쌓여 자신의 생활공간을 옥죄어 온다.

나는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할까? 생각해 본다.

내 머리에도 어느덧 서리가 내려 허옇게 변해 가면서 인생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가슴 한쪽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책들을 정리해 본다. 벽에 가득한 책들~~~, 젊은 날 지식의 갈증을 풀기 위해 보았던 책들을 먼저 정리해 본다. 중국 각처를 돌아다니며 구한 귀한 책들도 한자로 기록된 책들이라 더 이상 볼 사람도 없고, 찾는 이들도 없는 책부터 정리하고, 각처 퇴임 교수님들로부터 물려받은 책과 전공서적 교양서적 등 다시는 보지 않을 책들을 정리하고 나니 아쉽지만, 마음 가운데 한 짐을 내려놓은 듯하다.

다음은 40여 년 기록한 작업한 PC의 자료를 정리하는데, 너무나 많은 양의 자료라서 일단 모두 이동저장 장치에 두고 필요에 따라 생각나는 자료만 다시 찾아오기로 하는 정리 방법을 정했다.

자료 하나씩 살피며 정리하기에는 시간과 마음이 너무 쓰이기 때문이다. PC 속 자료들은 남들과 무관하고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지만, 내 마음과 삶을 정리하는 데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은, 물욕 중에 제일인 금전 욕심 정리는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서당은 본래 돈이 되는 직업이 아니었고 코로나로 직격을 받으며 대출을 받아 빚이 많아져 정리할 수고를 덜었다.

이렇듯 차례대로 보이는 물건과 자료 등, 서랍 속 물건과 사용하지 않는 취미생활 용품까지 정리해도 여전히 한 가지 정리하기 쉽지 않은 남은 것이 하나 있다.

사람의 나이 60이면 공자께서 말씀하신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의 나이인데, 귀가 순해지려면 먼저 내가 지금껏 배우고 경험한 모든 것을 버리지는 못해도, 최소한 남의 의견에 앞서 내 생각을 앞세워 상대의 생각을 막지 말아야 하는데, 가장 어려운 일이 마음 비우고 생각 비우는 일인 것 같다.

옛 시골 마을에, 마을 사람 모두가 선()하다고 하는 사람도 어려움에 처하면 찾아가고, 모두가 악()한 사람이라고 지탄(指彈)받는 사람도 찾아가 위안을 받던, 모두에게 삶의 위안이 되고 삶의 지혜를 주던 어른이 있었는데, 이런 분이야 말로 이순(耳順)의 경지에 이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존중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잘못이 있어도 위로 받기를 원하고, 잘못을 지적당하면 기분 나쁘게 생각하여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에 곧바로 사납게 반응하거나 공격하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가까운 사이일수록 옳은 말을 쉽게 하여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변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으로 되어간다.

이순(耳順)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내 생각이 남의 생각을 앞서 내 기준대로 재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함은 잘 알지만, 지금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참고는 있지만 속으로 화가 나는 것을 느낀다. 명심보감에 이르길 가득하면 덞을 부르고, 겸손하면 더함을 받는다(滿招損 謙受益)”라고 말하는데, 먼저 자신의 생각을 비우고 그 자리에 남을 받아들일 자리를 만들어도 부족한데, 어떻게 남을 판단할 생각을 할까?

어느 날 문득 내 인생을 돌이켜 생각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나 앎은 대부분 세뇌된 지식이었구나 하며 반성하기도 한다. 아무리 나이가 있고 경험이 많다 해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일까? 의문인데 왜 남의 말에 화가 날까?

한 잎이라도 나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계절에는 계속 새로운 잎들을 피우다가 결실을 맺고 날씨가 차가워 시련의 계절이 시작되면,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며 시련의 시기를 준비하지만,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욕심으로 가득 채우려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짧은 가을날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을 보며, 내 인생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