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기획][DMZ 65년] 시간이 멈춘 땅…분단의 상처 속 새살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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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기획][DMZ 65년] 시간이 멈춘 땅…분단의 상처 속 새살을 보다
  • 박도금 기자  pdk@joongang.tv
  • 승인 2018.07.2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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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신문=박도금 기자 | 오는 27일은 남과 북 사이에 비무장지대(DMZ)를 설정하고 한국전쟁을 멈추기로 한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5주년이 되는 날이다. 더욱이 올해는 11년 만의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 잇따라 개최되면서 전쟁을 끝내자는 ‘종전선언’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판문점과 통일전망대 등이 한국관광 필수코스가 되는 등 DMZ라는 공간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도 여느 때보다 커졌다.

지난 12일부터 20일까지 1주일여 간 파주시와 연천군, 강원도 철원에 걸쳐진 DMZ 일원을 직접 돌아봤다. DMZ의 다양한 모습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최대한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65년간 시간이 멈춘 그곳의 풍경을 담았다. [편집자주]

비무장지대(DMZ)의 짙은 녹색 숲 사이로 남방한계선 철책이 보인다.

경의선·경원선·금강산선 철길 따라 마주한 전쟁의 흔적

1953년 7월 27일 이후 사람의 발길이 끊긴 땅. 한반도의 허리를 가른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이 2㎞씩 물러나 만들어진 ‘비무장지대(DMZ)’가 바로 그곳이다. 모든 길은 거기에서 막혔고, 남한이 섬처럼 지내온 지 어느덧 65년이다.

최근 남북교류 재개 움직임에 따라 경의선과 동해선 등의 연결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어쩌면 마지막 모습이 될지 모를 철길들 위를 직접 걸어보며 분단의 현실을 마주했다. DMZ를 가로 지르는 강과 하천의 무구한 흐름은 ‘길은 이어져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게 했다.

‘DMZ 65년’취재의 출발점은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철로인 경의선이었다. 지난 12일 오후 찾은 파주 경의선 철길은 남방한계선에 가로막혀 지난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모든 DMZ 일원이 그렇듯이 이곳도 일반인의 접근이 제한돼 지역 관할 군부대인 육군 1사단의 출입허가를 받아야만 들어올 수 있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탓에 철길 위는 토끼풀로 가득 뒤덮였고 시설물도 녹이 잔뜩 슬어 있었다. 철길 건널목에 ‘멈춤’이라고 적힌 팻말은 지극히 평범한 안내문이었지만, 이곳에서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여기서는 정말 모두가 멈춰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이 철길을 다시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생각에 설레는 마음도 든다. 많은 사람이 염원하는 북한 여행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 철길 옆 경의선 육로의 한가운데에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해 세운 일명 ‘노무현 비석’이 서 있었다.

남한 파주와 북한 개성을 잇는 경의선 철로가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 철책에 가로막혀 있다.

‘평화를 다지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이라고 적힌 비석을 등지고 서면 경의선의 최북단 역인 도라산역이 멀리 보였다.

지난 18일에는 경원선(서울∼원산)의 최북단 구간인 월정리역과 철원역을 찾았다.

철원 월정리역은 DMZ 남방한계선에 가장 가까이 있는 마지막 기차역으로 1950년 6월 25일 폐쇄됐다. 선로 위로는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부서진 인민군 화물열차의 객차 뒷부분과 잔뜩 내려앉은 거미줄이 있어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객차의 앞부분은 북한에서 가져가 현재 상태를 알기 어려웠다. 그 앞에는 예의 그 유명한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철원역은 역사도 남아 있지 않고 사실상 현재는 방치된 듯 한 인상을 줬다. 다 자란 수풀 더미에 가려진 철길의 흔적만이 이곳이 과거 기차역사 였다는 사실을 겨우 알게 했다.

강원도 철원에 금강산으로 곧장 향하는 전기철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철원군 갈말읍 정연리 민통선 안에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이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 지하자원 수탈과 금강산 관광 목적으로 1931년 개통해 철원역∼내금강산역 117㎞를 잇는 구간을 달렸다. 군사분계선 설정 이후 폐선됐다.

지난 16일 찾은 금강산 철교에는 ‘끊어진 철길, 금강산까지 90㎞’라고 적혀 있어 남북의 가까운 거리가 새삼 실감이 났다.

한탄강의 수려한 경관을 끼고 금강산으로 달릴 수 있었던 시절이 오직 일제강점기 때였다는 사실은 마음 한편을 서글프게 했다.

현재 월정리역과 금강산 철교 등은 철원지역의 안보 관광지로 지정돼 있어, 사전 신청 절차를 통해 누구나 와볼 수 있다.

군 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파주나 고성뿐만 아니라 철원지역의 안보관광지 방문객도 급격히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어서 지난 19일에 둘러본 철원 역곡천(78.3㎞)은 남북 분단의 상징적인 장소였다.

역곡천은 북한 강원도 평강군에서 시작해 연천과 철원을 지나 임진강과 합류하는 하천이기 때문이다. 작은 물길도 65년간 끊기지 않고 흘러 내려왔는데, 분단으로 인해 남북의 길은 다 끊어져 있었다.

‘쳐부수자 XXX’구호 사라져…최전방도 평화 기류
대북·대남방송 시설 철거 후 ‘고요’…‘평화통일 꿈꿔’

비무장지대(DMZ)에서 바라본 북한 오성산 위로 구름이 지나가고 있다. 오성산은 한국전쟁 당시 ‘철의 삼각지대’로 불리던 격전지 가운데 하나다. 해발 1062m 높이의 요충지로 맑은 날 의정부까지 관측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27 판문점 선언이 체결된 지 약 3달이 지나 비무장지대(DMZ) 일원을 돌아본 첫 느낌은 ‘고요하다’는 것이었다. 경쟁적으로 울려 퍼지던 대북·대남방송이 사라진 자리엔 새들의 지저귐과 작전병들의 낮은 발걸음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남북 정상이 만나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기로 합의하자마자 남북은 신속하게 확성기 시설을 철거했다. 판문점 선언이 이행된 첫 사례로 기록됐다.

남북의 화해 무드에 따라 적대적인 분위기가 지배했던 최전방이 달라지고 있다.

최전방부대의 안내장교들은 하나같이 “현장에서 아직 바뀐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곳곳에서 변화를 포착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철원 3사단(백골부대)의 ‘대적(對敵)관 구호’가 사라진 것을 꼽을 수 있다.

최근에는 가수 권지용(지드래곤)이 입대한 부대로 더 알려졌지만 백골부대는 예전부터 군기가 강한 부대로 명성이 높았다.

한국전쟁 당시 휴전선을 최초로 돌파한 역사를 부대의 자랑으로 내세웠으며, ‘북괴군의 가슴팍에 총칼을 박자’는 등의 살벌한 구호와 백골 부대마크로도 유명했다.

백골부대는 북한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삼부자를 겨냥한 과격한 대적관 구호를 만들어 전 장병들이 제창해왔다.

백골부대의 대적관 구호는 2012년 국회 국방위원회의 육군본부 국정감사에서 ‘구시대적인 구호’라는 지적을 받았으며, 그에 앞서 북한에서 ‘의도적 도발’이라며 군사적 보복 조치 위협을 하기도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때도 꿈쩍 않던 백골부대가 남북 화해 분위기에 따라 하루아침에 대적관 구호를 없앤 것이다.

일부 부대에서는 북한에 대한 적대성을 암시할 수 있는 ‘적’을 언급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해 남북 경색 국면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비무장지대(DMZ)에서 육군 최전방 장병이 DMZ 남방한계선 경계시설물 점검을 위해 실탄을 장전하고 있다. 연천군 중서부전선 육군 5사단.

남북정상회담은 실제 작전에 투입되는 병사들의 태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비쳐졌다. 최전방부대에서 만난 병사들은 판문점 선언 이후 느낀 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나름대로 솔직히 답변을 했다.

3사단 성기현(22) 상병은 “판문점 선언 전까지는 병사들이 통일에 대한 생각보다는 아무래도 작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판문점 선언의 내용을 보면 남북 정상이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있어 병사들도 마음속으로 통일에 대한 꿈을 꾸게 되지 않았나 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 상병은 이어서 “입대 전에는 북한의 도발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상회담을 보면서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파주 1사단 곽현근(20) 병장은 “내 군 생활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체감되는 건 없지만, 남북정상회담이 이 근처에서 열려 주의 깊게 보긴 했다”면서 “맡은 바 임무를 열심히 하면 평화가 오지 않을까, 평화적으로 통일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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