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 함께하는 6.25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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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와 함께하는 6.25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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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2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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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현충일과 연휴를 맞아 아이들이 내려왔다. 게양한 국기를 올려다보며 손자가 6.25전쟁을 안다고 한 마디 한다. 신기하고 기특하여 사랑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여덟 살 때 전쟁이 터졌다. 부선망(父先亡)3대독자인 아버지는 병역은 면제되셨지만 어떤 행패를 당할지 모르니 홀로 피난을 가시고 할머니와 어머니의 지휘로 ‘동네피난’-낮에는 동네 뒤 계곡에 올라가 보내다가 밤이 되면 집으로 내려오기를 반복하였다. 며칠 후 오후에 학교에서 소집을 하고 선생님 한 분이 노래를 가르쳤는데 나중에 보니 북괴찬양 노래이고 다시 학교에 다닐 때 그 선생은 볼 수가 없었다. 전쟁이 무엇인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채 떼를 지어 몰리는 피난민 때문에 크지 않은 우리 집은 항상 붐볐다.

그 해 겨울 중공군의 개입으로 북진통일 직전까지 갔던 전세가 뒤집혀 한 겨울 피난이 시작 되었다. 이번에는 우리가족도 종조부의 처가댁이 있는 여주읍 연라리로 피난을 갔는데 집에서 강은 건넜지만 겨우 삼사십리 떨어진 곳이라 피난도 아니었다. 여기서 죽느니 차라리 집에 가자는 종조부의 말씀을 따라 사흘 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중공군이 우리 집을 차지해 버렸다. 며칠 후 그들이 떠나 고된 살림은 면하고 늦은 봄 아버지가 돌아 오셔서 우리 집은 평온을 찾았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은 독일, 일본, 이태리가 주축국이 된 전범국과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 등의 연합군이 5천 만 명의 인명피해와 세계경제를 파탄 낸 채 끝을 냈는데 한국은 미국, 소련의 전리품이 되어 우여곡절을 겪으며 분단되었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채 나라의 기틀이 잡히기도 전에 1950년 6월 25일 북괴의 침략으로 다시 아수라장이 되었다.

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 캐나다, 뉴질랜드, 프랑스, 필리핀, 터어키, 그리스, 남아공, 룩셈부르크, 벨기에, 콜럼비아, 이디오피아, 노르웨이 등 16개국에서 전투 병력을 보냈고, 덴마크등 다섯 나라에서 의료지원단을, 브라질, 쿠바 등 19개국에서 물자를 보내어 무도한 침략자와 싸우는 우리를 도왔다.

3년1개월을 끌던 김일성 침략전쟁은 6.25사변, 한국전쟁으로 불리며 한반도를 황폐화 시켰고, 유엔군과 국군 18만 명의 사망, 전사, 부상자를 내었고, 민간인 백만 명을 희생시켰다. 85,000명의 지식인, 과학자, 정치인, 각계지도자들이 북괴에 납치되었고, 300만 명의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북괴군 52만 명, 중공군 90만 명이 죽거나 다쳤으니 북괴는 물론이고 중국, 소련의 지도자는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시간이 흘러도 승산이 없자 적들은 휴전을 제의하였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하였다. 북한지역에 “ 더 이상 공격목표물이 남아 있지 않다” 고 공언 했을 정도로 폭격으로 인해 북한지역의 피해는 더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전쟁은 대외적으로 동서냉전을 격화시키는 고비가 되었고 일본에게 전쟁경기를 통한 고도성장의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 일본에 의해 직접 피해를 입었고 분단의 아픔을 겪는 우리나라로서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휴전협정에 따라 “유엔 감시 하에 남북한 토착인구 비례에 의하여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자유총선거를 한반도 전역에서 실시하고, 그 결과에 의하여 통일 독립된 민주적 한국정부를 수립하자” 는 자유진영의 제의는 적(북괴, 중, 소)들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휴전선으로 고착 되었다.

10여년 후 육군소위로 최전방과 비무장지대에서 군 복무를 할 때 대남방송을 들으며 북괴는 나라도 아닌 범죄 집단임을 다시 확인하였다.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한 시도 쉬지 않고 도발하고 분열을 책동한다.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하고 배고픈 자기백성은 팽개친 채 지도층만 잘 먹고 잘 산다.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는데 적들은 계속 지분대며 적화통일을 꿈꾼다. 정권을 세습하여 전쟁 준비에 몰두하고 있으니 세상천지에 그런 지도자는 없다.

전쟁터에서 적과 싸우다가 돌아가신 군인,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선열, 그분들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행사가 현충일이다. 6월6일 하루만이 아니라 일년 내내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하여도 모자란다.

여덟 살짜리 손자가 나의 얘기를 소화하기는 어렵다. 북한, 소련, 중국, 일본 등 세계에서 가장 손꼽히는 침략자를 머리, 발, 옆구리에 매달고 살아가는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또 6.25를 만나야 한다는 걸 가르쳤다.

나라 발전을 위해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당리당략에 매달리는 정치판, 역사를 거꾸로 가르치는 교육자, 몰염치한 지도자들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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