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敬齋 <공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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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敬齋 <공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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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7.1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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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수필가,칼럼위원)

공경재, 우리 집 사랑채 이름이다. 부엌 1칸, 방 2칸, 대문간 1칸 등 4칸 겹집으로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시골집이지만 나에게는 조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어서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보물이다.

조부께서 결혼을 하시게 되어 증조부께서 거처하실 목적으로 새로 지으셨는데 벌써 100년 전 일다. 남향으로 지어 햇볕이 잘 들고마당 보다 조금 높아 전망이 좋다.

대문은 적당히 삐거덕 소리가 들려 안채에서도 대문 여닫는 것을 알 수 있게 만들었는데, 지금껏 손을 본 흔적이 없는걸 보면 당시에 목수가 정성을 들였음을 알 수 있겠다.

지붕은 초가였는데, 새마을 운동시절 붉은 기와로 바꾸었다가 지금은 푸른색 함석지붕이다. 방 밖에 마루를 놓아 어른, 아이들의 쉼터가 되기도 하였고 동네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동네 사랑방역할을 했고 방학이 되어 내려오면 나의 공부방이 되었었다.

한 때 관리를 제대로 못해 서까래가 썩고 지붕이 새고 벽이 헐어 방안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흉물이 되었다. 지붕에서 샌 빗물이 방바닥으로 떨어져 온돌이 주저앉았고 방은 창고용도로 쓰여 자손의 도리가 아니었다.

마루도 썩고 허물어져 증조부, 조부, 선친께서 모두 돌아가시고 내가 이 집의 주인이 되었을 때 대폭적인 수리를 작정하고 10여 년 전 백미 150여 가마 값을 들였다. 조상의 흔적을 살려 체취를 간직하고 자손의 숭조돈종(崇祖敦宗)의 뜻을 이어가고 싶어 원형대로 보존하게끔 목수들에게 단단히 부탁하였다.

미닫이, 여닫이문을 손 보고, 구들을 새로 놓고 그 위에 기름보일러 선을 깔았다. 천정을 새로 갈고 방의 벽은 황토를 바르고 도배를 하지 않아 황토방으로 만들었다. 두꺼운 널빤지로 마루도 새로 놓으니 제법 손색이 없다.

집 칠을 마쳐 수리를 끝내고 증조부의 자 公禹(공우), 조부의 자 敬昌(경창)에서 한 글자씩 따서 ‘공경재’라 이름을 짓고 한문과 한글예서체로, 집 지은 연도, 중수한 연도, 헌액하는 뜻을 느티나무 판에 양각하여 벽에 걸었다.

니스 칠을 하여 반짝 반짝 빛나는 마루는 나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나는 ‘공경재카페’라고 혼자 명명하고 여러 가지를 즐긴다. 앞밭에서 자라는 갖가지 작물을 감상하고, 방학에 내려온 손녀 손자와 함께 우리 내외가 심은 수박, 참외, 토마토, 옥수수를 먹고, 이웃 집 김 형과 소주잔을 기울이고, 이웃으로부터 농사지식을 수강하고, 아내와 머그잔의 커피를 번갈아 마시는 호사도 이 마루에서 누린다. 문학잡지며 간간히 보내오는 책들도 여기에서 읽는다.

느림의 멋, 기다림의 미학 같은 미사여구가 잘 어울려 흐뭇하다. 마음 한 편 조상들께 죄송하기도 하다. 증조부는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 손에서 자라 자수성가하셨고 조부께서는 서른다섯 젊은 나이에 급서하셨다. 증조부의 흔적이라고는 이 집과 놋수저가 있어서 내가 어렸을 적 사용했는데 어느 틈에 없어져 이 집이 증조부, 조부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다. 어머니가 증조부의 외모를 알려주셨다.

키는 너만 하시고(174cm) 모습은 미국에 사는 넷째동생 일연이와 흡사하셨다고. 조부께서는 목소리가 낭랑하여서 책 읽는 소리가 듣기 좋고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휘적휘적 걸으실 때는 늠름하셨다고 종조모께서 알려주신다. 증조부는 문맹이셨고 조부는 마을 서당 선생을 하실 만큼 공부를 하셨다. 이게 내가 들어서 알고 있는 뿌리의 전부다. 문맹일 수밖에 없는 가정형편, 문맹이면 어떠랴. 아들 손자 그 뒤를 이어 할 바를 다 하셨으니 자손만대 빛날 터이다.

농사일을 하시다가 잠시 쉬실 때에는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쉬셨을까. 얼마나 애를 쓰셨으면 맨 주먹으로 당대에 논 밭 몇 십 마지기와 임야 몇 정보를 소유하셨을까.

지금도 농사일이 힘 드는데 그 옛날 그 시절 어떻게 이겨내셨을까. 세상살이에 불평불만을 퍼 부을 여유조차 없는 삶음을 사셨을 선조들이 불쌍하기만 하다. 젊은 날의 황금기를 누려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버리신 할아버지. 질곡의 구한말과 왜정의 압제 속에 이름을 빼앗기고 피땀 흘려 추수한 곡식을 빼앗기고도 한숨을 삼키며 자손들의 안위만을 걱정하셨을 증조부...

마루에 걸터앉아 한가롭게 책을 읽으며 공상에 잠기는 증손자는 조상께 고맙다는 인사를 올릴 염치도 없다. 일밖에는 모르셨을 그 분들 덕분에 편안하게 자라고 공부하고 자식을 거느렸다. 조상을 위해 한 일이 없다.

어찌 다른 분이라고 조상과의 애잔하고 애틋한 사연이 없겠는가. 공연히 나 혼자 효성이 있는 양 나서는 게 아닌지.

내 육신과 조상의 정한(情恨)이 함께하는 사랑채 공경재. 아침햇살을 따스하게 받으며 우뚝 서 있는 공경재가 내 아이들이 대를 이어 조상의 얼을 기억하는 교육장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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