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촌의 세상 돋보기]오욕의 찌꺼기들 털어내어

2018-02-21     중앙신문

어둠이 걷히고 있는 새벽, 모닥불을 피우면서 산골의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지금 마을에서 바라볼 때 마을과 조금 떨어져 언덕 위에 앉아 있는 우리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신호를 마을로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옛날 옛적, 통신 전달이 어렵던 시절에 불꽃으로 혹은 연기로 나라의 평화와 난리를 알리는 봉화가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불꽃을 올림으로써 평화를 전달하기도 하고 나라에 변이 생겼을 때 급한 사정을 알리기도 했던 봉화, 나는 지금 모닥불을 피워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면서 그 시절의 봉화를 떠올렸다.

깊숙한 화덕에 갈비를 깔고 나뭇가지들을 얼기설기 얹는다. 잔가지부터 얹기 시작하여 굵은 가지를 얹어놓고 성냥을 그어 갈비에 불을 지른다. 마른 갈비에는 금방 불이 붙으면서 빨간 불꽃이 피어오르고 그 불꽃은 이내 마른 나뭇가지에 옮겨 붙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면서 타기 시작한다. 불꽃이 부풀어 오르면 오래 묵은 나무토막들도 얹어 놓는다. 묵은 나무토막들은 그들만으로는 불붙이기가 쉽지 않다. 가볍고 잘 마른 나뭇가지들과 어우러지고 밑불이 어느 정도 달아올라야 불이 붙어 은근하게 불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타고 남은 숯불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기 때문에 군밤을 굽거나 고기를 구워 먹거나 또는 열손가락을 쫙 펴서 쪼일 수 있는 은근한 열기는 잔가지가 만들어 낸 숯불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어쩌면 화덕안의 모습은 설 명절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모습과 닮았다.

휴일이면 모여드는 가족들이나 우리 집을 방문하는 지인들과도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뒤뜰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다. 거기에는 무엇보다 온기를 주는 모닥불이 있기 때문이다. 모닥불을 피워놓으면 아랫목 윗목 없이 모닥불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둘러앉게 되고 둘러 않으면 저절로 살아가는 얘기들이 흘러나온다. 어릴 적에 화롯불을 가운데 놓고 빙 둘러 앉았던 온돌방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이나 따뜻한 정들을 모닥불 앞에서 털어 놓는다. 어쩌면 살아오면서 붙어 다니던 오욕의 찌꺼기들을 털어내어 모닥불에 태워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드러내고 또 털어낸다. 오욕(五欲)의 찌꺼기들은 마른 나뭇가지 위에 올려놓아 태워버리고 담아두고 싶은 사연들은 불꽃으로 승화시켜 간직하려는 듯 모닥불 앞에 둘러앉은 모습들은 평화로워 보인다. 모닥불 앞에서는 차 한 잔이 없고 술 한 잔 없이 빈손이어도 허전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숯불로 시선이 모아지고 빈손을 쫙 벌려 불을 쪼이노라면 그 따뜻한 불땀이 손바닥을 통하여 가슴으로 전달된다.

무엇이든 불에 태우면 그것은 재가 된다. 그것이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 해도 ‘불’에 타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것은 하나가 된다. 독특한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도 하지 않고 고유한 자기 모습을 간직하려고도 애쓰지 않는다. 민출한 자작나무도 우람한 소나무 가지도 봄날에 향기를 날리던 매화꽃나무나 향나무 가지도 화덕에 넣고 태우면 모두 재가 된다. 어디 그뿐이던가, 사랑으로 똘똘 뭉쳐졌던 생명체들도 불에 타버리면 한 줌 재가 되는 것을… 다만 불꽃을 만들어 낼 때의 향기와 불꽃모양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들깨 대나 참깨 대를 태우면 타닥타닥 소리와 불 방울이 튀며 고소한 향기가 진동을 하고 솔가지나 솔방울을 태우면 비록 청향(淸香)은 아닐지라도 깊고 그윽한 솔향기가 남아 오래오래 주변을 맴돈다.

오늘 새벽에도 나는 먼저 모닥불을 피우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천지가 눈으로 덥힌 하얀 뒤뜰에서 나뭇가지를 꺾어 타오르는 불꽃 위에 올려놓고 또 올려놓곤 한다. 그들은 가끔 탁탁 소리를 지르긴 하지만 자기들의 최후를 알리면서 사그라지는 모습이 순하고 편안하다. 사람도 결국은 오욕의 짐 덩어리들 내려놓고 한 줌 재와 흙으로 돌아갈 때는 모두 같은 모습이 아니겠는가.

자기 몸을 태워 따뜻한 기운을 전하면서 피어오르는 모닥불, 또 한해를 시작하는 전환점에서 내 몸에 달라붙어 있는 오욕의 찌꺼기들을 털어내고 또 털어내어 모닥불 위에 올려놓고 있노라면 몸도 마음도 한결 홀가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