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당헌’…‘선거법 규정’ 숙고해야

2020-11-08     박남주 기자
박남주

요즘 정치권에선 내년 47일 실시될 서울특별시장과 부산광역시장 등의 재보궐선거 후보자 공천 문제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전 당원에게 물어 86%란 압도적인 찬성으로 후보공천을 결정한 데 이어 관련 당헌까지 개정하고 나서 명분(名分)보단 실리(實利)를 택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민주당의 전 당원 투표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실시하면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을 바꿔야 후보자를 공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전 당헌대로라면 내년 ‘4.7 보궐선거에 후보자를 낼 수 없다. 상황이 이러자 당 지도부는 당헌 개정여부를 투표에 부치는 방식으로 찬성을 얻어내 마침내 후보를 내기로 결정했다.

상황이 변경됐다고 해서 당원투표를 통해 당헌을 개정, 공천자를 내겠다는 비겁한 결정을 사실상 당원들에게 떠넘겨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당원 뜻에 따라 당헌은 개정할 수 있는 것이란 민주당의 이같은 자가당착(自家撞着)식 변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5년 전 당시 문재인 대표가 책임있는 공당의 도리를 다하겠다며 흠결이 있을 땐 무공천을 대국민 약속으로 주장했던 당헌을 뒤집는 것이어서 비난이 더욱 거세다.

서울과 부산이란 정치적 상징성, 그 이듬해 치러질 대선과 연계돼 있다는 점에서 후보를 낼 수밖에 없는 민주당의 절박한 처지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민주당이 정치변화와 개혁을 선도한다는 대의적 차원에서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정치는 생물과 같아 현실적으로 이를 수용키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변명을 내세워 대원칙마저 뒤집는 것은 공당의 도리가 아니다.

공당의 도리는 공천할 권리 행사가 아니라, 공천하지 않을 의무 이행이란 야당의 조소(嘲笑)를 감내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당헌이란 당의 역사에 기반해 정체성과 정치철학 등 포괄적 개념이 담긴, 정당의 헌법이다.

유권자들은 이같은 당의 역사와 정치철학에 기반해 후보를 선택하기도, 지지를 철회하기도 한다.

당헌을 상황에 따라 여반장(如反掌)으로 뒤집는다면, 유권자들은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지 이낙연 대표는 철저한 검증과 공정한 경쟁으로 가장 도덕적이고, 유능한 후보를 찾아 유권자 앞에 세우겠다고 호언장담(豪言壯談) 했다.

그러면서 당내에 윤리감찰단을 새로 가동하고,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성비위와 부정부패 등에 대한 조사에 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고 고개를 숙이며, 어물쩍 넘어갈 문제가 아니란 지적이다.

공정과 원칙을 중시하는 민주당이 불공정과 반칙을 일삼으면 당초 명분으로 내세웠던 변화와 혁신은 커녕, 되레 정치냉소와 불신의 악순환만 반복될 뿐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은 자기합리화나 변명을 버리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을 상기하고, 보다 낮은 자세로 국민적 비판과 질책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당은 책임정치 차원에서 공천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야당은 약속 위반과 말 바꾸기를 문제 삼아 집중 공격을 일삼고 있다.

선거가 다섯 달이나 남았으나, 벌써부터 여야 간 공방이 후끈 달아오르면 재보선 정국이 조기에 점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개혁이란 명분보다 후보공천이란 실리를 택한 민주당의 결정이 선거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결국 유권자의 선택에 따라 공천 결정의 정당성 여부가 가려지게 되겠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여야 모두 또 다른 후폭풍이 예상된다.

그래서 장기간 행정 공백과 막대한 국민 혈세인 선거비용을 초래하는 재보궐 선거의 원인 제공 책임을 당 내부 규정이 아닌, 선거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지적을 숙고(熟考)해볼 필요가 있다.

여야 모두 국정을 책임지고, 정치개혁을 이끌어가야 할 대한민국의 정당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