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관문, 인천해관’ 시민들 큰 호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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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관문, 인천해관’ 시민들 큰 호응
  • 연수=조민수 기자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8.06.1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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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역사 4계절 맞춰 4부 구성, 배경·주요 역할 살필 수 있어

| 중앙신문=연수=조민수 기자 | 지난 6월 5일 개막한 인천시립박물관의 2018년도 첫 번째 기획특별전 ‘시대의 관문, 인천해관’이 시민들로부터 큰 반응을 얻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근대기 격랑 속에서 조선이 관세 제도의 도입을 통해 세계 열강과 어깨를 겨루는 주권 국가로 발돋움 하려했던 모습을 재조명하고, 관세 제도의 정착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인천 해관의 역사를 살피기 위해 기획됐다. 

관세는 주로 수입 물품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으로, 국가 재정의 주요 재원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전 세계적 확산 속에서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이유에서 근대 이후 국민국가 시대가 열리며 국가의 주권을 상징하는 제도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우리 민족의 주권을 상징하는 관세 역사의 명암을 우리의 4계절에 맞추어 4부로 구성했다.

제1부 ‘여름, 1876년’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개항으로 인해 ‘무관세 시대’를 맞닥뜨리고, 그를 극복하여 관세를 도입되는 과정을 연출했다. 조선은 1876년 일본과 조일수호조규를 맺고 개항하였으나, 불평등한 조관으로 인해 관세를 부과하지 못하고 개항지에 혼란을 초래했다. 1883년, 인천의 개항 직후 조선은 관세 행정을 담당할 해관을 설치하면서 비로소 관세 제도를 운용하게 됐다. 본부에서는 자주의 권리를 확립하기 위한 조선 정부의 노력의 과정을 각 조약문과 조병호의 ‘조일세의(朝日稅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제2부 ‘가을, 1883년’에서는 관세행정을 담당하였던 인천해관의 탄생과 활동을 조명하였다. 인천해관은 단순하게 관세 징수의 기능만을 수행한 것이 아니었다. 인천항의 도시계획을 주도하였으며, 개화정책의 주요 재원을 확보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또한 주요 수입물품과 주요 수출품목을 해관 창고에 재현하여 전시를 통해 시대의 길목에서 변화하는 인천항의 모습을 연출했다.

제3부 ‘겨울, 1907년’에서는 을사늑약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까지의 인천항 통상의 체질이 변화하는 과정을 조명하였다. 관세 제도를 도입하고 주권 국가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으나, 주변 열강과의 국제관계 속에 절반의 결실을 맺는다. 개청 당시 청나라의 영향력에 놓여 있던 인천해관은 이후에도 그 운영에 있어 외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국운이 쇠한 1907년 ‘인천세관’으로 개칭되며 일본 제국주의에 편입되기에 이른다. 대한제국의 국제 무역항이었던 인천항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식민지 외항으로 전락하고 만다. 전시장에서는 미두(米豆) 관련 각종 자료를 통해 유출과 수탈의 인천항을 그려내었다.

제4부 ‘봄, 1949년’에서는 광복 후 과도기를 거쳐 대한민국의 관세권을 확립하기 시작하였던 인천세관의 출발을 연출하였다. 광복을 맞이하면서 새롭게 정비된 인천세관은 비로소 대한민국의 주권을 대변하는 관세행정을 펼칠 수 있게 됐다. 본 부는 인천본부세관의 자료 협조로 최근까지 현장에서 쓰였던 자료들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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