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원과 이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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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원과 이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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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1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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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수필가,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누구나 지니고 있을 어린 시절의 추억 한 토막, 이발에 얽힌 이야기를 나도 갖고 있다.

아버지와 동갑인 동네 이발사였던 그 어른은 해소기침으로 콜록 거리며, 우리 동네 남자들의 머리를 독점하여 깎았다. 아침, 학교에 가기 전 머리를 맡기면 녹이 쓴 이발기로 머리를 미는데, 머리를 깎는 게 아니라 머리를 뽑는 것 같아, 잔뜩 겁을 먹어야 했고, 집에 돌아오면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선명하였다.

이 고통은 중학을 마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어른, 아이 머리를 감기고 면도를 해 주는 것도 아니고, 이발료도 가을철에 쌀로 한 몫에 받는, 요즘에는 찾아보기 힘든 이발 풍속도이다.

그 때부터 빡빡 깎았던 머리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벗어났는데 4. 19 학생운동 덕분이었다. 자유화 욕구가 사회를 뒤 덮었는데 고등학생들의 희망사항은 단연 머리를 기르도록 허용하라는 것이었다.

옆 동네에 B고등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 학생들은 예전부터 어른 머리를 하도록 허용하여 우리들의 부러움을 샀었다. 드디어, 선생님들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공부를 열심히 해도 모자랄 판에 머리타령이 웬 말이냐고 호통을 치셨지만 3cm 이하로 기르도록 허용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철부지 짓이었음을 대다수 동창들이 이야기 한다. 이발이 나를 위해 돈을 쓰는 것도 아니요, 멋을 내는 것도 아니고 다만 남들에게 추레하게 보이지 않으려는 기초적인 예절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발관은 나름대로 학교도 되고, 도서관이 되기도, 사랑방구실을 하기도 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무의식 속에서 자신과 대화를 할 때 불현듯 영감이 떠오를 때가 있으니 좋고, 옆 사람 이야기를 귓등으로 듣는 재미도 있다. 머리 모양을 바꿀 때 거울에 비친 낯 선 내 모습이 자꾸 쳐다보이기도 한다. 이발의 묘미이겠다.

이발관은 계절도 없고 시간도 없이 아무나 드나들 수 있고, 연령에 상 하 없이 대화를 나누는 동네 사랑방 구실을 하였다. 먹고 살기 위해 무작정 상경하여 기반을 잡은 이들의 자랑, 6. 25 전쟁 때 참전하여 공을 세웠노라고 허풍을 섞는 중늙은이들의 무용담, 이발사들은 이들의 열변에 장단을 맞추고 추임새를 넣어야 한다.

선거철이 되면 후보자들은 복덕방이나 이발관에서 1차적으로 궐석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데, 근거가 있든 없든 여론이 만들어 지고 퍼뜨려 지는 동네 방송국이요 신문사가 복덕방과 이발관이다.

이때, 특히 이발사는 처신을 조심해야 한다. 영, 호남을 가려 말대답을 해야 하고 슬쩍, 누구는 누구 편이고, 누구는 누구 편이라는 고자질도 하면서 교묘히 끼어들어 손님의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 세상사는 이치는 여기도 똑같이 통한다.

아주 까다로운 사람을 제외하면 이발사의 기능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깎아 드릴까요’ 물을 때 흔히 알아서 깎아달라고 말하고, 끝났을 때 마음에 들면 그 이발관에서 이 사람의 헤어스타일은 그대로 굳어지니까 서로가 좋은 것이다. 나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여러 군데에 단골집이 있었다.

연탄불에 집게를 달구어 머리를 태우며 길을 들이고 포마드기름으로 범벅을 하던 시절에는 손님은 이것저것 잔소리를 할 처지가 못 되었다. 뜨거운 쇠꼬챙이로 머리통을 데일까봐 목을 움츠려야 하였으니... 그래서 머리통이 온전하고자 이발소 팁이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팔 다리를 주물러 주고 손톱도 깎아주고 안마를 곁들여 퇴폐행위를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호시절도 옛날이야기가 되어 아쉽다.

사회가 바뀌고 문화가 변하면서 이발소 풍속도 많이 달라졌다. 한 달에 한 번 이발을 한다면 중간에 두 번쯤 면도를 한다. 면도를 하면 머리도 약간 손질을 해주기 때문에 항상 깔끔하였다. 언제부터인지 젊은 남자들이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더니 이발관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이발사도 젊은이는 없어지고 있다.

집에서 멀지않은 어느 대학 앞에 미장원이 경쟁을 하는데 열 번을 다녀가면 한 번은 공짜로 머리를 해주었다. 아내의 꾐에 빠져 몇 번 갔는데 젊은 아가씨가 머리를 자르고 머리를 감을 때는 이발관과 반대로 머리를 뒤로 젖히고 감겨주니 나중에는 오히려 편안해졌었다. 옷, 신발, 장신구 등이 남녀 혼용이 되더니 미장원과 이발관도 남녀구분이 없어졌다.

여주시 복지관에서는 봉사차원으로 이발료를 저렴하게 받고 일주일에 하루 노인들 이발을 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제도가 없어져 서운하다.

서울 파고다공원 근처에는 이발료가 3500원이다. 머리를 감으면 500원을 더 받는다. 이발사가 5~6명되는데 항상 바쁘다. 이발료가 싸도 성업 중인 걸 보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발료가 비싸고 가기도 귀찮아 아내에게 귀밑 거친 머리카락을 정리하도록 부탁하였더니 그럴싸하게 다듬었다. 한 달 치 이발료를 벌었으니 꽤 좋다.

이발관과 미장원은 이름도 바뀌고 시설도 바뀌고 이용객도 바뀌고 요금도 비싸지고 사랑방구실은 사라져 옛날 같지 않다.

사회에 봉사한 것도 없고 혜택만 받아 왔으니 이참에 이발 기술을 배워 무료이발봉사를 해볼까. 점점이 추억어린 이발관이 사라지는 게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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