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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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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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0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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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수필가,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여주에서 안동까지는 4백리 길. 중앙고속도로로 안동 가는 길은 편안하다. 몇 년을 별러 안동독립기념관을 찾아 가는 길이다. 추운 겨울 날, 우리 내외는 방학을 맞아 잠시 다니러 온 대학생 외손자와 초등학교 1 학년 손자를 데리고 역사공부와 더불어 독립운동을 되새기고자 가벼운 걸음으로 나섰다.

우리나라가 왜적에게 주권을 빼앗기고 갖은 고생을 할 때 안동에 유명한 파락호가 있었다. 파락호(破落戶)라는 게 무엇인가. 양반집 자제로 집안의 재산을 몽땅 날려버린 난봉꾼을 일컫는다.

퇴계의 제자이자 영남학파의 거두인 학봉 김성일의 13세 종손인 김용환(1887-1946. 4. 26)의 이야기다. 그는 노름을 즐겼다. 당시 안동 일대의 노름판에는 그가 꼭 끼어 있었다고 한다. 초저녁부터 노름을 하다가 새벽녘이 되면 판돈을 모두 걸고 마지막 베팅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단판 승부에서 돈을 따면 좋게 일어서지만 지는 날에는 “새벽 몽둥이야” 하고 큰 소리로 외친다.

이 소리가 들리면 도박장 주변에 잠복하던 패거리들이 몽둥이를 들고 노름판을 덮쳐 판돈을 강탈해 갔다. 종손 김용환의 이러한 노름행각으로 종갓집도 남의 손에 넘어가고 수 백 년 동안 내려오던 전답 18만 평(현시가 200억 원이 넘는다)도 팔아서 노름으로 탕진하였다. 그렇게 팔아 없앤 전답들을 지손(支孫)들이 돈을 걷어 다시 종가에 되사주곤 하였다.

종가는 문중의 정신적 지주였으므로 ‘집안 망칠 종손이 나왔다’고 푸념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외동딸 김후웅 여사가 신행 때 장롱 사오라고 시집에서 준 돈도 노름으로 날렸다. 아버지가 농 사올 때를 기다리다가 큰 어머니가 쓰던 헌 농을 신행길에 가져가는 딸의 심정은 어땠을까.

희대의 난봉꾼 김용환은 환갑도 못 살고 임종을 맞게 되었다.

“이제는 만주에 독립운동 자금으로 돈 보낸 사실을 이야기해도 되지 않겠나?”고 독립운동 동지가 머리맡에서 이야기하자 “선비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세상에 알릴 필요 없다”고 하면서 운명하였다.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해 철저하게 노름꾼으로 위장한 삶을 살았던 김용환 선생. 어느 날 할아버지인 김홍락이 종가집 마당에 꿇어 앉아 왜경에게 치욕을 겪는 광경을 목격한다. 할아버지의 사촌인 의병대장 김희락을 숨겨 주었다가 발각된 것.

국가와 민족을 왜적에게 빼앗기고 숨도 제대로 못 쉬던 연약한 백성들, 그러나 우리의 곁에는 나라와 민족의 얼을 되찾고자 목숨을 걸고 대적하던 지도자들이 있었기에 그들이 구심점이 되어 독립운동이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펼쳐진다.

무력으로 탄압하는 왜적에게 대항하기 위해 우리도 무기가 필요한데 돈이 없었다. 김용환은 독립운동 자금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노름꾼으로 위장하고 그 귀한 재산을 나라를 위해 몽땅 바친 것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장거이며 노블리즈 오블리주를 실천한 지도자인가. 유교문화의 정수를 이으면서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통해 어려운 시대 상황을 되돌리려는 자기희생이었다.

50년이 지난 1995년, 나라에서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평생을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던 외동딸 김후웅 여사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훈장을 받고, <우리 아배 참봉나리>라는 글에서 존경과 회한을 담았다. 이러한 기사를 오래전 신문에서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 분의 자취라도 꼭 뵙고 싶어 찾은 것이다.

아픈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에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영웅이 얼마나 많은가.

안동독립기념관은 시내에서 약 50 리쯤 떨어진 임하면 천전리에 2007. 8 설립되었다. 이곳은 독립군 양성소 구실을 하던 협동(協東)학교 자리인데 아담한 규모에 경북지역의 독립운동, 만주, 상해, 몽고, 소련지역의 항일운동에 관련한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내던져 불꽃처럼 투쟁한 안동사람들, ‘나’를 희생한 모든 그분들의 인고(忍苦)의 세월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 그 세월을 딛고 살아가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공적이 밝혀진 독립운동가의 숫자는 1만 717명, 그 중 경북지역에 1923명이 있는데 안동 분들이 336명이라 한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아직 찾지 못한 유공자들을 찾아내어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려야 할 것이다

모든 자식들이 부모의 정성과 희생으로 커 가듯이 나라도 이러한 국민들의 몸과 마음을 바친 열정이 있기에 존재한다.

손자들에게 나라사랑, 겨레사랑이 어떤 것인지 가르친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한국을 빼앗겨 배 아파하는 왜적들, 오늘도 독도는 자기네 땅이요, 1급 전범들을 영웅이라고 여겨 국제적 반대에도 신사를 참배하며 국제신의를 배반하는 아베 무리, 이제는 우리가 그들 응징해야 되지 않겠는가.

선열들이 펼쳤던 의병활동, 계몽운동, 의열투쟁, 2. 8 일본 독립선언, 3. 1운동, 농민, 사회, 학생, 대중투쟁을 되새겨 정신무장을 바르게 하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적들의 준동에 철퇴를 내리도록 준비해야 하겠다.

굳건한 대한민국을 지키자. 대한민국!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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