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장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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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장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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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1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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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장사익의 노래에는 힘이 있다.

그는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만들어 낸다.

그의 초 고음은 서민의 울부짖음이며, 고장 난 기계장치의 굉음처럼 들린다. 그러나 목소리에 정이 묻어 있고 청중을 리드하는 카리스마가 있다. 장사익의 노래는 구성지고 애닲다. 그래서 슬프다. 애처로우며 여운이 길다. 장사익의 노래는 나에게 아버지의 의미를 되짚어 주고 어머니의 따뜻함을 일깨워 준다. 어머니에게 다 하지 못한 아들의 도리, 불효를 힘주어 질책한다.

아직도 가슴속에 자리 잡고 계신 아버지 어머니를 기억하게 한다. 넘어 도 넘어 도 또 나타나는 인생의 고갯길, 어버이의 험난한 고행이 자식들의 보금자리였음을 일깨워 준다.

나는 장사익이라는 가수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지금도 그의 노래가 어느 범주에 속하는지 모른다.

몇 해 전, 90을 넘긴 나의 어머니가 돌아 가셨을 때, 서울에서 낯선 문상객이 왔다. 작은 누이 내외의 안내를 받고 왔는데, 누이는 그를 소개하며 내가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장사익씨에요”라고 이름만 알려줘서 얼떨떨했는데, 외모가 오래전 돌아가신 내 아버지와 비슷해서 흠칫 놀랐었다. 덥수룩한 턱 수염, 잘 가다듬지 않은 머리카락, 예리한 눈매... 나중에야 그가 유명한 소리꾼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TV에서 다시 보고, 가요무대 독일방송에서 청중을 압도하며 노래하는 그를 본 후 트로트나 민요에서 느끼지 못하는 그의 노래세계를 접하고, 아버지와 비슷한 외모에 끌려 CD를 구해서 들을 정도로 푹 빠져 버렸다.

‘아버지 장례를 모신 날 밤, “얘야 문 열어라”하고 소리 지르는 아버지 목소리에 깜짝 놀라 문을 여니 찬바람만 지나간다. “얘야 문 열어라”는 목소리가 들릴 때 마다 아버지 뜻을 알아차려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을 향한 눈의 문을 열게 되었다...’ (아버지).

‘따뜻한 봄날, 아들이 어머니를 등에 업고 꽃구경을 간다. 아들의 등에 업혀 좋아라고 구경을 하던 어머니는 아들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자 눈치를 채고 솔잎을 뿌려 아들이 되돌아 갈 때 길을 잃지 않도록 표시를 해 둔다. 버림을 받으러 가는 것을 알면서도 어머니는 자식 걱정을 한다...’ (꽃구경). 아버지는 돌아가서도 육성으로 자식을 훈육하고 어머니는 자식을 위한 제물이 된다. 장사익의 노랫말에는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정이 배어 있다.

나는 깊은 산속에 어머니를 버린 적이 없는지, 마음의, 눈의 문을 열고 세상을 바로 보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지나 않았는지 곰곰이 되짚어 본다. 한 번뿐인 인생을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바보스럽게 살다 가신 우리 어머니, 자식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는 어머니의 마음, 모두 자식에게 모아지는 어머니의 사랑, 억울하고 분하게 보내신 어머니의 세월,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당연한 어머니의 임무라고 배짱을 부린다.

성직자의 수행보다도 고된 어머니의 길을 끝내신 내 어머니는 불쌍하다.

겨우 스무 살 차이로 어버이가 되셨던 나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같고 생활상이 같은데 왜 생각은 그리 크게 다른지, 어버이는 자식을 위해 몸 바치는데 나는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몸부림쳤다.

지금, 어디를 헤매고 계실까요, 물설고 산 설고 낯선 곳 편치 않으실 텐데, 다시 우리 곁으로 오시면 살갑게 맞으며 두 손 꼭 잡고 좋은 옷, 맛있는 음식 대접해 드릴 텐데. 아무리 양지바른 언덕이라지만 이부자리도 없이, 베개도 없이 누워 계시니 무척 불편하고 차갑지요. 엷은 미소로 마주 보시며 손사래를 치시는 어머니.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아버지 어머니, 언제 어디에 계시던

아버지 어머니, 무엇을 하시던 그건 모두 자식을 위한 희생이었고 사랑이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세상을 부끄럽지 않게 살다 가신 부모님을 존경합니다.

여전히 제 가슴속에 가득 자리 잡고 계신 아버지 어머니를 기리고 있습니다.

봄이 오는 산기슭 아직도 차가운 눈바람을 맞으며 당신의 안위보다는 자식걱정으로 노심초사하시는 아버지 어머니...

장사익은 뒤에 남은 자식들에게 뼈아픈 교훈을 제시하며 올바른 삶을 강조한다.

목이 터져라 절규하는 그의 노래는 여름 장맛비가 되어 나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

눈물겹도록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를 내 곁으로 모셔다 준 그가 무척 고맙다.

장사익은 무척 바쁘다. 어느 때인가 동생들과 부부동반으로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에 관한 글을 썼다고 보여주었더니 며칠 후 붓글씨로 답례편지를 보내왔다. 나도 붓글씨를 쓰지만 그의 글씨가 좋아 표구용으로 글씨 한점을 부탁하였는데 미국공연을 다녀오면 써 주겠다더니 해가 바뀌어도 아직 안 온다. 젊었을 적에는 생활이 고되고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내공을 쌓았다고 한다. 소리에 관한한 그보다 목소리며 청중을 압도하는 무대매너가 출중한 가수를 본적이 없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단독 콘서트를 할 때는 표를 사서 관람을 하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 가족들 10여 명이 구경을 하였다. 마침 바쁘게 행사를 준비 중이어서 가볍게 인사만 나누었는데 멀리서 일부러 오신 손님께 결례를 해서 미안하다고 하는걸 보고 사람 됨됨이도 나무랄 데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얼마 전 KBS 창립기념 콘서트를 이미자와 함께 단 둘이서 두 시간 가까이 엮어가는 것을 보고 과연 국내 제일이구나 생각하였다. 이미자와 쌍벽이라면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 없지 않은가.

장사익을 떠올리면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나고, 정성을 다하는 그의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메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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