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는 왜 단명할까?

2020-04-01     원종태
원종태

봄은 벚나무의 숨 쉬는 소리와 함께 찾아온다. 죽은 듯 마른 듯 숨죽이던 나무가 차츰 그 빛이 변한다, 검은듯한 기운이 이내 엷어질 때 꽃 몽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 오른다. 어쩌란 말이냐? 마구 부풀어오는 가슴을, 밀어내듯 밀려나듯 부플 때로 부푼 몽우리는 주체할 수 없이 폭발한다. 이곳에서 저곳에서 일제히 탄성이 인다. 꽃피는 소리가 축포처럼 들린다.

고속철보다 빠른 속도로 개화 소식은 삼천리를 오간다. 어서 나와 나를 반기라고 벚꽃은 함성을 지른다. 봄을 그리워한 인파는 명소를 찾아 나서고 상춘객의 얼굴은 벚꽃처럼 물든다. 꽃길을 걷고 싶은 그대에게 꽃잎은 주저 없이 내려앉는다. 나를 밟고 걸으소서! 벚꽃은 충성된 시종처럼 자신의 꽃잎을 떨구어 꽃길을 만든다. 벚꽃의 유혹에 넋이 나간 인파는 벚나무 아래로 몰려든다.

벚꽃이 화려함을 자랑하는 데에는 일주일이면 충분하다. 개화 기간이 짧아 꽃이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일제히 피어나 함박눈처럼 떨어지는 벚꽃을 마주하며 새해의 새봄을 맛본다.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벚꽃축제가 사라졌다. 기쁜 소식보다는 우울한 소식이 뉴스면 을 장식한다. 그러나 꽃이 피고 지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따뜻한 날씨 덕분에 개화기가 빨라졌다. 누군가가 보든 안 보든 일제히 피어나고 굳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함께 떨어진다.

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벚나무에 薄命佳人(박명가인)이 어울릴까? 미인은 수명이 짧다는 그 말 말이다. 벚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하면 일찍 노쇠하여 생을 마감한다. 대부분의 벚나무가 백 년을 넘기기 어렵다. 한국에 최고 장수한 벚나무 나이가 300살로 추정된다. 지리산 화엄사에 있는 천연기념물 38호다. 제주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도 300살을 넘지 못한다. 다른 장수목과는 비교가 안 되는 나이다.

벚나무의 이런 생태가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토론 주제가 된 적이 있었다. 벚나무는 왜 단명할까? 여러 방면에서 의견이 제시됐다. 그중 가장 유력한 주장으로 채택된 것이 화려한 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나무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다량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벚나무는 나무의 모든 역량을 발휘하여 꽃을 피워 낸다. 생식을 위한 최고위 투쟁이다. 한 해 두 해 고갈되는 에너지는 나무의 수명으로 연결된다. 다른 수종에 비하면 일찍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식물이나 인간이나 에너지를 과하게 소비하면 수명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부인하기가 어렵다.

장수목 몇몇 나무를 보자 크고 오래 살고 꽃이 화려하지 않은 나무는 노거수 목록에 올라 있다. 은행나무가 그 대표 격이다. 느티나무도 빼어놓을 수 없다. 소나무 역시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는다. 살아서 천년 죽어도 천년이라는 주목도 열광적으로 꽃을 피우지는 않는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일까? 물론 식물은 저마다 진화해온 방향과 살아가는 전략이 다르다. 그러나 식물이나 사람이나 에너지를 어디에 많이 사용하느냐에 따라 누리는 수명은 다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