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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0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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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수필가, 칼럼위원)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영화 한 장면이 있다.

‘마지막 황제’에서 황제 부의를 심문하던 냉철한 인간미를 풍기던 공산주의자가 문화혁명의 와중에 쇠고랑을 차고 끌려가는 장면. 공산주의 선봉에 섰던 그는 절대 부정이나 부패에 물들 자가 아니다. 그런 그가 왜 반혁명분자로 몰락했을까.

공직을 마감한 뒤 부동산을 차렸다.

토요일 오후 30대 젊은 부부가 들어왔다.

“아저씨 3, 4억 투자해 5,6년 묶어 놓을 땅 없어요.”

3, 4억. 평생 공무원으로 2억 남짓 퇴직금으로 살아가는데 이 젊은 친구들이 3,4억이라니. 근검절약을 모토로 살아온 나는 뭐냐.

고지식한 형(兄)이 장사를 한답시고 부동산을 차렸으니 동생인들 걱정이 안 되겠는가. 부동산학과 대학교수를 모시고 사무실을 찾았다.

물건을 확보하라. 인터넷을 이용하라. 많은 사람과 친해라. 친목단체를 활용하라. 타 업자와 공조하라. 법정수수료만으로는 호구지책도 안 되니 편법을 써라. 편법을 쓰라는 말이 걸려 “대학교수라는 당신이 어찌 법을 어겨가며 돈 버는 방법을 가르치느냐.” 따지니, “법은 지키기보다 피해 가야죠”하며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법을 집행하고 시행하는 공무원에서 법에 따라 생활하는 업자가 되고 보니 헷갈리는 게 하나 둘이 아니다. ‘악법도 법이다’가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로 도치된 현실 앞에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몰랐다.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망해요‘라는 말은 30여 년 전 TV드라마에서 나온 말이다. 그 시절 소주밀식(小株密植), 방제로(防除路)못줄, 잠업증산(蠶業增産), 통일벼 심기…. 그 때 그 시책 남아 있는 것 하나 없고, 고분고분 따라 한 사람 치고 부자 된 사람 하나 없으니, 최일선에 서서 헐레벌떡 뛰던 나는 닭 쫓다 지붕 쳐다보는 개꼴이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공무원은 조국 근대화의 역군’이란 자부심으로 뿌듯했지만 완장과 과시와 획일주의와 다수의 횡포로 점철된 구시대의 앞잡이로 전락해 자랑할 게 하나도 없으니 통곡할 노릇이다.

막내아들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담임선생과 술좌석에서 선생은 아들의 성적을 꽤 많이 올려놓겠다고 장담했고, 나는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다뤄주고, 공부보다 인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한 후, 꽤 쓸쓸한 미소로 헤어진 일이 있다.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다. 검사의 아들 시험 답안지를 선생이 대신 작성하고 양심의 가책이나 자식 버린다는 생각이 없는 걸 보니, 내 생각이 한참 잘못된 거다.

따져보자. √ 나 log, sin, ∑, ∫,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2직각. 완전제곱의 방정식, 유클리트의 기하학, 뉴턴의 제2법칙, 부확정성의 원리―숱하게 암기하고, 반복하던 이 학습이 일상에서 몇 번이나 써먹히던가.

이것들이 살아가는데 필요불가결한 요소라면 검사나 선생이 아들이나 학생에게 공부하는데 필사적인 노력을 쏟아 붓도록 할 것이지 시험지 대필을 하겠는가. 생활에 필요치도 않은 학교 교육에 땀 흘려 투자할 것이 아니라 졸업장만 따내면 획득된 고위층 자제라는 기득권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한 것은 아닌지.

따라서 막내아들은 횡재할 뻔 했던 것을, 아비의 알량한 지적 양심인지 기급인지 하는 것 때문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부동산으로 돈 번 공무원들을 색출해 불이익을 준 적이 있다. 그들이 돈을 벌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윗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았으니 고얀 놈이요, 국민들로부터 질시의 대상이 될 것을 생각지 못했으니 우둔한 공무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부총리가 부동산으로 수 십 억의 차익을 남기고, 대선 후보자가 수십 억대를 챙기는 걸 보면 나는 헛살았다.

공인중개사 1회 시험 합격을 하고 나니 군청 간부회의에서 나의 이름이 거론되었는데 놈으로 분류되더라는 말을 들었다. 알고 보니 공무원은 공인중개사 시험에 응시하지 말라는 암묵적 명령이 있었던 모양이다. 명령을 감지했더라면 절대복종이 몸에 밴 촌뜨기면서 기가 언감생심 응시했겠는가. 어떻든 나는 명령 불복종으로 징계 대상이며 배신자다.

그러나 그 때 국가―상관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 노후 직업이 되었으니, 평생 지켜온 정의, 의리, 도덕, 양심, 국가관, 민족사관, 세계관… 모든 것이 뒤집혀 모호하다.

속·았·다

그러나 사방팔방 돌아보아도 속인 자는 보이지 않고, 황량한 벌판 외진 구석에 초라한 나, 하나 서 있다. 4.19, 5.18, 도시산업선교회, 노동운동… 그 주변에 서성이던 나는 기성세대로 늙어 역사 앞, 피고석에 앉았다.

마지막 황제의 그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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