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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0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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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축제가 열렸다.

나의 주검(屍)은 메인테이블 위에 올려 져 동료들의 삼지창과 나이프에 의해 난도질 당한다. 피는 포도주요, 살은 향기로운 안주요, 양식이다.

나는 돈 먹고 죽었다. 뇌물 먹고 죽었다. 공무원으로 10여 년 근무하다 재수 없게 돈 몇 푼에 목숨을 버렸다.

죄상이 밝혀지자 모두들 찾아와 울며불며 위로하지만 내심은 ‘좋아 죽겠다’로 읽는다. 동일 직급에선 경쟁자 하나 사라져 홀가분하고, 밑에선 진급의 급류를 탈 여울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으랴.

더욱 기쁜 것은 내가 쫓겨남으로 근무처는 정화(淨化)되고, 직원들은 면죄 받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축제에선 내 죄는 다시 거론된다. 꼬치꼬치 따져 수사가 어느 선까지였는가. 죄에 따른 처벌은 넘치지 않았는가, 적용은 정당한가. 수사관을, 판사를 도마 위에 올린다. 아내는 감격해 울었으리. 그러나 나를 두둔하거나 위로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칼날 스친 자리마다 몸 부르르 떤다. 수사란 조사된 부분은 당분간 다시 건드리지 않는 법이라 칼날 비켜갔음에 눈물겨워 떨고, 자기 죄와 거리가 멀면 제물로 될 확률이 높아져 무서워 떤다.

죄를 범한 자와 벌 받는 자는 별개라, 축제가 시작되자 임신 중인 아내는 사산하고, 숙환중인 아버지가 충격으로 일찍 돌아가시니, 나 또한 장례를 마치고 빨리 목매단다.

썩은 돈을 먹어서 일까. 썩은 육신이 향기롭기까지 하고, 정신은 왜 이리 맑을까. 후회 같은 것은 시시해서 하지 않는다. 가문의 영광을 위하여 뛰어 왔거늘, 나로 인하여 먹칠된 가문이 애처로울 뿐이다.

뇌물이라 찍힌 낙인을 걱정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산 사람이 많은 것처럼 죽은 영혼 또한 많아, 누가 돈 먹고 죽은 귀신인지, 어느 분이 고결하게 살다 죽은 영(靈)인지, 어떤 어른이 4·19 민주항쟁 때 종로 거리에서 유탄에 맞아 재수 없게 죽은 혼(魂)인지, 악행을 저질러 사형 받아 죽은 귀(鬼)인지 분간도 안 되고, 알 수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알 필요도 없다.

서러운 것은, 아내가 뇌물 챙겨주면 매달 목표를 세워 기록하고, 받아먹은 돈이 너무 많아‘목표 조기 달성’이라 기록했다는 말이다. 아무리 타락했기로, 뇌물을 살림에 보태라 아내에게 주고, 공무원의 아내가 남편이 공무원으로서 뇌물 받아 챙기는 꼴 좋아, 일기장에 쓰겠는가.

조사한 자나 떠벌인 자나 그랬을 것이라 유추해 쓰고, 읽고 분노에 떠는 국민이 보기 좋아 희희낙락했으리. 부정한 여인의 군중의 돌팔매에 맞아 죽었어도 벗겨진 시체 아랫도리는 덮어 주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인간 본심이 사악한 것인지, 인텔리에 끼어도 워낙 저질(低質)이라 어쩔 도리가 없는지.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효과는 무엇이고, 도덕군자연하는 유교 사상은 어디로 갔는지.

귀신이면 모르는 것 없다 하겠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현대 아산 회장이 12층에서 추락사(墜落死)한 것이다. 살아 부러웠던 것이 돈으로부터 자유였는데, 돈에서 훨훨 날아다니던 천사가 뭐가 답답해 죽었을까.

사내자식으로 까발린 의리의 배신이 두려웠을까. 친구가 얻어맞은 뒷골목에선 사생결단으로 대적해 싸우는 것이 고등학생 시절의 의리지만, 적들과 부화뇌동(附和雷同)하여 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친구의 도(道)를 다한 것으로 치부해야 하는 것이 요즈음 세상이다. 의리 때문에 죽는 사람 보았는가. 상사에 누 끼칠까 목매달던가, 배 째고 죽었다는 일본 신문에 추억의 눈물 찔끔거려 본 지도 오래다.

모래시계의 의리를 선망하고, 보디가드에게 애태우던 것들이 무엇인가. 그 마지막 사내이기를 갈망하며 영원히 고공낙하(高空落下)를 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나처럼 축제의 제물이 되는 것이 역겨웠던가. 그도 저도 아니면 아버지 평생 동안 이루어 놓은 기업, 야금야금 정치라는 미명의 권력 앞에 몽땅 비치고도, 믿어 의심스러운 자들에게 밤샘 조사 받는 자신이 더러웠던가.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 더 큰 축제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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