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나에게 절망이란 벽은 없다 ‘담쟁이’

2017-09-13     중앙신문

막다른 골목 항우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렸다. ‘하늘이 나를 버렸다!’ ‘강을 건너 살아 돌아가야 재기 할 수 있다’는 정장의 권유를 물리쳤다. 살아 돌아간들 자신을 따라온 강동 자제들을 다 죽여 놓고서 무슨 면목으로 백성들을 보겠느냐며 마지막 명분을 내세웠다. 약간 뻥을 곁 드린다면 항우는 백 번을 싸워 아흔아홉 번 이기고 한 번 패했다. 그런데 그 한 번의 패배를 견디지 못했다. 항우에게는 실패란 없었다. 항우가 절망을 딛고 일어나 재기했다면 지금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영원한 패장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 항우도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를 자랑했지만 스스로 자결하고 말았다. 절망 앞에 모든 것을 던져버린 것이다. 아니 절망이 그를 삼켜버린 것이다.

그러나 힘들고 지쳐 절망에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담쟁이가 한줄기 희망을 준다. 우리는 그것은 상징이라고도 하고 믿음이라고도 부른다.

충성이 최고의 덕목이던 시절 늘 푸른 소나무의 모습이 선비들이 닮고자했던 상징의 우두머리였다. 사시사철 변함없는 모습에서 충직한 모습으로 자리매김했다. 혹독한 풍파와 눈보라 속에서도 그 품위를 잃지 않는 모습이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성격을 대쪽에 비유하기도 한다. 하늘을 향하여 거침없이 뻗어 나가는 대나무에서 불굴의 기개 (氣槪)를 본다.

엄동설한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눈 속에서 피어나는 설중매를 보고 그윽한 향기를 사모한 인걸이 한 둘이 아니다. 가혹한 환경을 이겨냄이 얼마나 향기로운가를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고매한 모습을 닮기를 갈망했던 우리나라 선비들의 역사가 면면히 전해온다.

나무라고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담쟁이의 모습에서 절망의 벽을 성취의 사다리로 바꿔버린 혜안이 있다. 나의 앞길을 막는 벽이라고 좌절하지마시라! 이젠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마시라! 작은 도전이 모여 성공을 만드나니 벽은 시도하는 자에게는 길이 되고 기회의 문이 된다. 나에게로 오는 것은 그 무엇이든 다 가치가 있다.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절망을 잡고 일어서는 담쟁이 정신이 필요한 요즘이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를 음미해보자.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