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52) 옥련동 송도로 더 잘 알려진 ‘옥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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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52) 옥련동 송도로 더 잘 알려진 ‘옥골’
  • 남용우 선임기자  nyw18@naver.com
  • 승인 2024.05.01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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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용우 선임기자
남용우 선임기자

| 중앙신문=남용우 선임기자 | 옥련동(玉連洞)은 문학산 기슭에서 남쪽으로 청량산의 북쪽 기슭에 닿고, 서쪽으로는 황해바다에 맞닿아 있는 동네다.

넓은 의미에서 송도로 불리기도 하는데 옥련동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14년 행정구역 조정 때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 이곳은 구한말 인천부의 먼우금에 속해 있으면서 한진 마을을 중심으로 옥골, 독배, 대암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 마을이 1914년 부천군이 새로 생길 때 대부분 부천군으로 들어가면서 한데 합쳐져 옥련리가 된 것이다.

옥련리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분명하지 않으나, 지금 이곳에 그 이름이 남아 잇는 옥골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대략 지금의 송도역 앞인 옥골은 이곳에 백옥 같은 돌이 많아 생긴 이름이라는 해석이 있는데 제대로 고증된 것은 아니다.

이보다는 오히려 옥골의 뜻을 안쪽으로 들어와 있다는 뜻의 우리말 오그라지다에서 찾는 것이 더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옥골을 오그라진 마을’, ‘옥은 골의 준말로 보는 것이다.

이는 송도 바다 쪽에서 볼 때 마을이 안으로 오그라져 들어와 있다는 뜻이다.

달리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 이곳에 옥골과 함께연지라는 이름의 연못이 있었기 때문에 두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옥련리가 됐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런 연못이 정말 있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일제는 1936년 이곳이 부천군에서 다시 인천부로 편입된 뒤, 주변에 송도 유원지를 만들면서 이곳의 동네 이름도 일본식으로 송도정이라 불렀다. 이것이 광복 뒤인 1946년 다시 옥련동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게 된다. 결국 옥련동은 일본인들이 지은 이름으로 옥골과의 연관성을 조금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 동네의 유래를 제대로 알려줄 수 있는 이름은 아닌 셈이다.

인천시립박물관. (사진제공=)
인천시립박물관. (사진제공=연수구청)

이 동네는 청량산을 중심으로 인천시립박물관과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이 들어서 있고, 송도 유원지와 능허대도 있어 인천에서 비교적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또 옛날 옥골 주변인 노적산 아래에는 요즘 홍어회나 홍어무침, 홍탁 등을 파는 가게 10여 곳이 모여 있는 조개고개가 있어 그 이름이 꽤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와 함께 송도 해안도로를 가다 보면 현대아파트 옆 삼거리에 수백억 원대 규모의 석산이 흉물스럽게 버티고 있다. 예모씨 개인 소유인 석산은 오래전부터 개발될 계획이었으나,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아직도 개발이 안 됐다.

최근 대우자동차 판매()가 이곳 석산을 공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연구 검토한 끝에 1천억 원대를 투자해 도로 쪽에 인공 폭포를 만드는 등 도시근린공원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가 취소했다. 석산 인근 부지는 아파트 등 대규모 공동주택단지로 개발이 됐으나, 유독 석산만 아직 방치된 상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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