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사면론’ 역풍 간과해선 안 돼

2021-01-03     박남주 기자
박남주

집권여당 대표가 정초에 구속 수감 중에 있는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사면론’을 들고 나와 정가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새해 첫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는 문재인 대통령이 일할 수 사실상 마지막 해“라며 구속 중인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청와대에 건의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 대표가 통합을 전면에 내세워 개혁 동력을 확보하고, 정국 주도권을 확실하게 쥐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당내 공식 논의를 거치지 않고 나온 것으로 알려졌을 만큼 개인의 결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 내부에선 냉랭한 분위기 속에 ‘국민적 합의가 없다’는 ‘불가론’과 ‘국민통합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불가피론이’ 맞서 이 대표가 직접 나서 공감대 형성에 주력하고 있으나, 돌파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가 또 하나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1년 3개월 앞으로 다고온 차기 대선 측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는데, 유력주자인 이 대표가 중도층을 겨냥한 대권행보를 본격화한 것 아니냐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 동안 보수 진영에서 사면을 강하게 요구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사면 카드는 중도층에도 소구력(訴求力)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같은 ‘사면론’은 사안이 갖는 무게 만큼이나 관련 논란이 증폭되면서 벌써부터 여론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이 대표는 자신의 판단이라고 했으나, 여권의 논의 구조로 볼 때 청와대와 어느 정도의 사전 교감은 있었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 대표는 사면의 명분으로 '국민통합'을 예로 들었다. 하지만 새해 벽두 집권여당이 첫 메시지로 전직 대통령들의 사면문제를 꺼낸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문재인 정부가 어차피 풀어야 할 매듭이라 생각한다면 집권 5년차로 사실상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가 적기이고, 야당보다 먼저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집권 마지막 해인 만큼 새로운 개혁과제를 내놓기보단 벌여놓은 일들을 마무리하면서 국민통합을 이끌며 국정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의도로도 풀이해 볼 수 있다.

또 여당의 유력대선 후보인 이 대표 입장에선 새해 벽두부터 정치 이슈를 선점해가며 국민통합을 이끄는 대권주자 이미지를 구축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 사태에 대해 대국민 공식사과를 하면서도 언급을 자제해오던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는 적잖은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두 대통령의 석방이 가시화될 경우 여전히 구(舊) 여권의 상당한 조직력과 기반을 갖고 있는 친이, 친박 지지층이 결집하며 당내 목소리를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며 두 전직 대통령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온 김 위원장 체재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왜냐면 가뜩이나 취약한 야권이 더욱 분열될 수 있고, 지난해 ‘4.15 총선’ 참패 이후 중도지지층 흡수를 위해 국민의힘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이미지 변신 노력도 퇴색할 수 밖에 없어 더욱 그렇다.

사면 건의의 구체적인 시점은 밝히지 않았지만 이 대표가 차기 대선에 출마하려면 오는 3월 초 대표직을 그만둬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그 이전이 될 공산이 크다. 공교롭게도 ‘4월 7일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시기적으로 맞물리게 된다.

이런 점에서 사면 문제는 여당이 의도했건, 아니건 다가올 서울, 부산시장의 보궐선거에 상당한 영향이 미치지 않을 수 없다.

‘4.7 지방보궐선거’ 결과는 여야를 막론하고, 향후 정치구도와 지형에 막대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여권으로선 문재인 정부의 국정장악력, 곧 레임덕의 문제가 걸려있고, 이 대표로선 대권가도의 성패를 가름할 수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김 위원장 체제가 대선까지 이어지느냐, 아니면 지도부 교체와 함께 당의 노선과 정치지향이 전면 수정되느냐가 결정된다.

그야말로 여야 모두 한판 사활(死活)을 건 싸움이기 때문이다.

정치와 선거엔 언제나 공학적 요소들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고, 판단은 유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사면권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하더라도 이를 행사할 땐 합당한 명분과 여론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여권은 혹시라도 사면이 정치적 이해를 위해 오용되는 것으로 비쳐진다면 여론의 역풍(逆風)을 맞을 수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