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호야! 일본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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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야! 일본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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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7.1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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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신문=중앙신문 | 송년섭(수필가, 칼럼위원)

“송지호 비행기 구경하며 신 났음. 뭘 사달라고 졸라서 할머니에게 얻어터지기 1초 전.” 며느리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핸드폰 전원을 꺼 버리고 손자 지호와의 일본여행이 시작된다.

며칠 전 지호에게 ‘지호야! 할아버지 할머니 일본 갈 건데 너도 같이 갈래,’ 하니 냉큼 ‘네’하고 대답을 했다.

외손자 재윤이 하고는 몇 번 외국여행을 해서 친손자와 여행을 하고 싶었다.

한 시간 남짓 비행한 일본 큐슈지방 구마모토비행장은 시골 터미널 규모를 겨우 벗어난 한심스런 시설인데다 외국인을 붙잡아 놓고 지문 채취 얼굴사진을 찍는데 몇 백 명을 두 세 명이 처리 하려니 시간이 무한정 흐른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아내가 일본을 빼면 동남아 웬만한 곳은 다녀왔고 왜놈들 하는 짓이 괘씸해서 안 가려다가 일본으로 여행지를 고른 것인데 첫 인상부터 나빠 미안하다.

겨우 입국절차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니 일행 26명에 어린아이가 여러 명 있어 지호는 친구를 사귀고 벌써 신이 났다.

구마모토 시내에 들어와 수전사(水前寺)식당에서 그 지역 특산이라는 ‘당고지루’점심식사를 마치고 ‘시모도오리’상가를 돌아보며 카메라를 혹사 시키고 후쿠오카로 향한다. 후쿠오카 가는 길은 완연한 봄을 지나 신록이 우거졌고, 빽빽하게 들어 찬 침엽수, 대나무 숲이 이국의 정취를 돋우며 다가온다.

후쿠오카항은 바다관리가 엄격하게 실시되어 횟집이 없고 바다 냄새가 없는, 청정지역이다. 정화처리시설이 안되면 식당허가가 안나 식당이 없을 정도다. 일본인들의 환경보호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시내에 있는 면세점은 주로 한국인들이 이용하는지 직원들의 우리말 실력이 대단하다. 떠날 때 아내는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50불짜리 보온병을 한 개 샀다. 오래 전 샀던 걸 작년에 어머니 병실에서 잃어버리고 아쉬워하더니...

벳부(別府)는 예전부터 일왕의 휴양지라고 한다. 예로부터 온천이 훌륭했나보다. 이곳에는 원숭이가 많아 사람 먹을 것을 훔쳐 먹어 사람과 원숭이 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보다 못한 다까사끼산 어느 절의 주지스님이 원숭이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다가, 주민들이 돕다가, 이제는 시장이 맡아 먹여 살린단다.

벳부 온천마을 카메노이호텔에 여장을 풀고 말로만 듣던,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벳부 온천을 즐긴다. 두루마기 모양의 긴 무명 홑옷- ‘유까다’는, 왼쪽 깃을 덮고 허리띠를 매는데 실수로 아랫도리가 보일 수 있으니 팬티정도는 입고 슬리퍼만 신은 채 온천욕탕, 식당이고 호텔 내를 활보 한다. 유까다를 입은 지호 모습이 앙증맞아 카메라에 담는다.

온천욕은 5분-10분-5분을 1회로, 3회 정도가 적당하다고 함께 간 가이드 안수경씨가 안내해 준다. 한 시간을 뜨거운 물속에 있는 것이니 나의 인내심으로 보면 긴 시간이다. 역시나. 지호 녀석은 참지를 못하고 냉탕 온탕에서 혼자 수영을 하며 할아버지 목욕 끝나기를 기다린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도 온천수에 몸을 담그니 평소에 목욕을 즐기는 아내는 소원풀이를 하는 셈이다. 은근한 유황냄새, 적당한 수온이 맘에 드는가 보다.

아침 식사는 뷔페식이다. 식사를 하다 말고 지호가 춥다며 방에 가서 옷을 입고 오겠다고 엘리베이터를 타더니 잠시 후 눈물을 글썽이며 다시 왔다. 12층 방까지는 갔는데 방문을 못 열어 되돌아 온 것. 나중에 며느리에게 국제 미아 만들 뻔 했다고 야단 좀 맞았다.

몇 번 일본을 다녀왔지만 나의 느낌은 일본인들이 무척 신을 모시고 의지한다는 것이다. 가는 곳마다 神社같은 곳이 즐비하고 모든 사람들이 복록과 입신양명을 축원한다. 이번에 들른 태재부천만궁은 학문의 신을 모신 곳인데 수험생 부모와 학생들이 몰려들어 학업성취를 빌고 있었다.

유후인 마을, 킨린(金鱗)호수, 온천수에 삶은 달걀과 라무네사이다를 맛보며 족욕을 하고 백천수원지를 둘러보고 아소산으로 향한다.

아소산은 현재도 살아 있는 활화산, 세계 최대의 칼데라분지로 길이가 백여 km가 넘고 넓이가 여의도의 40여배가 된다고 한다. 아직도 흰색 가스를 분출하고 있는 분화구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접근을 할 수 없어 우리 일행은 케이블카를 타기 직전 퇴짜를 맞고 박물관에서 영상물로 대신 구경을 해야 했다.

내목(內牧) 온천마을, 이곳은 멀리 아소산 전경- 부처님이 누워있는 형상으로- 보이는 국립공원 지역, 일 년에 한 번 음력 2월이 되면 일본 전 지역의 귀신이 여기에 모여 결혼을 하는 곳이란다. 나쁜 짓을 하려면 귀신이 자리를 비운 이 시기에 하라는 우스개도 있다고. 아소카도만 호텔에 내리니 저녁식사로 ‘가이세키’정식이 기다린다. 시장이 반찬인가. 지호도 제 몫을 먹어치운다. 유까다를 입고 온천탕으로 가는걸 보니 모두 일본인 같아 보인다. 지호 녀석은 오늘도 온천장 수영으로 신이 날 것이다.

구마모토성은 침략자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4백 년 전 세운 것인데 나고야성, 오사카성과 함께 3대성이라고 한다. 이 성의 맨 위층인 천수각은 30여 m 높이인데 지호와 할머니는 사진을 찍으며 경내 구경을 하고 나 혼자만 다녀왔다.

바빴던 2박3일의 일정을 끝내고 부슬비 내리는 구마모토 공항을 떠나 인천공항에 나오니 아들내외와 손녀 다연이 몰려와 우리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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