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과 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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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과 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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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7.0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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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고등학생 시절, 우리 학교는 농업학교라 소, 돼지, 닭을 기르고 약초와 작물을 재배했다.

어느 해 우리 반(班)은 호박을 재배했다. 각자 1㎥의 구덩이를 파서, 인분을 가득 퍼다 붓고, 인분이 잦아들면 구덩이를 메우고 호박을 심는다.

떡잎을 틔우고 잎새가 자라니, 너도 나도 새 생명을 탄생시켰다는 자부심과 신기함으로 호박을 찾는다.

그러나 망아지같은 녀석들이 구경만 할 리 없다. 욕심이 도사리고 있어, 자기의 것이 작다 싶으면 튼튼한 남의 것을 뽑아 자기 구덩이에 옮겨 심는다.

이 짓을 누구랄 것도 없이 새벽이나 해질녘, 알게 모르게 자행하고 있었으니, 호박이 자랄 리 없다.

활착(活着)이 될 만하면 이 구덩이에서 저 구덩이로 뽑혀져 심겨지고, 이 친구 저 친구에 손을 거치며 홍역을 치렀으니,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는 틀렸다.

지구상에서 가장 잘 먹는 동물이 인간일 것이다. 구워 먹고 데쳐 먹고 삶아 먹고 그래도 시원찮으면 날로 먹는다. 종류도 다양해 풀뿌리에서 열매까지, 작은 곤충에서 거대한 고래까지.

그러나 퓰리쳐 수상작 사진집을 보면, 뼈만 앙상해 머리통만 큰 아이가 굶어 죽는 어미의 젖무덤을 찾아 울고, 예방 접종을 기다리다 지쳐 탈진한 아이가 탁자에 널브러져 있으며, 수단 소녀는 식량센터로 가는 도중, 진이 다해 땅바닥에 엎드려 있고, 뒤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독수리가 노리고 있다.

외국뿐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결식아동과 지하철과 빈민촌에서 끼니를 굶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하다.

인류는 원시림에 광활한 경작지를 개척했으며, 영농기술의 발달과 종자의 개량으로 농사물의 과잉 생산을 두고 배부른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빈곤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21세기라는 말은 배부른 자들에게는 매력 있을지 몰라도 가난한 자들에게는 역겨운 말이다. 인류가 한 마리의 공룡이라 가정한다면, 머리는 21세기 문턱에 들이 밀고, 몸통은 20세기에, 엉덩이는 19세기, 그리고 꼬리는 18세 기에 머물러 있는 공룡이 아닌지. 최인훈의 소설 ‘화두’에 나오는 말이다.

플로리다 농장에 뚱뚱보 흑인 여인이 앉아 있다. 농사일을 찾아 이동해 가는 계절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렌즈에 담았다. 사회의 쓰레기 취급을 당하며 치욕적인 생활을 한다는 그들은 농장주와 감독의 착취를 당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미국 인구의 제4위인 필라델피아, 길거리에서 살아가는 사람 ‘홈 리스’들이 지하철 통풍구 위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데, 놀라운 일은 홈 리스들이 비싼 음식을 사먹는 사람들과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그것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일상적인 장면이라는 사실이다.

인류의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지구를 개조해 왔으며, 각자의 이익을 위하여 투쟁해 왔다.

국가나 민족이나 이념이나 개인까지도 그것도 만족할 때까지. 그러나 욕망은 그칠 줄 모른다.

욕심껏 개발한 현재는 과거보다 좋은 세상일까. 자가용과 TV, 냉장고, 양변기, 가스레인지…. 어쩌면 가장 좋은 세상일지도 모른다. 잘 먹고 느슨하게 앉아 TV로 온 세상을 마음대로 볼 수 있으니.

그러나 강은 오염되었고, 도시의 하늘은 매연으로 우울하며, 크고 작은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문화유산인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거대함에 비해 인류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는 돌더미에 불과하지만, 여의도 63빌딩이 배출하는 공해는 석양에 비치는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희석시킬 수 없을 것이다.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이유로 간섭하지만 잘못된 간섭이 화를 부른다. 1·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시대, 매카시즘과 인민재판, 모택동의 문화혁명, 많은 사람들이 의견조차 묵살당한 채 사라져 갔으며 여론의 공포 속에 숨조차 쉬지 못했다.

늦가을, 선생님이 각자 호박 2개씩 따 오라는데, 넝쿨만 무성한 호박밭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그러나 뜻밖에 신이 나서 호박을 따는 친구가 있다. 욕심 따위는 물론 호박에 관심이 없어, 심어 놓고 돌본 일이 없는 친구다. 다행히 싹은 약했고, 그 약함으로 인하여 수모를 겪지 않았으니, 활착(活着)이 쉬웠고 간섭이 없었으니 생육하는 데 좋은 조건이었을 것이다. 넝쿨에는 커다란 호박이 10여 개나 뒹굴고 있다.

욕심의 해악과 무관심의 미덕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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