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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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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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2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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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내 아내의 이름은 임규봉(林奎鳳)이다.

평택임씨 돌림이 ‘규’이니 선택의 폭이 크지도 않았으려니와, 고명딸 사주를 보아 잘 짓자고 지으셨다는데, 규-英, 貞, 姸, 媛 정도면 이해가 가지만, 여자 이름치고는 좀 그렇다.

남자이름을 지으신 장인어른은 이 때문에 한번 혼이 나셨다고 한다. 어느 해 임규봉 앞으로 군 입영 신체검사 통지서가 배달된 것이다. 면서기가 임규봉이 남자려니 멋대로 판단하였을 것이다. 오빠, 동생이 징집연령이어서 그들에게 온 것이려니 하다가 제 앞으로 온 걸 알고는 집안이 발칵 뒤집히고, 여주군청 과장으로 재직 중이던 장인어른은 화들짝 놀라 대신면사무소로 쫓아가 잘 무마하여 군대에 갈 뻔한 딸을 구해 내셨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좋아져 여자도 고상하고 예쁜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예전 같으면 정월이, 억척이, 못난이, 간난이, 언년이로 불렸을 것 아니냐고 농을 한 적이 있다. 아내여, 임규봉도 좋은 이름이다. 다행히도 그대 이름은 부르기 쉽고, 외우기 쉽고, 쓰기 쉬우니 남편 이름 송년섭을 보고 자위하시라.

옛날에 귀한 자손은 귀한 이름을 지으면 귀신이 시기하여 일찍 잡아 가기 때문에 무병장수를 염원하여 아명을 천하게 지었다 하지 않는가. 고종황제는 아명이 ‘개똥이’이고 황희정승은 ‘돼지(都耶只)’였다니 임규봉 얼마나 다행인가.

처녀 때 임규봉이었던 아내는 결혼 후 수없이 많은 이름을 달고 산다.

첫 딸을 낳고는 ‘은정엄마’로 불리다가 몇 년 후 아들 쌍둥이를 낳고는 ‘쌍둥이엄마’가 추가되고, 시부모로부터 덧붙여진 이름이 ‘에미’인데, 장모님은 딸 시집 간 마을 이름이 가섭이라고 ‘가섭애’라는 이름을 하나 더 얹으셨다.

아이들의 ‘엄마’ 임 여사는 쌍둥이가 초등학교에 입학 한 후 이름을 한 개 더 얻었다. 손자들이 학교에 입학한 걸 축하할 겸 아버지께서 아이들을 보러오셨는데 아이들이 ‘엄마’라고 부르는걸 보셨다.

절을 마치고 무릎 꿇고 앉은 아이들에게 “너희들 이제 학생이니 좀 어른스러워 져야 한다. ‘엄마’는 애기들이 부르는 거고 너희는 학생이니 이제부터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러라. 알았지.” 그 이후 아들들은 어머니라고 부르게 되어 “어머니”라는 이름 한 가지가 더해졌다.

사람의 이름은 세월 따라 유행을 타서 서로 좋은 이름을 지으려고 작명소를 찾는다. 성명철학원에서는 사람들의 약점을 파고들어 나중에 보면 그저 그런 이름을 지어주고 돈을 벌어들인다.

아내는 오랫동안 유치원을 운영하였다.

어느 때 장인어른이 상경하셨는데, 나는 허풍을 보태어 유치원장 자리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서울대학교에서 초등학교 교장 진급예정자들과 함께 강의를 듣고 문교부에서 시행하는 진급시험에 합격해야 원장이 되는 것이니 따님을 원장님이라고 부르시라고 농을 했다.

장인어른이 원장이라고 부르지는 않으셨지만 만족스런 표정이었던 건 몇 십 년이 지났지만 기억에 새롭다.

아내는 자연스레 ‘원장님’이라는 명찰을 달았고, 이름표대로 원장으로서 교육 일선에서 유아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이것저것 모두 접고 시골로 내려왔을 때 아내는 원장님에서 ‘은지 큰엄마’라는 이름으로 강등 됐다. 내 아이들 이름을 모르는 동네 분들이 조카딸 은지의 이름을 붙여 새 이름을 지은 것이다. 지금도 동네에서는 은지 큰엄마로 지내고 있다.

아내는 성격이 여자답지만 나이가 들면서 사회성도 늘어나 여주노인복지관에를 출입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사회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우리 내외가 어린이집에서 강의를 하는데, ‘할머니 선생님’이라고 부르니 아내의 이름은 여러 가지다.

평소와 다르게 친화력도 생겨 친구도 많이 사귀고 각종 프로그램을 섭렵하면서 여러 가지 공부를 하는데, 노인복지관 라인 댄스 팀은 여주군 대표가 되고, 경기도 대표가 되어 전국 생활체육대회에서 준우승을 해서 이름을 날렸다.

수많은 이름을 달고 다니다가 이제는 ‘할머니’, ‘임규봉’으로 돌아왔다. 간혹 아내에게 오는 전화를 내가 받을 때 임규봉씨라는 이름을 들으면 조금 낯설지만 제 이름을 되찾아 노년을 의미 있게 보내는 아내를 보며 ‘임규봉’이 내 옆에 있음을 감사한다. 내 아내 임규봉은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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